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역사, 어제를 잇고 내일로 안내한다

100여 안내요원 자랑스런 신앙 이야기 소개 …“묘지기 심정으로 영성 회복 도와”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을 방문한 여천제일교회 학생들에게 보라색 복장의 안내요원이 선교사들의 생애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이곳에는 기독교의 유일신을 하나님으로 번역하고, 신약성서를 완역한 레이놀즈 선교사님의 두 아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1월 13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하얀 눈발이 흩날린다. 유난한 맹추위를 견디고자 단단히 무장했지만, 말을 시작하자마자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보라색 옷차림의 안내자가 묘지 주인공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자, 멀리서 찾아온 여천제일교회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10여 명씩 짝지은 학생들을 조별로 인솔하는 안내자들은 넓은 묘역 이곳저곳을 마치 눈감고도 다닐 수 있다는 듯 빠르게 누비다가, 종종 멈추어서는 각 묘소에 얽힌 사연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크리스마스씰을 제작하고 결핵환자들의 치유에 앞장선 셔우드 홀,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헐버트, 구세군 선교사로 남편과 함께 평생 고아들을 돌보았던 위더슨, 이화학당을 설립한 스크랜턴, 4대에 걸쳐 7명의 선교사 가족이 함께 안장된 언더우드 등 대략 20여 명의 선교사들에 대한 소개가 낭랑한 음성을 통해 학생들의 귀에 꽂힌다.

만약 안내자들의 해설이 없었다면 학생들에게 양화진은 자신들과는 별 상관없는, 조금 이색적인 공동묘지쯤으로 인상에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내자들의 도움으로 1시간 남짓 양화진 탐방을 마치고 나면 푸른 눈의 서양선교사들이 왜 어린 자녀들과 함께 쓸쓸히 한강변에 묻혀있는지, 그들의 과거가 자신들의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생하게 깨닫게 된다.

오늘 하루 양화진을 찾아오기로 예약한 인원은 전라도 여수와 경상도 울산에서부터 올라오는 12팀에 총 200명 가량이다. 미리 연락하지 않고 찾아오는 개인이나 가족 단위 방문자들의 수도 적지 않다. 겨울방학 기간이라 평소보다 방문인원이 늘었다. 하지만 토요일이나 여름방학 기간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양화진을 찾아와, 안내자 수를 4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 양화진 안내 봉사자들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는 약 100여 명의 안내자들이 매일 순번을 정해 남자들은 검은색, 여자들은 보라색 복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묘원 관리 책임을 맡은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이재철 목사) 성도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봉사를 자원한 다른 교회 성도들도 섞여있다.

이들은 100주년기념교회가 해마다 두 차례 실시하는 안내자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양화진 역사, 선교사들의 행적, 봉사자들의 자세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실습과 인턴기간을 거쳐 정식 안내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안내자가 되는 데 필요한 자격요건은 까다롭지 않다. 교회에 출석한지 6개월 이상에, 나이가 70세 이하이면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안내자가 되면 안내 경로와 묘소 위치 등은 물론이고 근무수칙과 주의사항까지 두루 익히고, 성인과 어린이 대상으로 따로 고안된 안내문을 암기하여 바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해 동안 안내자로 섬기고 있다는 김지철 장로는 “우리는 ‘묘지기’라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담임목사님의 당부를 늘 가슴에 새기고 봉사한다”면서 “안내자들 스스로도 봉사를 통해 자신의 영성을 점검하며, 소명을 확인하는 계기를 갖는다”고 밝혔다.

100주년기념교회는 양화진과 함께 용인의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에도 안내와 관리업무를 담당하는 자원봉사자들을 파견해, 방문자들이 기념관을 견학하며 순교역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양화진 안내를 받고자 하는 이들은 인터넷(www.yanghwajin.net)이나 전화(02-332-9174)를 통해 미리 소속 단체와 인원을 밝혀 시간을 예약하고, 오전 10시와 11시 30분 그리고 오후 2시와 3시 30분 등 하루 네 차례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일정 시작시간에 맞춰 양화진 입구의 알림방으로 도착하면 된다. 단, 주일에는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내봉사자 전체 팀장으로 섬기는 김서현 집사는 “추위와 더위, 심지어는 매미의 시끄러운 소리와도 싸워야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양화진을 찾아온 분들이 경건하고 정숙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선교사들의 헌신에 대해 묵상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도우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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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문화해설사 불러주세요”

전문해설사로 교육, 친절한 길잡이 되다

양화진의 경우처럼 기독교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여행을 떠났다면 가이드는 필수적이다. 특히 어린 세대를 동반한 경우에 그 눈높이에 맞춘 충분한 안내와 해설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여행은 두 번 다시 따라가고 싶지 않은 재미도, 의미도 없는 생고생이 되고 말 것이다.

