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부터 <기독신문>에서 전문가 칼럼을 통해 다양하고 싶도 깊은 문화세계를 다룹니다. 미술, 영화, CCM, 교회음악 분야에서 명망을 날리고 있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문화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세요.<편집자 주> 

▲ ▒ 작품제목:믿음의 백부장 oil on pulp molding, 83 x 61cm, 2016■이태운 작가는 중앙대학교 통합민족예술대학 순수미술 전공으로, 제2회 성화대전 대상(1985년), 창작미협 공모전 특선(1984년) 경력이 있다. 현재 BARA 명성교회미술인선교회 회장, 강동미술인협회 고문,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이사로 섬기고 있다.

이태운 작가는 압축 폐지(molding) 오브제를 사용하여 작업하는 것이 특징이다. 작품은 부조(형상이나 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기술) 느낌의 장점과 회화적 특성을 고루 갖추고 있다. 요철로 점철된 변화무쌍한 화면은 대단히 다채롭다. 일반적인 캔버스가 아닌 폐지의 굴곡진 면에 작업을 함으로써 묘사는커녕 작업 자체가 힘든 작업을 구태여 선택했다. 폐지는 요철 굴곡의 편차가 워낙 크고, 거친 표면으로 인해 작업 과정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지만 작가는 그 요철 단면과 거친 표면을 치열하고 치밀하게 기술적으로 묘사하면서 작업을 즐겼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굴곡을 활용하여 입체 작품의 부조 느낌이 제법 살아 있으면서도, 밀도 있는 작업으로 미세한 감정까지 묘사했다. 이태운 작가는 “폐지를 작품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 예수님이 사명을 모두 마치시고 죽인 바 되어 버려졌다가 부활하신 사건이 섬광처럼 스쳐갔다. 그 순간 압축 폐지에 예수님을 그려야겠다고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을 때 백부장을 만난 장면을 표현했는데, 예수님보다 백부장을 더 강조한 독특한 작품이다. 예수의 인간적인 초라한 모습과 백부장의 세상적인 화려함 사이의 격차는 당시의 상황에서 지배국의 장교가 피지배국의 초라한 청년 예수께 간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한손에는 단검을, 다른 한손에는 지휘봉을 쥐고 살아 왔다. 수많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백부장은 갑옷과 투구, 단검으로 완전 무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의 무장해제 된 모습은 예수님이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작품 속 압축 폐지 요철은 특히 백부장의 갑옷과 투구로 시각적 효과가 극대화된다. 그러나 갑옷 장신구 묘사의 기술적 현란함에도 불구하고, 투구 속에 감춰진 백부장의 얼굴은 지치고 고뇌에 가득 찬 모습이다. 그의 투구에 달린 아름다운 붉은 깃털 장식보다 예수님의 평화로운 얼굴 모습이 감상자의 잔상에 남는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하인의 육체적 병 낫기를 요청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짙은 회의와 번민, 허무와 고독의 영적 병을 침묵의 간구로 의뢰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세상적인 계급장을 내려놓고 예수께 나아온 백부장의 겸손과 믿음을 보는 이들이 함께 교감하길 원하는 것 같다. 어지럽고 혼미한 세상에서 오아시스 생수 같은 부활의 의미가 전달되고, 버려진 폐지조차 의미를 부여하면 소중한 가치를 갖는다고 암시한다. 어쩐지 만물이 생동하는 3월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주변을 둘러보면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폐품에도 눈길을 주어 새 생명의 숨결도 불어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 유미형 작가

서양화가,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이사, (사)한국여류화가협회 이사, 사랑의교회 미술인선교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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