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선교사, 신학교 사역 의미있는 결실

▲ 이승기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셨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미얀마 이승기 선교사(신월양문교회·참사랑교회 파송)는 늦깎이다. 늦게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됐고, 선교사도 느지막이 됐다. 한국에서 20여 년 목회를 하다, 59세 되던 2004년 미얀마 양곤으로 선교를 떠났다. 선교사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 만류하는 손길이 많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모는 물론이고, 교인들도 두 손 들고 반대했다. 사모와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선교사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한 달 동안 철야기도를 했다. 그러나 이 선교사의 마음은 이미 미얀마가 가 있었다.

“미얀마에 여러 번 선교 탐방을 갔었는데, 갈 때마다 마음에 부담이 됐어요.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이 없는 그들을 보면서, 한국에서 안주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남은 여생을 불사르자 생각했어요. 타다 남은 부지깽이 같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해주시길 기도했죠.”

이 선교사는 미얀마 곳곳에 교회당을 세웠다.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에도 미얀마에 여러 교회를 세웠는데, 본격적으로 교회 개척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 선교사가 직접 개척하거나 건축을 도운 교회들이 80여 곳에 이른다.

교회를 개척하는 가운데 신학교가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는 계속 개척이 되는데 교회를 섬길 현지인 사역자들이 부족했던 것이다. 미얀마 기독교는 자유주의 성향에 혼합주의 성격을 띈 침례교가 주류였는데, 그런 배경의 사역자들에게 교회를 맡길 수는 없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신학교도 몇 군데 있었지만, 대부분 가정신학교 수준이었다. 보다 체계적인 신학교가 필요했다. 이 선교사는 기도하며 신학교 건립을 준비했고, 몇몇 선교사들이 뜻을 함께 했다. 그리고 2007년 12월 마침내 개혁장로회신학교를 설립했다. 4년제 과정에 한국인 선교사들과 미얀마 목회자들이 교수로 사역하는 정식 신학대학이었다. 이 선교사가 초대 이사장으로, 서창원 목사가 초대학장으로 사역했고, 현재는 김영복 목사(성실교회)와 전호진 박사가 각각 이사장과 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이 선교사는 이외에도 미얀마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기독교를 자연스레 접할 수 있도록 유치원 사역을 전개했고, 치료와 전도를 겸한 한방병원도 설립했다. 또 지난해에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프라미스국제학교를 호주 TTN선교회와 협력해 설립하기도 했다.

이 선교사는 이 같은 다양한 사역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꿈을 계속 품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늦은 나이에 사역을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꿈과 소망을 주셨고, 또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을 주시고 재정을 계속해서 공급해주셨다고 말했다.

“나이도 많고 몸도 약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비고비마다 힘을 주시고 모든 것들을 다 이뤄주셨어요.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이지요.”

이 선교사는 남은 꿈이 하나 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 지도자들을 양성한 오산학교 같은 학교를 미얀마에 세우고 싶다는 꿈으로, 이 일 역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실현될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다.

“미얀마가 군부 70여 년 동안 인재 양성이 안됐어요. 유학도 못 가게 했죠.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된 인재들을 길러 미얀마를 크게 일으키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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