예전에는 자체적으로 교역자나 인솔자가 충분한 사전학습을 통해 여행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거나, 교회사 관련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나 현지관계자를 해설사로 섭외해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근래에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경우처럼 전문 해설사들을 교육하고 배치해, 탐방객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 전주시기독교문화해설사들이 호남 최초의 교회인 서문교회를 답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주에서 활동 중인 기독교문화해설사들이다. 전주 일대의 선교역사 기행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이들은 사전요청이 있을 경우 언제든 출동해 친절하고 상세한 여행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하단 기사 참조)

대구 근대골목투어나 광주 양림동역사문화마을 기행에도 기독교인 해설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대구중구청과 광주남구청에 소속된 문화예술사들 중에는 대구제일교회, 광주양림교회 등지에서 자원한 성도들이 다수 포함되어있어, 따로 이들의 동행을 의뢰할 수도 있다. 광주 양림동의 경우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광주지구에서 선교투어를 운영하기도 한다.

각 지역 문화관광 담당자는 “기독교인 해설사분들은 공식적인 교육 외에도, 개인적으로 교회사와 기독교문화유적들에 대한 학습 등을 철저히 하셔서 탐방객들의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등 훌륭하게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해설사들은 대부분 현지에서 오래 거주한 이력에다가, 역사와 문화에 관한 충분한 지식 및 여러 탐방객들을 상대해 온 충분한 경험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 자원봉사자 형태로 근무하며 무보수로 섬기고 있어, 탐방객들은 큰 부담 없이 이들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자면 아직까지 기독교 해설사들의 규모나 활동 내역이 수요에 비해서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때문에 신앙적인 목적의 여행을 하면서 비기독교인 해설사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교우들을 지역 자연생태해설사로 양성하고 있는 순천만 대대교회 공학섭 목사는 “기독인 해설사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훨씬 더 많은 교훈과 감동을 얻는 여행이 된다”면서 “특히 많은 순례객이나 방문자들이 찾는 지역의 교회들이 자체적으로 해설사들을 훈련시켜 활동하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전도와 봉사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관련기사 [공학섭 목사의 생태환경 이야기] (11)이야기가 살아있는 마을
 

▲ 양림동역사문화마을 기행을 하는 성도들이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 유적들을 탐방하고 있다.

기독교역사박물관은 아직 건립되지 못했지만, 기독교문화해설사들은 두 차례의 교육과정을 통해 40여 명이 양성되었고 그 중 34명이 이미 정식 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해설사들에게는 한일장신대와 한국심리상담개발원의 협력으로 공인 자격증까지 발급됐다.

외부로부터 별다른 지원과 관심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지난 3년여 동안 기독교문화해설사들은 꽤 많은 일을 해냈다.

알음알음 도움을 의뢰해오는 교회나 단체의 답사해설을 담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호남 최초의 교회당인 은송리예배당터를 시작으로 선교사묘역 서문교회 예수병원 신흥학교 등으로 이어지는 전주시 선교역사기행 코스를 개발하고, 최근에는 이 코스를 안내하는 팸플릿까지 제작했다.

기독교문화해설사들은 정규교육을 통해 전문가들로부터 선교역사와 교회 병원 학교 등의 유산에 대한 공부는 물론 스피치교육과 해설실무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대구 광주 김제 익산 등지의 기독교 문화유산들을 탐방하며 경험과 능력을 쌓았다.

조만간 기독교박물관이 완공되어 개관하면 전시안내를 도맡아 담당할 예정인 해설사들은 지금도 매달 한 차례 꾸준히 정기모임을 가지면서 각자 연구한 내용들을 발표하는 워크숍으로 실력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해설사의 일원으로 봉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성수 장로는 “대부분 해설사들이 교회 중직자들로 깊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라면서 “앞으로 모집할 3차 해설사 교육과정에는 더 젊은 세대들을 선발해, 내국인들 뿐 아니라 영어권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봉사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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