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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요단을 건넙시다(수 3:1~17)최우종 목사(광주동신교회)

강물을 건너기 전에 먼저 성결하라
하나님 은혜를 바라보며 목표 향해 믿음의 한 걸음 걸어가야

▲ 최우종 목사(광주동신교회)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수 3:5)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오픈 스윔(Open Swim)’이라고도 불리는 여자 10km 수영 마라톤 경기가 처음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경기에 왼쪽 다리가 하나 없는 남아공의 나탈리 뒤 투아 라는 선수가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하던 중, 2001년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그녀는 스페인에서 열린 장애인 경기대회에 참가하여, 1위에 겨우 5초 정도 뒤진 기록으로 4위에 입상하면서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25명의 참여선수 중 당당히 16위를 차지했습니다.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한 각국의 대표선수 9명을 제치고 호기록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녀는 항상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못 미친 것이 아니다. 도전할 목표를 갖지 못한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주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정하시고 예비하신 땅이었습니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가라’고 명하신 그들 생애의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만 했던 첫 번째 난관, 요단강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를 성취하는 일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1.최선을 다하는 능동적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라고 말씀합니다. ‘아침에 일찍이’는 히브리어로 ‘보케르’라고 하는데, 어둠이 물러가면서 하늘 끝에서부터 서서히 희미한 빛이 밝아오는 때를 의미합니다.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던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에서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도, 7장에서 아이성을 정복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는 능동적 신앙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는 명령을 하시면서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라고 약속해주셨지만, 여호수아는 이 문제를 안일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믿기 때문에 소홀히 하거나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기 때문에 최선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고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술램프가 아닙니다.

시인 롱펠로우는 역설합니다. ‘위대한 사람들이 도달했던 성공은 순간의 비행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동료가 잠자는 동안 밤새껏 땀을 흘리며 위로 올라갔다.’

2.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신앙으로 장애물을 극복합니다.

1~2절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요단강가에서 3일을 유숙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얼마입니까? 여자, 어린이 등 가족까지 포함하면 2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 중에는 어린아이들, 노인들, 몸이 아픈 사람들, 병에 걸린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싯딤까지 왔고, 또 싯딤에서 요단까지 약 12~15km되는 거리를 움직여왔습니다. 그것은 보통 과업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행렬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부지런히 요단강을 건너야 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여호수아는 일단 여기서 멈추고 건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행동해야 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빠르시지도 않고 결코 늦지도 않으신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시간’ 혹은 ‘때’를 표현하는 두 가지 단어가 나옵니다. 헬라어로 ‘크로노스’라는 말이 있고 ‘카이로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크로노스’라는 말은 그냥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을 말하고,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장 적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하나님의 때인 카이로스와 인간의 시간인 크로노스 사이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에서는 ‘하나님의 길이 사람의 길보다 높고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때가 우리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때인 카이로스까지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정한 때에 집착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보다 앞서 행하면 결과는 항상 실패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며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하나님의 때 카이로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지 못해서 생긴 그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인해 지금도 중동에서는 계속 분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해서 생긴 인류의 비극입니다.

또 야곱의 어머니인 리브가는 야곱을 크게 쓰시겠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둘째 아들 야곱을 부추겨서 장자의 복을 훔치는 편법을 쓰도록 합니다. 그래서 결국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리브가는 그토록 사랑하는 야곱을 죽는 날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고 바쁜 때일수록 하나님의 때를 재확인하며 고요히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심령의 여유를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3.우리의 시선과 초점을 십자가에 고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3~4절에서 이천 규빗쯤 뒤로 떨어져 언약궤를 바라보고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언약궤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였습니다. 이 언약궤에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두 번째 십계명 돌판이 들어있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인이고 패역한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물건들입니다. 그런 물건들이 담겨있는 언약궤에 시선을 고정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긍휼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갈 때에 우리 앞에 있는 어떤 장애물도 다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4.요단을 극복하는 비결은 자신을 성결케 하는 데 있습니다.

그 많은 행진의 대열 속에 있던 이스라엘이 요단강 앞에 서서 창궐하게 솟아오르고 있는 요단강 물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이 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하고 조바심치고 있을 때에,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대답과는 달리 엉뚱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려옵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이것이 요단을 건너가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난관인 요단을 만나게 될 때에, 내 앞의 장애물을 어떻게 헤쳐나아가야 할 지, 그 전략이나 방법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나의 삶이 거룩한가를 생각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도록 먼저 내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 바로 성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과 하나로 포개지는 마음이 성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7~8)

이러한 모습을 갖추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요단에 들어섰습니다. 아직 요단의 물이 창일했지만 믿음의 한 걸음을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17절의 기사를 경험합니다.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오늘의 메시지를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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