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목사(청소년전문사역자)

노련한 사역자는 학생과 교사, 부모 사역에 초점 맞춘다
청소년 설교자는 대언자로서 거룩한 소명 잃지 말고
상황 고려하여 말씀의 적용점 던져줄 수 있어야

 

▲ 김형민 목사(청소년전문사역자)

필자는 이번 8번째 글을 마지막으로 다음세대 기고를 마친다. 그간 부족한 글이었지만,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의 담임목사님들과 청소년부 사역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바란다. 마지막 기고는 청소년 설교와 예배, 심방과 교사양육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청소년 설교의 3가지 원리

청소년들도 영적인 존재이다. 때문에 광활하고 깊은 성경의 주옥같은 진리들이 필요하다. 필자는 청소년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원리를 제시하고자 한다.

청소년 설교의 첫째 원리는 철저한 묵상이 있는 설교이다.

우리 교단의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의 영감과 말씀의 권능을 믿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 설교자들은 성경말씀이 10대들에게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설교를 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한 줄 읽고, 본문과 상관없이 개그 위주로 재미있는 설교에 치중하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 이런 설교는 신학적으로 옳지 않고 청소년들의 영적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소년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대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룩한 소명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좋은 설교자는 직업적인 자세로 설교를 위한 성경읽기를 지양하고, 자신이 먼저 한 성도이자 제자로서 영적 성숙을 위해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찾고 분별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필자는 설교 본문을 선택할 때, 먼저 내가 묵상하고 삶 가운데 적용해보려고 몸부림쳐 보았던 말씀을 택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살아있고 감동이 있는 설교를 하려면, 설교자 본인이 말씀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형식적이고 이론적인 설교로는 학교와 학원과 입시에 사로 잡혀있는 청소년들과의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딤후 3:16). 청소년들이라고 이 말씀이 예외일 수 없다. 철저한 말씀 묵상과 뜨거운 영성으로 다져져 있는 청소년 사역자의 설교에 청소년들이 반응하는 것이다.

청소년을 이해하고 눈높이를 맞춰라

둘째 원리는 청소년의 상황(콘텍스트)을 고려하는 것이다.

청소년 설교자는 철저한 묵상으로 텍스트인 말씀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영성이 뜨거워야 한다고 첫번째 원리에서 제시했다. 여기에 청소년들의 콘텍스트 즉 상황을 고려해서 설교해야 한다. 필자는 신학을 공부한 뒤에 청소년학을 전공하면서, 청소년들의 문화, 발달, 심리, 교육, 환경적 이론과 실제를 깊게 파악할 수 있었다. 텍스트는 변함이 없지만, 콘텍스트는 항상 변하고 있으며, 설교자는 변화하는 상황에 말씀의 적용점을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일반 설교자와 청소년 설교자가 구별된다. 필자는 종종 미션스쿨의 부흥회나 절기예배에 설교자로 초대받는다. 일반 장년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은 이런 설교를 가장 힘들어 하신다. 그 이유가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로인해서 청소년의 상황에 맞는 말씀을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10대들의 상황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불신자 청중이 많은 미션스쿨의 말씀사역에 소명감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세번째 원리는 때로 말씀을 자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7번째 기고에서 필자는 ADHD와 우울증에 대해 다루었다. 주의력 결핍은 아니더라도 청소년들 특히 중학생들의 경우, 설교를 시작함과 동시에 자신들도 옆자리의 친구에게 설교를 시작하며 떠든다. 마치 집단적으로 주의력이 결핍된 상태를 보이는 중학생들을 집중시키는 방법은 정확한 말씀의 논리와 상황을 꿰뚫는 적용과 더불어, 음성에 고저 차이를 두고 적당하게 자극적인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다. 10대들이 쓰는 방언에 가까운 줄임말과 개그 코드의 언어도 구사하면 더 좋다. 그러나 이것은 앞의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조건이 충족된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말씀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세상의 강연이나, 코미디와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설교자는 많은 기도로 강단을 준비해야 한다. 바로 이때 우리가 믿는 성령님께서 너무나도 효율적이고 놀라운 역사로 청소년들의 심령 속에 말씀을 넣어 주실 것이다.

