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대한민국처럼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나라는 지구상 그 어디에도 없다. 특히 건국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대한민국처럼 거센 나라도 없다. 장준하 선생은 이승만을 ‘희대의 협잡꾼이자 정치적 악한’으로 묘사하였다. 1970년대와 80년대 이 땅에는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를 부정하는 책들이 서가를 메우고 있었다. 박정희는 독재자 이승만은 더 큰 독재자라는 말들이 유행가처럼 떠돌아 다녔다.

소위 지성인들 중에는 이승만을 분단의 책임자, 친일파를 중용한 사람, 한국전쟁의 유발과 예방에 실패한 자, 또는 독립투사들을 탄압한 자, 헌정유린자, 부정부패와 매관경제, 양민학살자로 또는 정치보복자로 낙인을 찍어댔다. 우리가 잘못된 역사관을 되돌리려면 70년 전으로 역사의 시계바늘을 돌리면 된다.

나치 독일과 파쇼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소련과 동맹을 맺은 루스벨트 대통령은 카이로와 얄타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예고한다. 이는 일주일간의 대일참전으로 승전국이 된 소련에게 한반도의 반인 북한을 점령하게 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당시 남한의 미군정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이승만을 실각시키고 좌우합작의 정부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소베이트가 좌우합작으로 세운 유고연방이 모두 공산화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승만은 무법천지나 다름없던 해방공간에서 좌익과 남로당 및 총선방해를 위한 폭동을 이겨내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의 성공 후 세계인들이 공산주의를 미화할 때인 1923년 3월, 그는 공산당의 당부당(當不當)이란 논고에서 공산주의의 장단점을 지적했다. 이승만의 이 비판은 1990년 12월 2일 이후 동구권의 몰락에서 그의 판단이 역사의 정설이었음을 입증하였다. 이승만은 국가건설시기에 국가건설이란 인프라를 구축한 대통령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이승만의 업적 중 가장 큰 업적은 한미동맹이다.

19세기 후반 이래 동북아에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6·25등 굵직한 전쟁이 여섯 번이나 있었지만 한미동맹이 맺어진 1953년 이후 64년 동안 동북아에는 한번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세계가 화약고라고 불안해하는 한반도에서 뇌관을 제거해 버린 것이 이승만 주도하의 한미동맹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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