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섭 목사(대대교회)

▲ 사진은 흑두루미학교를 통해 생태를 배우는 주민과 어린이들.

순천만 명물은 선량한 마을사람이다
불편과 고단함 기꺼이 감수하며 아름다운 생태계 지키며 가꾸고 있어

순천만 습지하면 먼저 기분 좋은 상상을 한다. 갈대밭이 떠오르고 갯벌에서 꿈틀거리는 게와 짱뚱어가 재롱부리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힐링의 최적지다. 이름만 들어도, 꿈에서 보아도 마음 편해지는 곳이 순천만 습지다.

▲ 순천만작은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모습.

웬만한 관광지는 한두 번 구경하면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순천만 습지는 볼수록 은은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100번 와보지 않고는 순천만을 보았다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앞에 쓴 글에서 ‘생태공화국 순천만’이란 말을 사용한 적이 있다. 이는 강, 바다, 개벌, 산, 들, 논 등 모든 자연이 한 곳에 오밀조밀 어우러져 있고 그 속에 수 천 수만의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순천만 습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화려한 자연생태관이다.

오늘도 순천만은 수려한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탐방객들은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간다. 하지만 이러한 밝은 모습 뒤에 순천만 사람들의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가 감추어져 있음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으리라. 마치 화려한 무대 위에서 눈부신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도 관객들이 알지 못하는 그늘과 어두움이 있음과 같다고나 할까.

순천만 사람들은 1년 내내 겪는 생활의 불편이 일상이 되어 있다. 교통체증은 기본이고 소음과 매연을 둘러 마셔야 한다. 주민들을 위한 시내버스마저 내방객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마을 노인들이 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 때때로 탐방객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승강장에서 주민들을 태우지 않고 통과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 대대교회 교우들이 생태문화해설사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투덜거리는 주민들을 향해 탐방객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관광객 때문에 수입이 늘었으니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정말 그럴까? 실제 순천만만 아니라 어느 관광지든지 마을 주민들은 시설투자를 하지 못한다. 그럴 재력도 없고 경영능력도 없다. 80~90%는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규모 있는 숙박시설과 식당들을 경영하고 있다. 업소마다 엄청난 쓰레기와 오염물질들을 쏟아낸다. 펜션에 묵는 투숙객들의 소란한 행동과 취사행위로 인한 악취와 탄소배출 등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순천만 사람들이 겪는 또 다른 아픔이 있다. 갑자기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땅 값 때문이다. 몇몇 지주들은 떼돈을 손에 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바람은 많은 농토를 잃게 했고, 돈 보다 더 중요한 형제애와 이웃 간의 다정스러움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특히 매년 10월 말부터 3월 말까지 6개월 동안에는 순천만 주변의 농토를 가진 사람들이 별도로 겪는 불편이 있다. 이 무렵은 겨울 철새들이 와서 묵는 시기여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다보니 자기 논밭에 들어가는 것까지 제한을 받는다. 물론 철새 보호 노력은 잘 하는 일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에게 많은 불편과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배려는 미미하다.

▲ 순천만 사람들은 착한 심성으로 마을을 가꾸고, 생태를 지키기에 힘쓴다.

그것만이 아니다. 순천만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운행하던 탐사선과 휴게소 운영권의 주체를 두고 순천시와 협상을 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결국 일방적인 주민들의 양보와 희생으로 끝이 났다. 전문적인 경영기법이 필요한 영역은 그리했다 치더라도, 평소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해오던 일까지 순천시에 내어 주고 말았다. 이해 당사자들에게 다소의 보상이 주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의 핵심은 정작 순천만 주민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모조리 잃었다는 점이다. 수 백 년 동안 순천만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역할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크나큰 상실감을 일으켰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순천시가 뒤늦게나마 주민들의 역할에 대한 귀중함을 깨우치고, 여러 부문에 주민참여를 장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순천만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투사의 기질이 있고 적극적이어서, 무슨 일을 하든 1등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서 순한 양이 되었다. 욕심도 없고, 싸우는 것도 싫어한다. 여러 불편한 일을 겪으면서도 민원을 내는 법이 없다. 불량한 사람도,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도 없다. 큰 마을인데도 술집이 없다. 다들 순천만 사람들만 같다면 우리나라에 경찰서도 필요 없을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마을에 농사용 전기를 공급하는 전봇대 208개를 뽑은 일이 있다. 새들이 전봇대와 전깃줄에 부딪쳐 죽기도 하고, 날개가 부러지기도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렇다 해도 농사용 전기는 농민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선량한 순천만 사람들은 순순히 따라 주었다. 농사철에 물을 뿜어 올릴 수 없게 되어 생기는 불편과 고단함을 기꺼이 감수한 것이다. 순천만 사람들은 이렇게 마음이 곱고 착하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순천만의 명물은 갈대밭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다’라고 말이다. 순천만에 오거든 진짜 본토박이 사람들을 만나보라. 순천만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곳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불량하면 전부가 나쁜 곳이 된다. 누추한 천막에서 지내는 베두인들이 방문자들을 순박함과 친절로 맞아줄 때, 허허로운 광야도 한없이 아름다운 곳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순천만이 아름다운 것은 이곳을 지켜온 순천만사람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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