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년 기독교교육 이념 성실히 구현하다

애국애족 근대교육 진력한 명문사학 …
‘대구의 고등부’ 자부심으로 파워엘리트 길러낸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5호로 등록되어 있는 아담스관. 1908년 3월 30일에 준공된 아담스관은 미국에서 가져온 건축자재와 당시 대구성의 석재를 사용해 지은 영남 최초의 신식 2층 건축물이다.

▲ 영남지역 최초 신식 2층 건물로서, 현재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아담스관. 아담스관 벽면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는 설립이념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곳 아담스관은 제임스 E. 아담스(한국명 안의와) 선교사의 사택이자, 2층 강당은 예배 및 교회 관련 집회장소로 활용되었다. 특히 대구지역 3.1운동 당시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했다. 이처럼 아담스관은 대구의 근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아담스관 정면 벽에는 ‘寅畏上帝智之本(인외상제지지본)’이라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잠언 1장 7절의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는 의미의 이 글귀는 학교법인 계성학원 계성고등학교(이사장:김태동 장로·교장:유철환 집사)가 111년간 지켜온 교훈이자, 존재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기독교정신의 근대 교육의 장 열다

1906년 1월 27일 대구 거주 선교사들이 다음과 같은 결의를 했다. ‘경상지역 기독교인들의 젊은 청년 교육을 진실로 요구하며 우리 또한 그 사항이 긴급하고 교회의 지속적인 설립과 확고함을 위한 대리자 역할을 시작할 때임을 믿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학생을 위한 학교 설립 조치를 취하고 금년 가을 개교를 기대할 것임을 결의함.’

이 결의에 따라 아담스 선교사는 남문안교회(현 대구제일교회) 구내의 초가 행랑채를 교사로 하여 ‘보이스 아카데미(Boys’ Academy)’라는 이름의 학교를 설립했다. 이것이 지금의 계성고등학교의 모체가 되었다.

▲ 대구계성고등학교는 1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초창기 설립 정신을 잃지 않고 기독교학교의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실현하고 있다. 계성고는 100년 넘는 유구한 역사를 지내는 동안 기독교세계관으로 무장해 나라와 민족에 쓰임 받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해 왔다.

계성학교는 미국식 학제의 중등교육기관으로 근대교육의 장을 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철저하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이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계성학교 학생들은 설립 초기부터 대구지역은 물론 경북지역 오지까지 노방전도 활동을 펼쳤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면 준비한 나팔을 불며 찬송가를 힘차게 부르며 마을 사람들을 모았고, 전도지를 나눠주며 “예수 믿으시오”라는 내용의 전도 연설을 했다고 한다. 주일에는 시골 교회에 출석해 주일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유교와 불교가 강한 지역성향으로 반발과 비방이 있었으나,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꾸준하게 전도활동을 펼쳤다. 이윽고 1911년 10월에 아담스관 2층 예배실에서 기독학생들이 모여 ‘계성전도회’를 발족시켰다. 계성전도회는 학업 중에도 틈틈이 모여 선교방법을 논의했으며, 전도를 위한 헌금을 계속해 1912년에는 80원의 기금을 마련해 울릉도에서 전도활동을 펼쳤다. 또한 대구를 중심으로 사방 100리길 이내 지역을 우선 전도대상으로 삼고 특별전도인을 파송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나이와 상관없이 학생 상호간 존댓말 사용과 금주금연, 평등사상과 절제정신 교육, 일제의 압박에도 철저한 주일성수 훈련 등을 통해 교훈에 부응하는 인재를 키워왔다. 계성학교는 1931년까지 15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 가운데 17명이 목사가 되었고, 80명은 조사나 교회학교 교사가 되어 활동하는 등 계성학교는 초창기 대구·경북지방의 기독교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애국애족의 민족 학교로 자리매김하다

대구의 3.1운동은 1919년 3월 8일에 거행됐다. 이때 계성학교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계성학교의 교감 김영서, 교사 백남채 최경학 최상원 등이 숙의한 결과 3.1운동에 적극 참여키로 하고, 김삼도 이승욱 등 학생들에게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하게 했다. 또한 박태현 박성용 등의 학생에게는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오도록 했다.

▲ 지난해 10월 대구시 서구 상리동에 새로운 둥지를 튼 계성고의 본관 전경.

 3월 8일의 대구만세운동에 계성학교 전교생 46명이 참여했다. 당시 대구의 3.1운동으로 형벌을 받은 사람은 모두 76명이었다. 그 가운데 44명이 계성학교 전현직 교사와 재학생들이었다. 또한 3.1운동으로 휴교 당했던 대부분의 학교가 2~3개월 뒤에 개교한 것과 달리 계성학교는 1년이 지난 1920년 4월에야 개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계성학교는 대구지역 3.1운동 진원지이자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일제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온 계성학교는 1945년 일제의 강압으로 대구공산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가, 49년에 와서 환원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6.25전쟁 때는 학교가 군부대 시설로 사용하면서 학생들은 대구서문교회에서 수업을 받았으며, 다수의 교사와 학생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했다. 기독교교육에 입각한 계성학교의 애국애족 정신은 이렇게 계속 발현되어 왔다.

