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목사(청소년전문사역자)

자녀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인가?

-학교폭력에 대한 교회 청소년부의 대처방안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낸다. 어느 부모님이나 한번쯤 겪게 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자녀가 문제를 일으켜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학교에 불려가는 일’이다. 다행히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청소년 시절을 무난히 넘기는 자녀와 부모님들도 있다. 불행히도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부모는 무척 당황하게 된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 김형민 목사
(청소년전문사역자)

자녀 문제로 학교의 호출을 받는 많은 경우는 폭력이다.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에게 이상한 징후가 나타났는데, 새 옷을 입고 학교에 가면 허름한 옷을 입고 집에 오는 것이었다. 한 날은 자전거로 등교하던 아들이 자전거 없이 귀가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된일이냐?”고 물어보자, 아들은 “빌려준 것 뿐이다, 상관하지마라”며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대개 자녀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소통의 대상을 또래 친구들에게 옮겨가게 된다. 이때 부모의 불화 또는 잘못된 양육태도로 인해 자녀의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경우, 친구들에게 과도하게 몰입하게 된다. 문제는 과도한 몰입으로 싫으면서도 싫다고 하지 못하는 소위 ‘호구’가 되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아이는 옷과 자전거를 빌려준 것이 아니라, 노는 친구들의 표적이 되어 빼앗겼던 것이다.

교회 집사님인 어머니는 자녀의 문제를 필자에게 상의해 왔다. 이처럼 교회 청소년부와 사역자는 교회의 청소년과 관련된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울러 부모는 학교의 학생 선도 운영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학교는 크게 두가지 위원회를 운영한다. 학교폭력위원회와 학생선도위원회가 그것이다. 학교에서 자녀에게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이 두 위원회가 소집된다. 학생들간의 싸움이나, 폭력 사건은 학교폭력위원회에서 담당한다. 교내 흡연이나 절도 사건과 같은 경우 학생선도위원회가 소집된다. 집사님 아들의 문제는 학교폭력위원회에서 다루는 사안이다.
 
관계회복의 기회로 삼으라

학교폭력의 피해를 당하는 학생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고 판단하고 절망과 좌절을 느끼고, 심한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자녀의 학교생활과 친구문제에 부모가 개입하려고 할 때, 자녀는 보통 “내가 알아서 할테니 상관하지마라, 엄마가 학교에 왜 오냐, 창피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자녀의 모든 순간을 지켜낼 최종적인 사람은 부모다.

필자는 집사님에게 당장 학교에 찾아가서 담임선생님과 책임자인 교장, 교감을 만나 항의하고, 아이의 피해사실을 적시하고, 당장 학교폭력위원회 소집을 요구하라고 조언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 학생과 부모님들에게 피해를 입은 자녀와 부모가 공식적으로 그리고 분명히 사과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피해를 당한 아이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커다란 상처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학교폭력을 당하면서 피해학생이 겪는 정서는 억울함, 분노, 절망감 같은 치명적인 감정들이다. 바로 이때 부모가 자녀의 억울함과 분노의 해결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 자녀에게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언제나 함께 하고 힘이 되어주는 대상은 다름 아닌 부모라는 사실을 인식케 함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 회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자신의 학교폭력 사건에 부모가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집사님의 자녀는 가해 아이들의 사과를 받고, 어머니의 일관된 지지를 받으면서 조금씩 정서적 안정을 회복했다. 아이는 보복이나,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지 않을까를 염려하기도 했지만, 가해자는 미성년자인 청소년이다. 부모와 학교가 개입하게 되면 대부분의 가해 청소년들은 폭력 행동을 그치게 된다. 물론 개입 이후의 학교생활이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지 않음으로 개입의 효과는 상당히 크다.
 
나약한 용서보다 공의를 세우라

자녀가 피해자가 됐을 때, 나타나는 예상 외의 경우도 있다.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녀가 학교폭력의 피해를 입었을 때, ‘예수님을 믿는 내가 심판을 해도 되는가’라고 죄책감을 갖는 것이다. 가해 학생들도 내 자녀와 같이 누군가의 자녀라고 생각하며, 피해를 입은 자녀의 억울함과 분노를  풀어가는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 예상보다 많은 부모들이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으로 너무나 쉽게 용서하고 사건을 덮는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잘못된 것이다. 학교폭력을 공론화시키고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가해 학생들의 처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폭력의 피해자가 된 내 자녀와의 관계회복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가해학생들은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위원회와 관련된 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남은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에 큰 문제는 없다.

