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형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 이진형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올해 겨울은 잔혹했다. 전국을 휩쓴 조류독감과 구제역으로 인해 지금까지 닭, 오리 등의 가금류 3,300만 마리, 소 1,400마리가 집단 살처분 되었다. 함께 지내며 돌보던 가축들을 땅에 파묻어야했던 축산 농가들은 공황상태에 빠져버렸고, 가축전염병 확산방지와 방역을 위해 밤을 지새웠던 축산 관계자들은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시민들의 인내심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두 배로 올라버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주름을 깊게 하는 달걀 값은 그렇다 치고서라도 이 불안한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봐야하는지, 왜 해마다 이 일들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인지, 도대체 확실한 대책이 있기나 한 건지,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시민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보다 근본적 요인은 살아있는 무수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가축들의 집단 살처분은 사람들의 마음 속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자극하는 불편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삶의 터전인 창조세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안한 사건이란 것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축들의 집단 살처분 문제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고, 아울러 교회 차원의 대책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첫째로, 가축들의 집단 살처분은 관계 당국의 대응이 미숙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관계 당국은 애꿎은 철새들을 탓하거나 축산 농가들의 부주의를 문제 삼고, 확산의 속도보다 뒤늦게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서류상 수치상으로 완벽해 보였던 예방적 조치들은 가축 전염병 발생 현장과 실제 상황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집단 살처분 밖에는 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둘째로, 반복되는 가축들의 집단 살처분은 우리 사회가 생명의 권리에 무감각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집단 살처분이 일어났을 때 동물권을 옹호하는 단체들을 중심으로 반대와 항의 표명이 있었을 뿐, 사회의 대다수는 가축들의 집단 살처분 방식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현재 일부 감염 개체의 방역을 위해 주변 집단 전체를 살처분하는 방식은 가축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지 결코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다.

셋째로, 가축들의 집단 살처분에 대해 우리 교회는 생명의 가치에 대한 입장을 세우지 않고 있다.

가축들의 집단 살처분 문제는 동물권과 관련해서 기독교 생명윤리의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해 교회의 고민이 부족하다. 다행이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생명윤리위원회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 문제에 대해 교회의 관심을 촉구하였지만, 아직 대다수의 교회가 동물들의 생명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성경에는 가축들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실려 있다. 창세기는 동물을 사람들과 함께 창조된 피조물이자 언약의 대상으로써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기는 가나안 여정의 동반자로써, 레위기는 하나님과 화해의 매개체로써, 시편은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으로써, 잠언은 의인의 책무로써, 요나서는 구원의 대상으로써 나타난다. 신약성경에도 마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희생의 상징으로써 가축을 이야기한다. 이는 가축들이 사람들과 함께 창조세계의 일원으로써 살아가는 생명공동체의 일원임을 묘사하는 것이다. 즉 성경은 사람들과 가축이 한 집에서 지내는 한 가족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교회가 성경의 입장을 따라 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가축을 대한다면 공장식 축산의 문제, 과도한 육식의 문제, 동물권의 문제 등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선 적어도 가축들의 집단 살처분 만큼은 교회가 앞장서서 시급히 대안을 찾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또다시 잔혹한 계절이 반복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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