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목사(청소년전문사역자)

‘성은 책임 따르는 생명이 걸린 문제’ 원칙 갖고 교육하라

이성교제는 ‘때’의 관점서 설명, 자연스런 관계 설정 도와야 …
무엇보다 공동체 화평과 거룩에 초점둬야

▲ 김형민 목사(청소년전문사역자)

어른들은 일반적으로 청소년들이 이성교제 문제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성가족부에서 조사한 청소년의전화1388의 호소문제 유형 건수를 보면, 청소년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주제는 가정이었다. 그리고 일탈, 비행, 학업과 진로 문제였고, 이성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CYS-Net 통계시스템, 2014). 이는 필자가 본 특별기고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와 일치하는데, 가정 즉 부모가 청소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청소년의 이성교제와 성적 문제행동은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교회의 청소년 사역자들이 원칙을 가지고 예민하고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중요한 이슈임이 분명하다. 이번 6편은 청소년의 이성교제와 성적인 문제행동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이야기해보겠다.

청소년 시기의 생물학적 변화

청소년 시기는 생물학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난다. 청소년들은 2차 성징이 발달하고, 많은 양의 성호르몬이 방출된다. 이제 부모를 떠나 친구, 더 나아가 이성친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기만의 여친과 남친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성(性)적 존재로 지으셨다. 성은 더럽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건강한 결혼관계 안에서 사용될 때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대가 악하고 음란하여(마 16:4) 성을 왜곡하고 상품화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라나는 십대들은 성에 대해 혼란을 겪고, 불필요한 강한 자극을 받고 있다. 지난번 미디어에 대한 기고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일찍부터 미디어를 접하고,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자라난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보다 헐씬 더 일찍부터 편리하고 빠른 방법으로 자극적인 음란물에 노출되고 있다. 학자들은 최근 청소년의 초경 시기가 점점 더 짧아 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먹는 음식도 영향이 있지만 무엇보다 일찍부터 미디어로부터 성적인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성교제는 ‘때’의 관점에서 보아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때를 잘 분별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성교제 역시 때가 중요하다. 청소년의 이성교제에 대해 일반 교육학자나 교계의 청소년 사역자들의 관점은 조금씩 다르다. 장점을 부각해서 적극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단점을 지적하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필자는 오랫동안 청소년사역을 해오면서 그동안 현장에서 느낀 청소년의 이성교제를 ‘때’의 관점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청소년기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교회나 학교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호감을 갖는 수준의 이성관계가 아니라, 개인적인 은밀한 만남을 가지는 여친 남친의 관계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회 공동체에서 여친과 남친의 관계가 되면, 일단 다른 공동체 멤버들과 관계의 단절이 일어난다. 교회에 와서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는 일보다 둘만의 관계에 집중하게 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요즘 여학생들은 중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화장을 하고 교복을 몸에 맞게 줄여서 입고 다닌다. 이미 몸은 어른과 다름이 없다. 더군다나 지속적으로 미디어를 통한 음란물의 자극을 받은 학생들의 경우, 둘만의 시간과 장소에서 스킨십의 유혹을 강하게 받는다.
필자가 사역현장에서 경험한 다양한 케이스들을 볼 때, 청소년들이 순진하지만은 않다. 어른들도 깜짝 놀랄만한 성적 문제 행동을 한다. 청소년기의 이성교제는 지속적으로 이어져 훗날 결혼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교회 공동체에서 이성교제를 하게 되었는데, 만일 스킨십이 진행되었고 헤어지게 되었을 경우, 청소년에게 그 상처는 매우 크고 결국 공동체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이성교제 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근본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도 현실에 맞지 않는다. 다양한 이성친구들과 대화하고 자연스럽게 지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이성교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청소년기는 사람을 사귈 준비를 할 때

일반적으로 일찍부터 이성교제에 집중하고 어른들의 흉내를 내면서 외모 가꾸기에 몰입하는 청소년들은 공통점이 있다.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존감이 떨어지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려고 하니, 교제를 해도 건강한 교제를 하지 못하고 집착이나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패턴을 보인다. 따라서 청소년기에는 이성교제와 배우자 탐색의 적기인 청년시절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정서적, 사회적, 지적 역량을 갖추는 시기로 삼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방법이다.