또한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물건을 빼앗는 것은 범죄다. 이런 행동이 잘못된 것이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가해 학생이 분명히 배워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용서하는 것보다 분명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가해 학생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더 큰 선물이 될수 있다. 공의가 빠진 사랑은 없다.
 
부모와 자녀의 구원의 사건으로

다시 피해 학생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가정은 일찍부터 부모의 불화가 있었다. 남편에게 절망한 어머니는 인생의 목적을 자녀의 성공에 두고, 높은 기준으로 자녀의 성적을 관리했다. 자녀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보다 늘 높은 성적을 원했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자녀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필자는 가정과 자녀의 상황을 파악하고 심방을 갔다. 그리고 우선 어머니가 자녀에게 “그동안 엄마가 너무 미안했어. 언제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엄마는 항상 너의 편이고, 너를 지지할거야”라는 사과의 표현을 하도록 했다. 엄마의 사과를 듣고, 마음을 닫고 있던 아이는 이후 엄마를 의지하고 신뢰하게 됐다. 폭력 사건이 전화위복을 가져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로 들어오지 못하고 영적인 방황을 하고 있던 아버지를 전도하는 구원의 사건까지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자녀가 옷을 빼앗기고 자전거를 빼앗기는 사건 앞에서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 아버지는 없다. 바로 이때가 복음을 전할 절호의 찬스가 되는 것이다.

훗날 이 아이는 잘 자라 대학에 진학했고 군대도 다녀왔다. 현재 청년부 공동체의 멤버로 잘 생활하고 있다. 어머니는 유사한 사건을 겪고 있는 다른 부모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전도하는 교회의 리더로 성장했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

자녀가 피해가 아닌 가해의 입장에 서있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우 역시 작동하고 있는 자녀의 심리적 상태는 피해자와 유사하다. 가해 학생 역시 가정에서 받은 상처나 부모님의 양육태도가 원인이다. 자신보다 약한 친구들에게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해소하는,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자녀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었을 경우, 부모가 나 몰라라 하거나, 자녀에게 화를 내거나, 체벌하는 등의 행위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부모는 먼저 자신이 원인 제공자였음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가 되어 불안함에 떨고 있는 자녀를 적극 보호하면서, 자녀의 잘못은 인정하고 사과를 하도록 해야 한다. 단 이 과정에서 자녀가 행한 것 이상으로 억울한 처벌을 받지 않도록 방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청소년은 국가에서 제정한 청소년육성제도의 통제를 받는다. 모든 학교의 홈페이지에는 학생의 선도에 관련된 위원회와 관련된 회칙들을 공개하고 있다. 이런 원칙 속에서 가해 자녀가 과도한 책임을 지지 않도록 부모는 변호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회 청소년부 사역자 역시 전문성을 갖추고 조언을 해야 한다. 심지어 부모를 대신해서 개입해야 할 때도 있다. 필자는 아버지가 부재중이신 어머니와 함께 학교의 위원회에 아버지를 대신해서 참석해서 어머니와 자녀를 돕기도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청소년 자녀와 부모는 교회를 신뢰하고, 의지하게 된다. 나아가 피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녀와 부모의 구원의 사건으로 결말을 맺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필자에게 가해 학생의 부모님이 도움을 청해오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역시 가장 먼저 부모의 태도가 정리되어야 한다. 폭력 사건이 자녀의 사건이 아니라, 부모가 회개하고 부모 자신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바로 ‘내 죄를 보는 태도’이다.

필자가 사역하고 있는 우리들교회는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고 말한다. 문제아의 경우 그 뒤에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부모들은 “왜 내 자녀만 이런것이냐!”고 항변하면서, 자신의 죄를 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않으면, 문제 자녀의 문제 행동은 그치지 않는다.

자녀는 부모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한다. 자녀의 사건은 곧바로 구원의 사건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자녀에게 사건과 사고가 일어났을 때 부모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 자녀와 부모의 영적 정서적 측면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와 상의해야 한다. 교회와 청소년 사역자는 이런 가정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학교폭력 사건을 겪은 피해와 가해 학생의 경우, 남아있는 정서적 심리적 트라우마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의 치료와 예후 관찰을 꼭 권한다. 필자의 경우 지역의 크리스천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들이나 전문상담기관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고 학생과 부모의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부분은 향후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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