말씀과 참여 중심의 예배 디자인

필자는 청소년예배의 중심에 설교를 놓고 있다. 혹자는 설교를 짧게 10분에서 15분 내외로 마치고, 찬양과 교제 중심으로 청소년예배를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그 주장에 반대한다. 말씀을 들어야 영혼들이 변화된다. 필자는 주일 청소년예배 설교에 40분 정도를 할애한다.

말씀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며, 몇 가지의 요소를 추가한다. 그중 하나가 간증이다. 설교에 앞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고난과 상처를 담은 간증을 말씀에 비추어 풀어낸다. 청소년들은 친구의 진솔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에 은혜를 받고 예배에 몰입하는 것을 본다. 간증자들은 소그룹캠프나 제자훈련을 받는 학생들 가운데 선발한다. 간증을 마친 학생들은 담당 목회자가 그 학생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주고, 문화상품권과 같은 선물을 주며 격려한다.

또 다른 요소는 설교와 관련된 영상을 사용하는 것이다. 설교본문과 관련된 3분 내외의 유튜브나 페이스북의 영상을 사용하는데, 영상세대인 청소년들에게 매우 효과적이다.

마지막 요소는 설교를 듣고 1~2명의 학생이 느낀 점이나 적용할 점들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경우 같은 또래 학생들이 직접 나와 이야기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그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나눌 학생들은 주중 심방이나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 공동체의 중보가 필요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이렇게 해서 찬양, 설교, 영상, 간증, 적용, 헌금, 광고의 시간까지 예배시간이 대략 1시간 소요된다. 예배를 마치면 설교 내용을 주제로 나눔을 위한 제목을 정하고, 30~40분 정도 목장 소그룹모임을 진행한다. 물론 소그룹 시간에 담당교사가 맛있는 간식을 제공하면서 소그룹 모임의 기대감과 나눔을 풍성하게 해준다.

심방과 교사양육이 이루어지는 청소년부

교사들은 소그룹 목장에서 나눈 내용을 청소년부 홈페이지 교사게시판에 ‘목장보고서’ 형식으로 자세하게 적어 올린다. 목장보고서를 올리지 않거나 교사회의에 늦으면 벌금을 부과해 약간의 긴장감과 강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벌금은 교사들의 경조사와 연말 송년의 밤과 같이 교사들을 위한 행사에만 사용한다.

목회자가 모든 소그룹을 다 돌아다니며 참관할 수 없기에, 주중에 교사들이 올린 목장보고서를 읽고 리플을 달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각 학생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과 양육방식을 결정한다. 목장보고서에서 필자는 특이사항이 발견되는 학생들을 보면, 지체없이 교사와 부장 및 담당학년의 책임교사와 함께 심방을 잡는다. 적어도 4명이 함께 가는 집단 심방인 것이다.

심방을 가서 아이들을 먼저 만나지 않고, 언제나 부모님과 먼저 아이의 상태를 상의한다. 부모님의 영적상태와 양육태도를 점검하면서, 필요한 조언과 처방을 해드린다. 이후 아이를 만나서 객관적인 조언을 더하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화해와 용서가 필요한 경우 중재하기도 한다. 또한 그날 큐티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고, 필요한 경우 가족상담과 정신과 진료와 같은 치료를 권하기도 한다.

청소년 초보 사역자들은 대부분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노련한 청소년 사역자들은 학생은 물론 교사와 부모에 대한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필자는 매주일 교사들의 양육과 학생들의 양육을 위한 회의를 예배 전에 1시간 정도씩 갖는다. 형식적인 회의가 아니라 아이들 한명 한명에 대한 상황과 처방을 이야기하고, 심방의 결과들을 나눈다. 이렇게 회의를 하다보면 교사들과 한 목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공동체적 소명의식을 충만하게 느끼게 된다.

교사 역시 영적으로 다운되거나 힘든 문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힘들어 하거나 영적인 위기 가운데 있는 교사들을 위해 수련회와 소그룹캠프를 수시로 마련하여 교사들의 양육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교사들이 혼란스러운 청소년들에게 먹을 것만 사주며 자신을 소모한다고 여기게 하면 안된다. 청소년부에서 봉사하면서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든든한 공동체를 만났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 교사가 이런 사역자로 서게 될 때, 청소년 부서에 활기와 은혜가 넘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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