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반야월교회)

▲ 이승희 목사(반야월교회)

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기저기에서 많은 세미나와 기념대회들이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종교개혁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그 개혁의 기치를 오늘의 교회들이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각종 대회를 열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행사들은 건강한 교회와 바른 신앙을 세워가야 할 오늘의 세대에서 당연히 필요한 움직임이며, 참으로 귀한 일이다. 지난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않는 것만큼 어리석고 불행한 일은 없다. 역사는 어제라는 시간을 통해서 오늘의 모습을 살피는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들이 또 한 번의 분주한 행사로 끝나지 않을까 솔직히 섣부른 걱정도 앞선다.

지난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의 때를 기억하는가? 그때를 회상해 보자. 엄청난 행사와 세미나, 구호들이 한국 교계를 장식하며 전국의 교회들과 각 교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교회의 부흥이나 성장, 교회의 새로운 각성이나 변화의 바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는 성장의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고, 부끄러운 사건과 사고의 소식들이 우리를 아프고 힘들게 했을 뿐이다.

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기도 하지만 평양대부흥운동 11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지난 번에 큰 재미를 못 보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종교개혁 500주년만 기억하는 것일까? 자칫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도 분주함만으로 교회와 교단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지난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특별한 때나 시기가 아니더라도 늘 교회의 개혁과 갱신을 부르짖어 왔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도 그랬고 우리들의 모임에서도 늘 개혁을 말해 오지 않았는가. 노회나 총회나 회합의 자리에서도, 교회의 미래와 다음세대를 걱정하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늘 개혁을 외쳐왔다. 그래도 늘 우리에게는 개혁의 목마름은 여전히 남아있고, 개혁의 희망스러움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종교개혁의 의미와 정신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때의 개혁은 무엇이고 지금의 개혁은 무엇인가?

먼저 종교개혁이라는 표현에서 오는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회가 성경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기 때문에 시작됐다. 그래서 교회의 근본과 제도와 교리를 성경과 하나님으로 돌이키자는 교회개혁이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종교개혁의 정신은 제도나 시스템을 향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신앙이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가 주인 되신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보혈의 은총으로 세워진 그의 몸인 교회는 여전히 거룩하고 은혜롭다. 문제는 교회의 근본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의 신앙과 변화되지 못한 인격과 수준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의 외침이 ‘내가 아닌 교회’로의 외침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과 변화되지 않은 인격을 가진 나부터의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교단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예장합동 교단은 훌륭한 신앙의 선배들이 보수의 신앙을 물려주었고, 오늘의 한국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훌륭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우리는 그 역사를 100년이 넘도록 이어오고 있다. 이것은 우리 교단의 자랑이요 자부심이다. 아직도 여전히 한국교회는 수많은 은혜의 간증들이 있고 우리 교단에는 신실하고 순전한 마음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아름다운 다수의 드러남은 없고, 훈련되지 않고 성숙되지 못한 소수의 드러남이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 교단의 문제는 법과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법과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문제이다. 못된 심성과 탐욕으로 접근하며, 이기적 욕망과 추해진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다.

교단의 서기로 일선에서 섬기며 보고 느낀 것은, 모두가 개혁을 말하고 모두가 변화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과 관계된 실제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면 개혁은 멋진 구호였을 뿐 구태와 적폐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안타까운 점이며 개혁의 내용이어야 한다. 일부의 문제로 교단 전체를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기에는 우리 교단이 가진 아름다운 자산들이 너무도 많고 귀하며 소중하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치며 일어섰던 500년전 그때에도 사실은 종교의 개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개혁이 초점이었다. 교회와 신앙을 악용하고 오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바뀌면 그 사람이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수단도, 환경도 바뀌는 법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지금도 여전히 개혁의 초점은 기독교가 아니라 사람이다.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이룬 우리이다. 나의 개혁은 던져놓고 기독교를 문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문제 삼지 않고 교회인 우리를 문제 삼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기독교를 욕하고 교회를 폄훼할지라도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을 탓하고 개혁했으면 좋겠다. 2017년 오늘의 종교개혁은 우리가 나부터 개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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