필자는 청소년 사역자들에게 되도록 장년부 교구 사역도 같이 하기를 권장한다. 그것은 부모와 그 가정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성교제에 지나치게 집착을 해서 일상생활이 곤란할 정도에 이른 청소년의 가정에 심방을 가보면, 이내 답이 나온다. 부모님 역시 누군가의 배우자이자 부모로서 자신을 준비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처와 열등감을 해소해줄 것 같은 이성을 만나 급하게 결혼한 경우였다.

그러나 사람의 사랑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근본적으로 달라서 제한적이고 조건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의 부모님들이 이렇게 결혼생활을 하시면서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들에게까지 건강한 사랑이 전달되지 못하면, 청소년기가 된 자녀는 가정이 아닌 이성교제를 통해서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채우려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청소년기는 무엇보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가족과 건강한 사랑을 주고 받으며, 자존감을 갖고 자신을 사랑하는 때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기는 훗날 사랑하는 배우자 감을 만났을 때, 그 상대의 배우자로서 합당한 정서적, 사회적, 지적 준비를 해 놓는 때로 삼는 것이 옳다. 이렇게 청소년기를 준비하지 못한 청년들은 중고등학생 때에 이성교제에 집착하며 공부하지 않아 원치 않은 대학에 진학했고, 그 결과 만족할 만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내 놓을 것이 없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후회한다. 사람을 사귀고 결혼을 해야 할 청년의 시기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좋은 배우자 감을 놓칠 수도 있다. 교제 경험은 청년기에 해도 늦지 않다.

책임과 생명이 달린 성(性)

보건복지부의 2015년 통계자료를 보면, 2014년에 신규로 발생한 요보호아동 수는 총 6014명이다. 이중 1020명은 귀가 및 연고자에 인도되었다. 나머지 4994명은 국가가 보호하는 요보호아동, 즉 가정을 떠나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요보호아동이 발생하는 원인은 부모의 이혼과 미혼모의 출생이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부모 이혼으로 인한 요보호 아동은 1037명이고 미혼모로 인한 요보호아동은 1226명이다. 미혼모 시설에서 10대 미혼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35% 정도 된다고 하니 적지 않은 숫자이다. 이 가운데에는 성폭력과 같은 이유로 미혼모가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성친구와의 사이에서 발생한 임신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지금도 교회 안팎에서 청소년들이 이성교제를 통한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를 기를 능력이 되지 않아 미혼모가 되고, 아이들은 시설에 맡겨 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필자는 교회에서 ‘성은 책임이 따르는 행동이고, 무엇보다 생명이 달린 문제’라는 것을 설교와 강의를 통해서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필자는 청소년부의 목회시스템에도 이와 같은 이성교제에 대한 원리들을 반영했다. 청소년부의 분반과 선생님 배치도 처음부터 남자반과 여자반을 구별했다. 남학생은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은 여자 선생님이 맡도록 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또한 공식적으로 청소년부서 내에서 개인적인 만남을 따로 갖는 은밀한 이성교제를 금지하고 있다.

이런 필자의 원칙에 동의 여부는 독자들의 판단할 몫이다. 혼성반을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임상에서 경험한 바로는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구성된 반이 나눔도 깊어지고, 가식과 체면을 차리지 않아서 훨씬 더 자유롭다.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이성전도는 권장하지 않는다. 전도를 명분으로 사귐을 인정받으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전도를 해도 같은 소그룹에는 소속될 수 없도록 했다.

물론 이런 원칙들은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가 무슨 말을 해도 뒤에서 자기들끼리 사귀고 싸우고 헤어지는 아이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교회 예배당이 연예당이다’는 불신자들의 조소 섞인 말을 듣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원칙이 장기적으로 청소년들이 주님께 집중하고, 때에 맞는 적용으로 청년의 때를 준비하게 하는데 유익하고, 무엇보다 공동체의 화평과 거룩에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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