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식 목사 (광현교회)

역사와 하나님, 양심의 소리 들어라

송곳으로 귀를 뚫은 종들이여, 참된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 강재식 목사
(광현교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리라”(수 1:9)

직장인인 한 성도님과 상담을 하다가 주변 사람들이 예민해져 항상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같고, 언제 누구에게 뒤통수를 맞을지 고민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요즘 여러 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 내용들이 사랑과 신뢰, 정의와 화합과는 거리가 먼 거짓과 진실의 혼재, 상식과 몰상식의 충돌, 신뢰와 믿음을 저버린 배신과 내부고발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과 사회, 교회와 성도, 그리고 국가 전체가 중병이 들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무엇을 듣고 보는가는 그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특히 무엇을 들었는가는 그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두 개의 귀에 귓바퀴를 주셨습니다. 귓바퀴가 앞을 향하여 있는 것은 앞소리는 잘 듣게 하고, 뒷소리(뒷담화)는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물들도 듣고 싶은 소리를 들을 때는 귓바퀴를 소리나는 방향을 향하여 집중하며 쫑긋 세우곤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귀를 가지고 들리는 소리를 분별하며 어떤 소리를 집중해 들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자 책임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복음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우리 목사님, 장로님들은 어떤 소리를 듣고 반응할 것인지 늘 자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 중에는 하나님의 소리도 있지만 사탄의 소리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또한 천국의 비유를 말씀 하실 때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9 등)고 하셨습니다.

본문은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느보산에서 자신의 역할을 끝낸 후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의 역할은 애굽에서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길 끝까지 가는 것이었고, 이제 새 시대를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맡기려 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본문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본문 말씀의 초점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에 여호수아가 들었던 세 가지의 소리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들어야 할 소리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역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영국의 역사가 카(E. H. 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역사의 사실들은 역사가들이 선택한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역사관과 성경적 역사관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적 역사관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지금 나를 왜 이곳에 두셨습니까?”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우리는 국민교육헌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잘 먹고 잘살고 즐기고 오라고 태어난 것도 결코 아닙니다. 때문에 2017년 대한민국의 성도로 살아가게 된 우리의 사명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 1절은 히브리어 ‘와우(Vav)’로 시작합니다. 아직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은 모세오경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며, 모세는 죽었지만 여호수아로 그 사명이 연결된다는 미래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의 흐름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시대는 종말을 고하지만, 이 과정을 통하여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섭리하고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역사의 소리는 “지금 온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라”(2절)는 것입니다. 가나안 시대는 여호수아 혼자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의 시대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엘리야 시대보다 엘리사 시대가 갑절의 영감이 필요했다면, 모세 시대보다 여호수아 시대는 갑절의 영감과 능력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 갑절의 능력을 받고 온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의 정복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행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엄청난 명령 앞에서 여호수아는 역사의 소리를 듣고 역사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국가와 교단의 어려움과 혼란 앞에서 역사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왜 나를 지금 이 때에 목사로, 장로로, 성도로 부르셨는가?

둘째,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말씀하여 이르시되”(1절),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7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8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9절).

참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늘의 소리, 하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소리는 초신자나 평신도들만 들을 것이 아니라 교회 지도자인 목사님과 장로들이 바로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들려왔던 하늘의 소리, 다메섹 도상의 바울에게 들려왔던 하늘의 소리, 유라굴로 광풍으로 열나흘동안 고초를 겪으며 고통 중에 부르짖던 바울 사도에게 “이제는 안심하라”고 들려왔던 하늘의 소리가 오늘 우리에게 들려와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 말씀이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길가나, 흙이 얕은 돌밭이나, 가시떨기 밭이 아닌 좋은 땅을 만들어서 말씀이 내 마음에 심어져서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결실을 거두어야 합니다.(마 13장)

기독교의 최대의 적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라 실용주의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말씀을 듣고 내가 추구할 것이 무엇인가가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근원을 새롭게 하며, 기질까지 방향을 바꾸어 놓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내개 들려올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들려온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2017년 우리 각자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소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셋째, 양심(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본문 6절 “강하고 담대하라”, 7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9절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여기서 강한 마음, 담대한 마음,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으로 강조된 이 세 번의 말씀은 마음을 새롭게 할 때만 가능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면 우리 내면의 야당인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우리 안에 살아 존재하는 양심의 기능이 잘 작동할 때 하나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은 내 안에 존재하고, 내 것인 반면 언제나 내 편에 서지 않습니다. 내 영혼의 파수꾼이 되어 때때로 양심불량인 나를 준엄하게 책망하고 꾸짖습니다. 성경은 깨끗한 양심, 더러운 양심, 바른 양심, 화인 맞은 양심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양심의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오늘날 양심 없는 성직자, 중직자가 많음은 우리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양심을 깨끗케 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바른 양심으로 살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신 말씀처럼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해 모든 믿는 자들의 본”(딤전 4:12)이 되어야 합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말도 못합니다. 듣지 못하면 말할 수도 없습니다. 왜 오늘날 목사의 말이, 장로의 말이 가짜가 많습니까? 하늘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귀를 막고 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바로 다음에는 히브리인 종에 관한 법(출 21:1~6)이 나옵니다. 히브리인 종은 종이 된지 일곱 해가 되면 몸값을 물지 않고 자유인이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인이 되길 거절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재판장을 찾아가 주인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 영원히 종으로 살겠다고 말하고 확인하면 재판장은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려가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고 영원히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자원하여 종이 된다, 이것이 출애굽기 21장의 본질입니다. 왜 송곳으로 귀를 뚫을까요? 주인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하겠다는 말 외에 달리 해석 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 말씀을 받는 목사님, 장로님, 성도님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자유를 얻었으나 스스로 자유함을 포기하고 종이 되기로 결단한 사람들일 겁니다. 한번 종은 영원한 종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종임을 인정하고, 종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송곳으로 뚫은 귀를 갖고 세 가지의 참소리, 생명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특히 총회를 사랑하고 총회 일을 하는 총대 목사 장로님들은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역사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 양심의 소리를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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