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식 목사(광현교회)

기적 일구는 하늘의 셈법 배우세요
하나님 약속 믿지 못하는 땅의 셈법은 거룩한 사명과 계획 망쳐

▲ 강재식 목사(광현교회)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 6:13)

외국인들이 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계산을 아주 잘하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계산을 잘한다는 것은 머리가 좋아 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의미도 있지만, 약삭빠르고 타산적이라는 의미의 이중적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쨌든 두 의미 모두 우리 민족이 땅의 셈법에 익숙한 민족이라는 뜻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날 예수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과 목사들 중에도 땅의 셈법에 관심이 많고 능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땅의 셈법을 넘어 하늘의 셈법을 더 많이 공부해야 합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을 살기에 땅의 셈법도 중요하지만, 천국시민권(빌 3:20)을 가진 하늘 백성으로서 하늘의 셈법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 가운데에서도 아주 특별한 기적으로 알려져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되어지지 않고 설명도 불가능합니다. 성경의 기적들 가운데 병 고침, 귀신 쫓음,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함과 같은 것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생각하다면 그래도 조금은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가 도시락으로 가져 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장정만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은 땅의 셈법에만 능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수식으로 풀 수 없는 이해 불가한 사건입니다. 한마디로 하늘의 셈법이 아니고는 이해 불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주님의 말씀에 땅의 셈법으로 계산한 제자 빌립과, 하늘의 셈법을 눈치 챈 제자 안드레의 각각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그리고 하늘의 셈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줍니다.

땅의 셈법의 소유자, 제자 빌립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주님의 말씀이 있은 후 제자 빌립은 ‘장정만 오천 명, 한 끼의 식사비는 최소 이백 데나리온, 설사 돈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저녁이고 빈들이라 사 먹을 곳도 없다’로 즉각 그 좋은 머리가 셈을 시작합니다. 주님이 말씀 하셨다면 해답도 주님께 있음을 알아야 했는데 빌립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빌립은 이성의 소리는 머리에 가득했으나, 믿음의 가슴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하늘의 셈법은 믿음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하늘의 셈법은 제자훈련의 고급과정이라 빌립은 아직 거기까지 못 배운 것입니다.

민수기 13~14장에는 모세의 명령을 받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40일 동안 탐지하고 온 열두 정탐꾼들의 보고회가 나옵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우리가 사십일 동안 살펴본 가나안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거인이어서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 정복은 불가능 합니다”(민 13:25~29)라고 땅의 셈법으로 절망적인 보고를 합니다. 한마디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었으나 땅의 셈법만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약속의 땅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한 미련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들을 강한 손과 큰 팔로 기적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는 열 가지 재앙이었으나, 이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열 가지 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홍해 앞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기둥과 불 구름기둥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고 있었고, 매일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도 있었으나 이스라엘은 하늘의 셈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 은혜, 함께하심, 그리고 때때로 기적 안에 있으나 깨닫지 못하는 빌립 스타일의 빌립교인, 빌립제직, 빌립교역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혹시 땅의 셈법에만 능하고 하늘의 셈법에는 무지한, 이름뿐인 하나님의 사람은 아닌지요?

하늘의 셈법의 소유자, 제자 안드레

어린 아이와 도시락을 함께 들고 온 안드레는 오병이어의 방법을 알았을까요? 요한복음 6장 9절에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질문한 것을 보면 안드레 역시 오병이어의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의 방법을 구체적으로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주님의 손에 들려지면 반드시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적, 즉 하늘의 역사는 주님의 손에서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우리의 작은 믿음이 가세해야 합니다.

앞의 열 명과 똑같이 사십 일 동안 가나안을 탐지한 갈렙과 여호수아는 열 명의 다른 두목급과는 달리 민수기 14장 8~9절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여호와가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하나님을 향한 된다는 믿음을 선포합니다. 여호와가 새겨진 가슴을 갖고 하늘의 셈법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 14:24)고 응답하셨습니다.

시돈의 사르밧 과부는 자신의 생명을 위한 마지막 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말에 순종 하였을 때, 가루를 담은 통과 기름병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은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왕상 17장) 하늘의 셈법을 이해한 사람들의 참 모습과 열매들입니다.

하늘의 셈법을 배우려면

하늘의 셈법은 훈련되고 배우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영적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지 않으면 영안이 열릴 수 없고,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하늘의 셈법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 성을 포위한 아람 군대 앞에서 떨고 있던 사환을 위해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들과 함께한 자보다 많은 것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사환의 영안이 열려서 엘리사를 호위하는 천군천사의 모습을 보고 적군보다 우리 편이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왕하  6:17)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위해 함께 엠마오로 내려 가시면서 말씀을 풀어주시고, 만찬을 한 직후 그들이 눈이 열려서 부활의 주님을 깨닫게 됩니다.(눅  24:45)

하늘의 셈법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십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은, 아니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목사들도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살려고 발버둥을 치다 안 되면 절망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도 땅의 셈법으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것입니다. 땅의 셈법으로만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사명과 계획들을 망치기도 합니다. 땅의 셈법은 내 자리, 나의 밥그릇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늘 모자람을, 안 됨을, 그리고 절망을 선언하고 그 말처럼 됩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사람의(히 11:37) 모습도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는(롬 8:37) 성령의 사람의 모습도 아닙니다.

우리는 ‘기적의 일상화’를 꿈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때때로 필요할 땐 반드시 우리 가운데 기적이 있어야 하고, 그때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2017년에는 제자훈련의 고급과정인 하늘의 셈법을 꼭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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