기독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시론
[시론] 민주정부 3.0을 바라보는 시각신국원 교수(총신대)

새로운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복잡합니다. 다섯 갈래 여소야대 정치 지형 속에서 촛불과 태극기의 대립이 극복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더욱이 안팎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선 통합과 안정이 절실한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우선 교회가 현실 정치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새 정부가 진보를 표방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수적인 장로 대통령 시절이 과연 교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핍박으로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뉴비긴의 말처럼 “군사력과 정치력과 경제력에 힘입어 급성장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진정한 면모”를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것을 실천하기를 독려하고 감시하는 것입니다. 개혁, 소통, 통합, 책임, 적폐청산, 탈권위, 탕평과 협치, 대화와 소통, 능력과 전문성 위주의 인재등용을 통해서 참된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일입니다. 교회는 이 공약의 실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조(再造)산하(山河)’ 즉 ‘나라 다시 만들기’라는 한자 성어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개혁주의 정신과 통하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교회는 처음부터 비교적 비정치적이었습니다. 지역적이거나 국가적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 퍼져 있던 비지역적 신앙공동체였습니다. 그 독특한 정체성은 혈연과 지연을 끊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앞에 있는 본향을 찾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살았던 믿음의 조상에 닿아 있습니다. 요한 칼빈은 신정정치를 수행한 제네바의 교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피난민 교회의 목회자로 나그네 신분으로 살면서 설교와 목회를 통해 큰 영향력을 미치며 비진리와 불의에 대해 싸우며 교회와 사회개혁에 앞섰습니다.
만일 우리가 새정부의 개혁성향을 불안해한다면 이유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독재치하에서도 크게 성장했습니다. 일제의 탄압과 공산당의 박해가 교회를 성숙하게 했습니다. 독재정부를 위해서도 기도했다면 민주를 표방하는 새 정부를 위해서는 더욱 그래야 할 것입니다. 민주적 6공화국의 세 번째 정권교체에 불안해하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가 편향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 다원주의 세계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기독교가 품은 역사적, 문화적 다양성은 실로 엄청납니다. 교회는 그 속에서 늘 복음으로 문화와 이념을 극복했습니다. 한국교회도 100여 년의 짧은 역사 속에 세계교회가 거친 과정을 압축적으로 통과하며 다양한 문화적응을 겪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원주의 문화 속에서 소통단절, 보수성, 독단과 획일성, 도덕적 실패가 복음전파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뼈아프게 경험하는 중입니다. 결국 현 상황 속에서 관건은 다원주의 시대정신에 함몰되지 않으면서도 확신을 독단적이지 않은 태도로 설득력 있게 증거할 능력이 있느냐입니다.

개혁주의 비전은 선교적 관점으로 강화될 때 다원주의 사회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선교적 관점이란 하나님의 역사를 종말론적 시야에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이는 우리도 지금은 다른 세계관들과의 경쟁 속에 살 수밖에 없다는 인식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이 관점에는 우리는 증인일 뿐 판관이 아니라는 인식이 들어있습니다. 증인의 의무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받은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군사력이나 정치권력을 통해서 강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육신의 정신을 따라 낮은 섬김의 자세를 견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을 정복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다민족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나가는 중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상황 속에 축적된 역사적 기독교의 자산과 지혜를 배워야 할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기독신문  ekd@kidok.com

<저작권자 © 기독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