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신앙교육 전통, 교육혁신 동력되다

자랑스런 주일성수·애국애족운동 정체성 계승, 학력 경쟁력 등 전 분야서 큰 성과 얻어

 

▲ 개교 108주년 기념예배에서 찬양하는 광주 숭일고등학교 학생들.

과거 선교사들이 세운 백년 전통의 미션스쿨들은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교육의 한 축을 이루며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공교육 중심의 교육문화와 대안학교들의 도전이라는 틈바구니 속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평가가 있지만, 꾸준히 지켜온 신앙적 가치와 전통이 빚어낸 세월은 온갖 풍파 중에도 그리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전국 미션스쿨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보는 여행을 시작한다. <편집자 주>

소년체전 준결승이었다. 이번 경기만 이기면 대망의 결승전, 게다가 팀에는 나중에 국가대표 센터로 자라는 임정명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있었다. 우승까지 거칠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숭일중 농구팀은 기권을 선언했다. 이유가 충격적이었다. 경기일이 바로 주일이었던 것이다.

파리올림픽의 영웅 에릭 리델의 <불의 전차> 이야기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만, 그처럼 주일성수를 위해 스스로 영예를 포기하는 사건이 한국 스포츠 역사에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 숭일고의 1세기 역사와 동문들의 자취를 담은 전시실.

하지만 숭일학교로서는 어떤 대회에서 차지한 트로피보다 가장 값지게 생각하는 기록이 바로 농구부의 기권패이다. 그리고 그 기록을 지금껏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숭일학교가 100년 넘는 역사 동안 신앙을 최우선으로 두는 교육철학을 일관되게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숭일고등학교(이사장:한기승 교장:임인호)는 1907년 3월 5일 미국남장로교선교부 소속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가 설립한 광주 최초의 근대학교이다. 1895년 한국에 도착한 유진 벨 선교사는 호남지역으로 파송을 받아 목포에 이어 1904년 광주 양림동에 선교부를 개설하고, 대한제국의 인가를 얻어 남녀학교를 시작했다. 이것이 숭일학교와 수피아학교의 시작이다.

‘숭일(崇一)’이라는 이름은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긴다’는 뜻과 ‘으뜸’이라는 뜻 두 가지를 내포한다.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삶’인 믿음,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삶’으로서의 소망, ‘더불어 함께하는 삶’으로서 사랑. 이렇게 세상 최고의 가치인 ‘믿음 소망 사랑’은 숭일고의 교훈을 이룬다.
교훈을 실천하는 방식 중 하나는 겨레를 향한 애국애족의 행동들이었다. 1919년 3월 10일 양림동에서 점화된 광주 일대 독립만세운동에 주역으로 앞장서다 교사와 학생 28명이 옥고를 치르고, 그 중 송광춘 학생이 옥사한 것이 시작이었다.

1929년 일본인 학생들과 충돌사건으로 시작돼 수년간 일제와 맞섰던 광주학생운동에도 큰 몫을 감당하다 1931년 중학교 이상은 폐쇄되고 소학교만 남게 되고, 다시 5년 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완전 폐쇄되는 탄압을 겪는다.

한편으로는 초대 교장 존 F. 프레스톤(한국명 변요한) 선교사의 뒤를 이은 역대 교장들의 지도 속에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기독운동에도 앞장섰다. 1911년 창설된 숭일YMCA는 이후 광주·전남지역 YMCA 창설의 모태 역할을 하며, 오늘날까지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기독운동이 전개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해방 이후 복교와 함께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되고(1951년), 전남노회유지재단에서 학교법인 숭일학원으로 설립자 변경이 이루어지며(1964년), 양림동 시대에서 운암동 시대(1971년)를 거쳐 일곡동 시대(1993년)를 맞이하고, 남녀공학으로 전환되는(1997년) 숱한 변화들 속에서도 학교의 정체성은 한결 같이 유지됐다.

▲ 광주 숭일고등학교 이사장 한기승 목사와 교장 임인호 장로.

이사장 한기승 목사(광주신일교회)는 “무늬만 미션스쿨이 아니라 신학교 못지않게 철저한 기독교신앙이 바탕을 이루는 학교로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예수님의 복음 정신, 칼빈의 청교도 정신, 배유지의 선교정신을 바탕으로 진리를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신앙양심과 신앙인격을 세워주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하루 일과의 시작을 알리는 찬송소리가 교정에 울려 퍼지면, 모든 교사와 학생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각자의 자리에서 약 10분간 경건예배에 들어간다. 매주 수요일 4교시는 전체 숭일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예배하는데, 이 시간에는 형제학교나 다름없는 광신대학교에서 수시로 찾아와 찬양과 예배인도를 담당한다.

지역노회나 교회들과의 유대도 대단히 돈독해 각 노회장과 지역 목회자들이 자주 채플을 통하여 강단에 서고, 준비한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시간이 마련된다.

