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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 열 개의 머리를 가진 사람 이야기이종찬 목사(주필)

화란 개혁주의 신앙의 건설자로 그와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마저도 열 개의 머리와 백 개의 손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 하는 아브라함 카이퍼는 1837년 8월 29일 주일 오후 1시에 얀 프레드릭 카이퍼(1801~82)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카이퍼의 부모는 현대어에 대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카이퍼는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그가 최우등으로 졸업하며 문학사 학위를 받은 레이던 대학은 독일 근대주의 신학을 그대로 가르치는, 말 그대로 자유주의 신학의 상아탑이었다. 이런 분위기의 대학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 신앙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카이퍼를 자유주의 신학과 갈라지도록 섭리하신다. 1859년 카이퍼는 화란 북쪽에 있는 흐로닝헌 대학 신학부에서 칼빈과 개혁자 아 라스코의 교회관을 비교하는 현상 논문 모집에 응모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칼빈을 연구하게 되었고, 폴란드 출신의 종교개혁자인 아 라스코(j. a lasco, 1499~1560)에 대하여 연구하게 된다. 이 논문이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되어 1862년 9월 20일 그의 나이 25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83년의 생애동안 233권의 저서를 남긴 저술가요 최대의 칼빈주의 신학자이며 대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제2의 칼빈이라 불릴 만큼 칼빈주의 사상을 체계화 시킨 대학자였다. 그는 특히 프랑스 혁명이 인본주의 사상에서 이루어진 것을 공격하면서 인본주의적이며 무신론적 학문운동의 국립대학에 대항하여 성경적이고 신본주의에 기초한 대학을 설립한다. 이 대학이 바로 자유대학(Vrije Universiteit)이다.

1880년 이 대학을 설립한 카이퍼는 ‘영역주권’사상을 주창함으로서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특히 복음만이 인간의 모든 생활을 변화시킨다고 믿었고 그의 스승 호른 반 프린스터의 뒤를 이어 칼빈주의 기독교 정당 A.R.P의 총재와 하원, 상원 의원 그리고 수상으로 재직하면서 칼빈주의적 정치 실현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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