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섭 목사 (마을안교회)

▲ 최영섭 목사
(마을안교회)

언젠가 모 국회의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왜, 국회는 맨날 싸움만 하느냐?”고 물었다. 그 분은 정중하게 “국회의원들이 각자 팔도 전국에서 싸워야 할 싸움거리를 제각각 가지고 와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갈등을 합의로 이끌기 위해 회의를 한다. 그러다보면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골이 더 깊어지고 결국 삿대질을 하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고 나면 구성원들뿐 아니라 그 회의를 주목하는 사람들도 회의(會議)에 대하여 회의(懷疑)를 느낀다.

4월, 노회의 계절이 돌아왔다. 노회는 지난 날들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앞으로 6개월 이상 교회와 총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노회에는 정치가 있다. 정치의 중심에는 법이 있다. 그 법을 만들고 적용시키는 과정은 언제나 성(聖) 노회가 되도록 서로 힘써야 한다. 성(聖) 노회가 되는 충분조건 가운데 하나는 법을 다루며 회의를 하는 사람들의 문제인식이다. 성(聖) 노회에서 법을 다루는 총대들의 자세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서 법의 대표적인 인물은 모세다. 모세는 율법을 선포한 사람이다. 그런데 출애굽 과정에서 모세에겐 다른 백성들과는 확실히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 ‘나아가는 방향’이 달랐다. 60만 명이 애굽을 출발하여 가나안을 향했다. 수평이동이었다. 애굽을 떠날 때에도, 홍해를 건널 때에도, 광야를 떠돌 때에도,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수평 이동이었다. 그것이 모세를 제외한 60만 명이 걸어온 걸음이었다.

그들은 법을 받아들이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법을 선포하고 적용하도록 한 모세는 달랐다. 수평 이동 중 한 번, 그는 수직 이동을 했다. 시내산 위로 올랐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법을 받았다. 그 법을 가지고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60만 명이 살아갈 길을 제시했다.
법을 선포하고 적용시킨다는 측면에서 노회의 총대들은 모세이다. 그렇다면 총대들 역시 다름이 요구된다. 한 번은 위로 올라야 한다. 방향(方向)의 문제이다. 이 땅에서도 방향의 문제는 때로 생사를 가른다.

<파퓰러 사이언스지>(Popular Science)는 눈사태에 갇혀 죽는 사람들의 실수 가운데 하나가 수 톤의 눈에 뒤덮이자마자 맹목적으로 허겁지겁 눈을 판다는 것이라며, 눈사태 조난구조팀이 시체를 발견하고 보니 희생자가 무작정 눈을 파다가 오히려 10m나 더 깊이 들어간 상태였다고 소개한 적이 있었다.

눈을 파는 것 자체는 잘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방향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방향을 바로 잡아야했던 것이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침이라도 뱉어봐야 했던 것이다. 침이 떨어지는 반대 방향이 생명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오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법에 있어서 사실 모세는 그림자였다. 진정한 모세는 예수님이다. 예수 안에서 모세의 법은 완전해진다(마 5:17).

진정한 모세인 그 예수께서는 오름의 의미를 정확하게 제시하셨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산에서 법을 주었다면 진정한 모세인 예수님 역시 산에 올라 산상수훈, 특히 8복을 주셨다. 그 법에 따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

예수께서 제시하신 오름의 방향은 높은 곳이 아니라 겸양의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요지이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방향을 거꾸로 생각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성전에 올라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도한 바리새인이다. 그는 같은 장소에서 기도하고 있는 세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완벽해서 자신이 높아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려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을, 십자가를 지심으로 몸소 보이셨다. 그것은 방향을 잃은 우리에게 예수님 스스로 얼굴에 침을 뱉는 심정으로 보이신 본이다. 그런데 십자가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

모세의 기능을 감당하려면 대중들과 다름이 필요하다. 한번은 저 위로 올라야 한다. 그 오름의 진정한 의미는 깊은 겸양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이다. 법,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도 중요하다. 특히 이번 노회 기간동안 사람을 존중하기 바란다. 그것이 오늘의 모세인 우리가 먼저 나아갈 방향이다.

내려가서 존중하면 그곳은 가장 깊고 움푹 팬 곳이 아니라 최정상임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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