점심과 저녁 시간에는 교정 곳곳에서 학생 혹은 교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기도모임이 이루어지고, 여러 찬양동아리 성경연구동아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며, 매년 금연서약식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술·담배나 왕따 체벌 등이 없는 건강한 학교를 만들어가는 모습 등은 과연 기독교학교로서 숭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 광주숭일고등학교 전경.

특히 철저한 주일성수 신앙의 전통은 옛 농구팀의 전례에 이어, 지금도 일요일 등교나 근무가 없는 학교의 모습으로 계승되고 있다. 그렇다고 타 학교에 비해 학력 신장 등 경쟁력이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서울대 최종합격자 수는 평준화 대상인 전국 일반고들 중 17위, 광주권에서는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서울소재 대학 진학률이나 의치대 계열 합격률도 대단히 높다. 특목고를 제외한 남녀공학 학교들 중에서는 단연 최상급이다.

그렇지만 숭일고에는 이런 가시적 성과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목적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가치는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노력과 헌신을 아우른다. 그것은 백년을 넘어 천년을 가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숭일의 긍지이며 명예이다.

임인호 교장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왔던 소중한 신앙적 정체성과 전통을 앞으로도 굳게 붙들면서, 동시에 모든 학교 구성원들의 열정과 헌신을 통해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으로 시대를 오히려 앞서가는 학교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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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함양·창의적 체험 ‘조화’

이해와 포용의 최고 리더십 키우는 기회 제공

▲ 숭일고 봉사체험의 날에 지역 어르신들을 학교로 모시고 정성껏 섬기는 학생들.

매년 5월이면 숭일 교정이 몹시 분주해진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물론이고 학부모와 동문, 지역주민들까지 찾아와 마치 커다란 장터나 축제를 방불케 하는 한바탕의 어울림이 이루어진다. 바로 ‘봉사 체험의 날’이라고 불리는 숭일고만의 이벤트이다.

이날이 되면 전체 학생들이 학교 주변 일곡지구의 20여 경로당과 독거노인 가구들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모셔 와서는 동문들과 지역대학들의 도움을 받아 식사 대접, 위로공연, 무료진료, 이미용봉사, 피부마사지, 돋보기 선물 등으로 다채롭게 섬기는 시간을 마련한다.

또한 지역 환경정화활동과 각종 캠페인도 함께 펼치며 숭일학교가 겨레와 이웃을 위해 발휘했던 사랑과 헌신의 전통을 구현하고 있다. 임인호 교장은 “봉사체험의 날은 학생들이 공동체 정신을 기르고, 섬김과 배려의 정신을 직접 실천하는 소중한 기회”라고 밝힌다.

이외에도 숭일고에서는 학생들이 인성을 함양하고, 창의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인성교육 실천주간’을 운영하여 이 기간 동안 칭찬릴레이, 사랑의 미소 찾기, 부모님 밥상 차리기, 학교폭력 예방 및 행복한 학교 만들기를 위한 발표회 같은 일정들이 진행된다.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무등산을 등반하거나 광주챔피언스필드 야구장을 찾아가 경기를 관람하는 등의 사제동행 행사, 프리허그데이 사과데이 또래상담 등 남다른 개성이 돋보이는 인성교육 실천 프로그램들도 눈에 띈다.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비전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기회를 갖도록 도와주는 두드림(Do-dream)캠프도 빼놓을 수 없다. 순교유적지를 포함한 전국의 명소를 답사하고, 자랑스러운 선배들을 비롯한 저명인사들을 만나면서 참된 인생으로 다가가도록 지표를 제시한다.

이처럼 숭일고가 입시 위주의 활동들에 몰입하는 보통의 학교들과 다른 길을 애써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아는 마음이 바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갖춰야할 최고의 리더십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숭일고가 배출한 자랑스러운 동문들

미션스쿨로서 숭일고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는 한국교회에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 특히 수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해낸 일이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목회자만 200~300명을 헤아릴 정도로 숭일학교는 많은 청소년들을 복음을 위한 헌신의 길로 안내했다.

그 중에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상징과도 같은 김준곤 목사, 개혁신학의 거두인 서철원 교수, 광신대학교 정규남 총장, 호남신학대 황승룡 전 총장 등 교회사와 신학계에 명성을 떨치는 지도자들도 적지 않다.

정관계와 법조계에도 많은 졸업생들이 진출했다. 특히 참여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을 지낸 조영길 장군은 자신의 모든 공적사항과 기념이 되는 물품들을 모교에 기증한 바 있다. 학교에서도 이를 후배들의 귀감으로 삼도록 본관에 전시관을 개설해놓았다.

문화예술계에는 <서편제> 등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친 영화감독 임권택, <그 섬에 가고 싶다> 등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 임철우, 민족 격동기의 작곡가 정율성 등이 있으며, 스포츠계에서도 탁구 국가대표로 각광받은 김택수 등이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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