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은 시인 윤동주가 서거한지 72주년 되는 날이었다. 일제의 강압에 고통 받는 조국의 어두운 현실을 시로 노래하고 자신의 연약함에 부끄러워하고 슬퍼하다 간 시인 윤동주의 시는 지금까지도 하늘의 별처럼 우리들 가슴 속에 새겨져 있다. 특히 시인 윤동주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기독교인으로 성장했기에 그의 시는 남다르게 다가온다.

시인 윤동주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부끄러움’이다.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해 1942년 1월 29일 ‘하라누마’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참회록’이란 시에서 밤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고 또 닦는 그의 모습에는 창씨개명에 따른 고통과 현실에 대한 비애가 담겨 있다. 그래서 그는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고 노래한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인 독일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는 ‘부끄러움’을 대하는 태도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태인을 학살한 자신들의 끔찍한 과오와 역사를 자손대대로 부끄러워하며 기억하고 반성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자신들의 과오를 ‘히로시마 원폭’이라는 사건을 내세워 “피해자는 우리”라는 피해의식으로 덮고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최근 아베 정권에서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부끄러움을 외면하고 자신을 합리화 하기 급급할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흔한 일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해보자. 당시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했고, 이 중 3개 노회는 평양에 신학교 설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신사참배 결의를 주도했다. 당시 기독교 인구 37만 명 중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기독교인은 300명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뿐인가. 이후에도 한국교회는 성공과 성장에 급급해 미군정에, 독재정권에, 민주화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정부와 재계에 영합해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잃어버리고 세간의 비판을 받아왔다.

매해 한국교회 내부에서는 주일학교 아이들이 줄어든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우려와 한탄에 앞서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하고 회개하여 스스로 갱신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신을 합리화 하고 방어하는데 급급할 때 부끄러움의 역사는 반복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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