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장 12~17절은 2000년 전 갈릴리 주변에 살던 스불론과 납달리인들의 참혹한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당시 외세의 침탈로 변경에서 박한 토질과 고기잡이에, 말 그대로 빈곤한 삶을 바탕으로 절망과 체념 속에서 허덕이던 저들의 모습에 대하여 “암흑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갈릴리 농어민들에게 예수님이 마련해 주신 역사 창조의 터전은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역사는 유심사관적(唯心史觀的) 절대정신의 상승이거나 유물사관적 물질의 변증법적 운동도 아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사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명백히 하신 것이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역사 발전의 비결은 “회개하라”(마 4:17)였다. 2017년 새해벽두에 “회개하라”는 이 말씀이 미래의 청사진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말로 들릴지 모른다. 한편으로 사회를 등진 채 개인의 구속만을 부르짖는 현실도피적인 일부의 그리스도인들은 영혼구원에 국한된 말씀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리는 역설적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세상의 지혜가 비웃는 곳에 하나님의 진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저성장과 탈성경적인 모습의 우리 총회. 총회의 결의보다 세상의 판단을 좋아하여 법정의 판결을 성경의 권위보다 더 위에 두려는 자들은 역사의 도약을 위한 성경적 가르침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사회의 부조리와 제도 조직의 부조리, 즉 역사발전을 저해하는 온갖 요인들은 그 자체의 결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 본성 깊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또 사회 발전과 역사 창조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 첫 일성으로 외치신 것이다. 죄의식과 회개는 내성주의(Inwardism)이다. 이는 사람을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으로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첫 관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책임감을 각성 시키는 도덕심의 모체가 된다. 회개는 개인의 심령뿐 아니라 사회를 정화시키는 맑은 샘이다. 이는 어두운 암흑을 거두어내고 밝은 빛을 비춰주는 길잡이다.

바닷물은 3퍼센트의 염분만으로도 부패를 막을 수 있다는데 지금 한국 기독교는 저성장속에서도 종교인구 2155만 4000명 중 기독교 인구가 967만 6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9.7%로 가장 많은 수치였다. 금년 한 해 우리 모두 정직, 절제, 사랑을 실천하면서 나아가자. 이 일의 전제가 회개이다. 내성주의로 2017년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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