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교회서 소아암 환우 미술치료 전시회
항암 아픔과 싸우던 천사들 희망을 만나다

 꼬마 작가들이 나비 같은 손으로 하나하나 그리고 채색한 그림 전시회가 열렸다. 반짝이는 비즈로 잔뜩 꾸민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공룡들이 무지갯빛 풀밭을 뛰놀고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에 절로 웃음이 난다. 난생 처음 전시회에 작품을 걸어본 6살 채린이는 “이거 내가 그린 거예요. 제목은 <꽃바람>이에요”라며 자신의 그림 앞을 떠나지 않는다. “나 이제 작가야. 내 작품 전시한 거야.” 축하하러 온 가족들에게도 연신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갤러리를 장식한 풍선을 들고 또래들과 장난을 치는 모습은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데, 사실 채린이는 6살 인생을 집보다 병원에서 더 오래 보낸 소아암 환우다.

4월 30일까지 서울 회현동 성도교회(박성기 목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봄의 인사, 소망의 날갯짓’은 11명의 소아암 환우들이 미술치료를 하며 그렸던 작품 55점을 모은 자리다. 이대목동병원 소아암 환우들은 일주일에 1~2번씩 고통스러운 항암치료에서 벗어나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형제자매들조차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아이들이, 잠시나마 아픔을 잊고 치료가 아닌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2013년 봉사활동으로 아이들 미술치료를 진행했던 설경선 전도사는 이대목동병원 원목실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치료를 시작했다. 설 전도사는 “이 곳 병원에 이렇게 작은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생사를 건 채 싸우고 있다. 언젠가 이 아이들의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기도했는데 기적처럼 그 꿈이 이뤄졌다”고 기뻐했다.

3월 31일 열린 오프닝예배는 파티 분위기였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풍선 장식이 곳곳에 걸렸고, 맛있는 간식들이 준비됐다. 병동 간호사들과 담당 의사 유은선 교수까지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 이 날만큼은 아이들이 ‘작가’가 된 즐거움을 누리고,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러나 11명의 참여 ‘작가’ 중 오프닝예배에 참여한 아이는 채린이와 민서, 세진이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치료와 면역 문제 등으로 자신의 그림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없었다.

오랜만에 하는 바깥나들이여서인지 채린이는 갤러리 이곳저곳을 활기차게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생후 24개월 때부터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던 채린이는 횡문근육종 환우다. 횡문근육종은 근육에 생기는 암인데, 채린이의 경우는 대동맥 혈관을 암이 둘러싸고 있다. 그 작은 몸으로 4차례의 수술과 25차례의 방사선 치료를 견디면서, 암덩어리를 긁어내거나 딱딱하게 만들어 전이를 막고 있다. 하루아침을 면역수치를 재는 피검사로 시작하고, 옆 침대에 입원한 아이들과도 커튼을 치고 홀로 생활해야 하는 채린이에게 미술은 세상과 맞닿아있는 다리다.

엄마 김찬미 씨는 “엄마와 의사, 간호사만 보면서 침대에 누워있던 채린이가 친구들을 만나 직접 색연필을 들고 선 하나를 그린다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일”이라고 감사해 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생활인지라 미술치료를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채린이에게 그림 그리는 게 어떤지 묻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 재밌어요”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옆에 있던 언니 채원이도 “채린이 그림 진짜 진짜 좋아해요”라며 거든다. 잔뜩 상기된 얼굴만 봐도 이번 전시회가 채린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알 수 있었다. 어린이 미술작가 인증서도 받고, 케이크도 자르고, 사진도 찍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은 채린이는 엄마에게 “나 오늘 최고로 행복했어”라고 속삭였다.

 아이들의 꿈, 희망,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가 그림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엄마는 채린이가 유치원에 다녀왔다고 인사하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그 날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소아암 환우들이 병실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움직임이, 곧 세상에 펼쳐질 날갯짓이 되기를 바라본다.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저에게는 크나큰 행복이자 감동이었고….”

전시회 오프닝예배에서 소감을 전하던 설경선 전도사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그 눈물의 의미를 알았다. 제한된 공간에만 있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이라도 아픔을 잊고 가슴에 갖고 있는 것을 표현해내도록 돕는 것,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것이 설 전도사의 평생 사명이었다.

화가를 꿈꿨지만 미대 입시에 실패했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20대 후반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학을 하면서 다시 미술을 향한 불씨가 살아났다.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13년부터 봉사활동으로 소아암 환우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에게는 선 하나 색 하나가 삶을 향한 몸짓이었다.

“제가 처음 만났던 아이는 암 때문에 실명 직전까지 갔던 아이었어요. 아이가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첫 수업은 5분도 하지 못하고 끝났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가 다음 주 제 수업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한 시간의 수업 동안 상상을 뛰어넘는 에너지와 창조력을 발휘해요. 일주일 내내 고통스런 항암과 검사가 있지만 다음 주에는 미술 수업이 있다고 버티는 거예요.”

그 아이를 일곱 번 쯤 만났을까. 아이는 끝내 천국으로 갔다. 그 후에는 그냥 앉아서 뭔가를 끼적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주던 두 살배기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꽃과 장난감으로 둘러싸인 작은 관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며 설 전도사는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이 수업이 어떤 아이에게는 마지막 수업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그냥 그림을 가르치는 것만 할 수는 없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죽게 마련이지만 사실 저 어린 아이들이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러나 아이들의 죽음을 목격하다보니까 함께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종이인형을 만들어서 인형극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부모님들도 예배 참석을 말리지 않으시더라고요. 예전에는 개인적인 일이 생기면 치료를 미루기도 했는데 이제 제 삶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일이 항상 일순위에요.”

미술수업은 아이들에게는 ‘치유’다. 아이들은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과 꿈꾸는 미래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을 펼쳐내 보이는 시간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가르치는 사람도 행복한 시간이다.

“미술수업 시간에는 아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요. 정말 잘하는구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 칭찬해주고 지지해줘요. 저도 그 그림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죠. 5월부터는 병원 로비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외부 전시회에 못 왔던 아이들이 병원을 지나다니며 자신의 그림을 보고, ‘내가 이런 걸 해냈구나’하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작품이자 큰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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