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목사의 사진에세이 ‘다시, 개혁으로’] (6)교회교육, 세상을 살리는 출발점

사진❶ 지쳐있는 아이들

2016년 2월 19일, 과도한 교육열로 아이를 닦달하는 아내의 행동이 이혼 사유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혼청구소송을 맡은 판사는 아이에 대한 친권 및 양육권도 남편에게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내는 사립학교 교사로, 아이에게 방과 후 학습부터 학습지 교육, 피아노, 수영, 태권도 등 과도한 교육을 요구했고, 새벽 3~4시까지 잠을 재우지 않고 공부를 시킨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내는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라며 부당함을 주장했지만, 결국 법원은 남편의 손을 들어 주었고 아이를 위해서 양육자 또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교육열이 높은 나라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 원인을 찾는 것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비교와 경쟁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 같습니다.

그 비교와 경쟁은 존재만으로도 존귀한 아이들의 가치를 순위로 매기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경제논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육들이 이런 사상으로 완전히 물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교회마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교육이야 세속화 되는 것이 당연하다 할지라도, 교회는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진❷ 세상 교육의 파도를 거슬러 가야 할 주일학교 교육

흔들리는 풍랑 속에서라도 끝까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세상을 졸졸 따라, 함께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제는 주일학교 교역자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예배 출석 문제조차도 눈치를 보며 똑바로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님이 교회의 중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물론 교육열은 좋은 것입니다. 교육이 사람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교육하셨고, 또한 우리에게 제자들을 세우고 교육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것과 함께, 그 분을 아는 데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우리는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교육을 하는가?’입니다. 장애우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어느 선교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교회 교육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에서 하는 교육 방식을 재빠르게 도입하는 게 올바른 교회 교육은 아닙니다. 교회 교육은 예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야하는 지를 가르치는 것이 교회 교육입니다. 거기에 교회 교육과 세상 교육 사이의 차별성이 있고, 고유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지런히 세상 교육을 좇아가고자 한들, 과연 세상 교육의 효율성과 관리능력, 재정규모와 인적자원을 따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사진❸ 세상을 변화시킬 아이들을 파송하는 교회의 역동성

거의 불가능합니다. 세상 교육을 따라가는 것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곳에서 절대 가르칠 수 없는 것, 바로 ‘예배와 복음’이 교회 교육의 초심이요, 열심이며, 뒷심이 되어야 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지식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는 교회, 성적이 아닌 우선순위를 가르치는 교회, 비교가 아닌 사랑을 가르치는 교회, 경쟁이 아닌 동행을 가르치는 교회, 세상에서 성공하는 법이 아닌 세상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법을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아이들이 세상 속에 침몰하여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의 예배자요 세상을 움직이는 인물들로 자라게 될 줄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현장은 완전무장을 해도 안심할 수 없는 전쟁터요,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빠져 허우적대는 늪과 같은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 가운데 교회가 개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다음세대를 잘 교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최우선 사명이고, 이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이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진정한 종교개혁은 교회 교육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교회 교육은 돈이 되지 않는다고 저 멀리 내팽개치지 맙시다. 도무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리 가르쳐봤자 변화가 없다고 해도 기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바로 서면 대한민국이 바로 서게 됩니다. 그들이 잘 세워지면 대한민국의 교회가 잘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된 그들이 대한민국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낼 것입니다. 세상과 똑같은 아이들을 양산해 내는 교회가 아닌,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들을 세상 속으로 파송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나라와 세상을 다시 살리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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