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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세 가지 질문(고후 13:5~10)송기섭 목사(대구 동막교회)

하나님 작품이 되면 삶이 달라집니다

믿음이 있으며 선을 행하고 온전하게 되어가는지 스스로 물어야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 송기섭 목사
(대구 동막교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해에 제54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가 열립니다. 또한 제19대 대통령이 확정됩니다. 이처럼 조국 대한민국과 교단 교회의 5월은 중요한 전환기입니다. 중차대한 시점에서 나라가 나라답게 서고, 바른 교회로 서기에 앞서 필요한 신앙인의 자세를 돌아보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로마 본토와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신흥 항구상업도시여서 번영했고, 물질적으로 풍족했습니다. 하지만 각종 종교가 들어와서 우상이 많았고, 도덕적으로도 타락하고 혼란한 지역이었습니다. 고린도의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이단과 우상에 빠지기도 하고, 세상의 방탕하고 타락한 문화에 젖어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잘 믿던 성도들도 타락하고, 교회를 이탈하고 신앙에서 떠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범죄하지 말고, 온전한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자신을 시험해보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에 있는가?

5절,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시험하라’, ‘조사하라’, ‘확증하라’, ‘증명하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믿음을 철저히 조사해서 믿음이 있는 지, 믿음이 있다면 그 증거를 보이라고 합니다. 5절의 특징적인 말 중에 ‘너희 자신을’, ‘너희가 스스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재귀대명사로 ‘자기 스스로’라는 강조의미입니다. 남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테스트하고, 확증하고, 스스로 알아야 함을 말하고자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시험-조사, 점검-해야 할 믿음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자신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가 입니다. 우리의 모든 믿음의 첫 출발은 내 속에 계신 예수의 영이 정말 계시고, 그 성령님과의 교통이 있을 때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성령님을 통해서 믿음의 증거들과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독수리의 일종인 뱀잡이수리가 있는데, 주로 공중을 높이 날아다니다가 두더지나 뱀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가 낚아챈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뱀잡이수리가 민첩하게 잘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땅에 내려와 먹이를 먹고 있는데 맹수의 습격을 받게 되면, 날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뛴다고 합니다.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짐승이 땅에서 뛰어봐야 얼마나 빨리 뛰겠습니까? 결국 얼마 못가서 맹수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이처럼 평상시에는 무척 믿음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믿음을 적용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면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 살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살아계시고, 그 성령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고, 능력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날개를 주셨는데, 삶에 적용하지 못하므로 환난의 맹수, 사단의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자 없기를 바랍니다.

선을 행하고 있는가?

7절,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너희는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기를 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버림받은 자 같을지라도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선을 행하며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선과 악에 대해 아주 쉽게 풀이를 했습니다. “선이란 뒷맛이 좋은 것이다. 악이란 뒷맛이 나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선을 행하기는 처음은 어렵고 힘들지만, 나중에 그 결과를 보면 흐뭇합니다. 악이란 처음에는 내게 큰 쾌락이 되고, 좋은 것처럼 보여도 나중은 오히려 고통이 됩니다. 기도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고 쉬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은 힘들지만 기도와 봉사를 열심히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것입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영국의 존 웨슬리 목사는 “나는 하루에 세 번씩 내 자신을 향해서 질문한다. 아침에는 내가 오늘 아침에 무슨 선한 일을 할까 질문하고, 점심에는 내가 정오에 무슨 선한 일을 할까 질문하고, 저녁에는 내가 오늘 무슨 선한 일을 행하였는가 질문한다”고 했습니다.

‘마천동 슈바이처’라는 불리는 49세의 서내과 원장 서대원 씨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냈고, 장남인 그에게 2억 원의 부채를 남기고 쓰러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는 서울 경찰병원에서 인턴생활해서 겨우 7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살았는데, 빚쟁이들이 찾아와 그 월급의 절반을 가져갔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보따리를 싸면서 ‘의사한테 시집와서 호강할 줄 알았는데 고생만하는구나’하고 2살짜리 아들을 두고 가출했습니다. 그는 절망에 빠졌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아내도 떠났고, 2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 ‘소망의 집’이라는 지체장애인 보호시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몸이 아픈 것을 보고 들어가서 진료했습니다. 이때 서 원장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구나, 나도 여기서 보람을 느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의료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그들이야말로 내 인생을 새출발하게 해 준 사람들이라며, 무의탁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은 돈을 내든지 내지 않든지 성심껏 치료해주었습니다. ‘마천동의 슈바이처’라고 소문이 나서 처음에는 돈이 없는 사람들이 주로 많이 찾아왔었지만 지금은 진료비를 다 내는 손님들도 많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선행도 하고, 존경도 받고, 또 내과에 손님들이 많아지니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선을 행하면 처음에는 어려워도 하나님이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는 십자가는 더하기의 복으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 되어 가고 있는가?

9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바울은 자신이 약하게 되더라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온전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온전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것도 안 됩니다. 온전하되 끝까지 온전해야 합니다. 봉사해도, 순종해도, 예배를 드려도, 예물을 드리더라도 온전히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모든 과목마다 성적이 좋아야 합니다. 한 과목을 아무리 잘 봤어도 다른 과목을 망치면 통계점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 출석, 말씀 순종, 봉사, 충성 등 모든 분야에서 온전하길 바랍니다.

현대 조각 가운데 아상블라주(Assem-blage)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이것은 폐품, 다른 사람들이 버린 빈 깡통, 고물, 철사 등을 모아서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피카소의 ‘황소의 머리’라는 작품도 누군가 버린 고물 자전거에 망가진 쇠붙이와 고철을 모아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작품에 사용된 재료는 값어치 없이 버려진 것이었지만, 피카소가 손을 대었을 때 고가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작품이 된다면 우리의 삶을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만져주시도록, 삶에 개입하시도록 기도하십시다. 그럴 때에 내 인생의 작품은 계산할 수도 없는 고가가 됩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믿음이 있는가’, ‘선을 행하고 있는가’, ‘온전하게 되어가고 있는가’를 물어봅시다. 비록 우리는 부족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사용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기독신문  ekd@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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