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중세 중기였던 700년대 유럽과 중동에는 세 개의 강력한 세력이 산재해 있었다. 이들 세 나라는 서유럽의 프랑크왕국과 비잔틴제국 그리고 이슬람제국이었다. 저들 세 나라는 서로 영토확장을 목표로 했기에, 기독교의 서유럽과 중동의 이슬람 제국간의 충돌은 숙명과 같은 것이었다. 첫 번째 대결은 700년대 초에 일어났고 본격적인 충돌은 1100년대 십자군 전쟁으로 야기된다.

이슬람제국과 비잔틴제국의 첫 번째 충돌은 634년이다. 이 전투에서 사우디의 음미아드제국이 승리하면서 비잔틴제국은 중동지역의 땅들을 모두 빼앗긴다. 음미아드 왕조 설립자 칼리프 무아위야는 674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한다. 당시 비잔틴로마 군대는 ‘그리스의 불’로 알려진 새로운 신무기 화염방사기를 고안해 아랍군대의 예봉을 꺾는 데 성공한다. 시리아에서 숱한 승리를 경험하며 축배를 들었던 이슬람의 음미아드 군대는 첫 번째 패배로 고배를 마시면서 철옹성으로 알려진 삼중벽의 요새 콘스탄티노플의 견고함을 확인하고 물러가야 했다. 절치부심하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던 음미아드 왕국은 30년 후인 717년 1800여척의 군함과 12만명의 대규모로 군대를 편성하여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나선다.

당시 음미아드의 이슬람 군대는 막강한 화력을 앞세우고 비잔틴로마제국의 육군과 해군을 압도하면서 진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잔틴로마군대는 뜻밖에 호재를 만난다. 유난히 매섭고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 것이었다. 언제나 겨울을 지내는 비잔틴로마군대는 엄동의 추위가 별문제 없었지만 더운 지방에서 수륙만리를 떠나온 이슬람군대들은 혹한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지리멸렬해가고 있었다.

계속되는 폭설에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이슬람의 음미아드 군대는 식량이 떨어지자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만나게 된다. 견디다 못한 병사들은 비잔틴 진영으로 투항해 오면서 이슬람군대는 겉잡을 수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때 불가리아 군대까지 비잔틴군과 합세하면서 이슬람 군대는 연일 퍼부어대는 화력을 견디지 못하고 퇴각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음미아드 병사들은 뱃길로 돌아가다 폭풍으로 대다수가 수장되었고 이후로 간헐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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