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목사의 사진에세이/다시, 개혁으로] (4)잘됨 보다는 하나됨입니다

 

사진❶ 함께하니 달라지고 조화롭습니다.

어느 광고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한 피아니스트가 두 대의 피아노를 연주합니다. 한 피아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각 건반마다 다른 음이 연주되는 일반적인 피아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피아노는 특이하게도 모든 건반이 같은 음을 내는 피아노입니다. 피아니스트는 한 곡을 두 대의 피아노로 번갈아가며 연주합니다. 어떤 결과가 펼쳐졌을까요?
예상한대로, 일반적인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연주곡 그대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쪽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계속해서 똑같은 음으로만 소리가 났습니다. 강도와 속도만 다를 뿐 계속해서 똑같은 음만 낼 뿐이었습니다. 연주자의 화려한 손놀림으로도 그 피아노 앞에서는 솜씨를 뽐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광고는 이런 카피로 마무리 됩니다. ‘Be together, not the same’. 즉, “함께하면 다릅니다”라는 것이죠.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88개의 키는 각자 한 가지 음정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정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음악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음만으로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단순한 음들 88개가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게 되면, 때로는 불치병마저 치료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함께하니까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진❷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도 존재합니다.
 
교회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통일성’입니다. ‘통일성’이란 말에는 ‘다양성’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것이 하나 될 때 우리는 그것을 ‘통일’이라고 말하기 때문이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많은 다양함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연만물을 다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인간 또한 ‘어쩜 그렇게 다 다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가 다양성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세상의 모든 문제도 이 다양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갈등, 세상의 갈등, 관계의 갈등, 이 모든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개인화, 세분화되어 갑니다. 서로 괜히 부딪히지 말고, 끼리끼리 잘 하라는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그 방식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잘됨’이 아닙니다. ‘하나됨’입니다. 하나됨을 통해 영광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조금 삐거덕거리고, 눈에 띄게 잘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잘됨’이 아니라, ‘하나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늘 ‘하나됨’을 좇아야 합니다. 교회는 ‘잘됨’을 좇는 즉시,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깥으로는 더 세련되고 그럴 듯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안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닌, 세상이 원하는 것들로 가득 찰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진❷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될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다양한 것들이 하나 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탄성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모인 물들이 아름다운 바다를 이루듯이, 서로 다른 악기가 하나되어 아름다운 오케스트라가 되듯이, 서로 다른 신체 부위들이 모여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 내듯이, 서로 다른 성도들이 모여 하나 되는 교회를 볼 때 그것이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아름답다’라는 탄성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성도들의 다양한 삶의 배경과 신앙의 깊이는 교회를 갈라놓는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는 재료입니다. 성도들의 다양한 의견과 나눔들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은혜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꼭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됨은 ‘단조로움’이 아닙니다. 하나됨은 ‘획일’도 아닙니다. 하나됨은 ‘무능력’도 아닙니다. 하나됨은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다양함을 ‘잘되는 것’에만 몰두시키는 세상의 목소리에 끌려가지 않기를 원합니다. 비록 천천히 갈지라도, 세련되지 못할지라도, ‘하나되어 함께’혹은 ‘늦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다름’이요, ‘거룩함’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함께하면 다릅니다. 하나됨이 능력입니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일보다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는 개혁적 몸부림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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