계성고는 ‘대구의 고등부’

이처럼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은 헌신으로 나라를 지킨 계성학교는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국가발전에 밑거름이 된 우수한 인재 배출과 지역복음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1950년 계성중학교와 분리한 계성고등학교는 지난 2000년에는 100년간 지켜온 금녀의 전통을 접고 남녀공학 학교로 변신했다. 계성고의 변화는 2006년 10월 15일 개교 100주년을 지나면서도 급속도로 전개됐다. 2009년 7월 15일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평준화 이후 일반학교로는 건학이념을 구현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었다. 자사고가 된 이후 계성고는 학교가 표방하는 기독교교육 이념을 성실하게 실현시켜 가는 한편, 명문 사립고등학교의 위상을 착실하게 세워가고 있다. 지난해 3월 계성고는 한 세기 넘게 터를 닦았던 대신동 시대를 마감하고 대구서 서구 상리동에 캠퍼스 세워 이전했다.

▲ ‘계성고는 대구의 고등부’. 계성고는 뜨거운 학구열 못지않은 신앙열정으로 가득하다. 절기마다 갖는 대수양회, 세례식, 학부모와 함께 하는 특별새벽기도회는 계성고에서 만날 수 있는 신앙전통이다.

계성고는 새로운 하드웨어 속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건학이념의 소프트웨어를 알차게 채워가고 있다. 계성고는 기독교학교라는 정체성에 맞게 매일 아침 학급별로 찬송 및 예배를 드린다. 매주 1시간씩 시청각실에서 학년별로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를 가르치는 종교과목을 정식으로 채택해 주 1회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성경중심의 기독교세계관을 키워가고 있다.

과거 선배들이 보여주었던 신앙의 기개도 잘 계승되고 있다. 연중 신입생 환영예배, 세례식,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절기마다 전교생과 교직원이 함께 하는 대수양회, 고난주간새벽기도회 등 신앙증진에 도움되는 다양한 활동을 갖고 있다. 특히 고난주간에 갖는 새벽기도회와 시험을 앞둔 시점에는 학생과 교직원 외에도 학부모들도 기도의 자리에 동참하고 있다. 학사일정에 기도회를 정식으로 담을 정도이다.

동아리 모임인 ‘언더크로스’라는 밴드가 있는데, 이 밴드가 일반 학교에서 활동하는 기독동아리 지원활동을 펼친다. 학급마다 선교부장을 세워 운영하는데, 매일 아침 예배와 대수양회는 선교부장 중심의 학생자치로 운영된다. 선교부장들은 또한 십시일반 돈을 모아 해외엔지오단체와 연결해 선교지의 어려운 아이와 자매결연해 도움을 주고 있다. 내년에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해외선교지를 방문해 선교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현창용 교감 계성고가 자체가 교회의 고등부로 칭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현창용 교감은 “학업으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기 쉬운데 학교 안에서 교회보다 더 활발하게 신앙교육과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에 믿음의 다음세대를 육성하는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현 교감 말처럼 계성고에 입학한 이후 절반 이상이 신앙을 갖고 세례를 받고 졸업한다. 계성고는 매년 2학년을 대상으로 세례식을 집례한다. 지난해의 경우 153명이 2년간의 신앙교육의 결실로 세례를 받았다.

유철환 교장은 “계성고는 기독교교육을 통해 사회에 영향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파워 엘리트의 산실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지난 111년간 지켜온 건학이념을 토대로 기독교세계관 함양과 인성과 인품을 키우는 교육으로 시대마다 귀하게 쓰임 받는 학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 다짐했다.


계성고가 배출한 자랑스런 동문들

111년이라는 격동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변함없는 기독교학교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은 계성고등학교는 새로운 터전에서 기독교 명문 사학으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계성고는 1세기를 훌쩍 넘는 세월 속에 교회와 국가에 기여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했다.

문화계의 김동리 박목월, 음악계의 박태준 현제명이라는 걸출한 인물들이 바로 계성고 출신이다.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로서 명예의전당에 등록한 신학계의 이상현 박사, 교육계의 신태식, 독립운동가 백남채 선생도 계성고 동문들이다.

계성고는 전통적으로 유도에 두각을 보인 학교다. 국내 유일의 유도 10단 신도환을 비롯한 금메달리스트 안병근 김재엽 이경근 등이 계성고가 배출한 대표적인 유도인들이다.

계성고 출신의 목사와 장로들이 조직한 계성목장회에는 600여명이 회원으로 등록해 매월 정기모임을 갖고 학교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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