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주필)

성자 베네딕트(St. Benedict of Nursia, 480~547)는 중세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사로 그의 이름을 한문으로는 ‘분도’로 표기한다. 수도원운동의 시작은 이집트 사막의 성자 안토니우스에 의해 시작되어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유럽의 수도원 운동은 베네딕트에 의해 서유럽에 확산된다. 480년 이태리 중부 누르시아에서 출생한 베네딕트는 로마의 부패상을 보고 실망하여 수도사가 된다. 베네딕트는 처음 3년 동안 동굴에서 수도를 하다 인근 수비아코(Subiaco)에 작은 수도원을 세워 공동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철저한 고행 지도에 반감을 품은 동료들이 그를 배척, 독살까지 하려고 하자 이들을 떠나 이태리 중부 몬테카시노에 수도원을 세운다. 이곳이 중세 천년의 대표적인 기관인 베네딕트 수도원의 중심지가 되었다. 베네딕트는 기도, 노동, 독서를 강조하였다. 과거 극단적인 고행을 요구했던 이집트나 시리아의 수도원들과 달리 베네딕트의 규율은 온건한 수도생활을 요구했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하루에 일곱 번 예배를 드렸고, 일정 시간만 기도하게 했다 이집트 사막의 수도사들은 금식을 밥 먹듯이 했지만 베네딕트 수도원은 매일 빵을 먹었고 가끔 계란과 우유도 먹게 했다.

또한 베네딕트 규율의 두 번째는 독서였다. 문법교육은 필수였고 수도원에는 반드시 도서관을 두어 수도사들의 교양훈련에 힘썼다. 오늘날 읽혀지는 고전들은 다수가 베네딕트 수도사들의 필사에 의해 전수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저들은 문명의 전달자였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세 번째 특징은 노동이었다. 과거 이집트나 시리아의 수도사들처럼 동굴, 나무 기둥 위에서 수십 년간 지내는 수도사는 등장하지 않게 된다. 베네딕트는 노동도 기도의 일부이고 영성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세기 수도원 운동은 중세 유럽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베네딕트의 영성과 인품은 널리 알려져 야만족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고 수도원으로 몰려왔다. 베네딕트가 수도원을 세운지 한 세기도 되기 전에 서유럽에는 수많은 수도원이 설립되고 있었다. 중세 중반에는 수천 개의 수도원이 생겨 베네딕트 수도원은 중세학문의 진흥, 교회성장과 문명 확산에 기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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