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섭 목사(대대교회)
순천만은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작품 소재와 환경을 골고루 갖춘 문학과 예술의 산실 … 어느곳에 서도 시가 된다
순천만은 많은 예술인과 문학인을 등장시킨 제조 공장과 같은 곳이다. 순천만처럼 많은 문학인과 예술인이 탄생한 곳이 또 있을까? 순천만을 너무 자랑하는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칠까 싶었지만 이 또한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순천만은 많은 시인을 배출했다. 갈대밭 사이사이에 세워진 시비들을 보면 실감이 난다. 정채봉 허형만 서정춘 송수권 김철중 허의녕 박종구 김상곤 등 출중한 시인들이 즐비하다. 순천만은 이들 시인을 통해 많은 시들을 탄생시킨 산실이다. 앞으로 태어날 시인들과 시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순천만에 대한 시를 읽다보면 갈대, 노을, 포구, 새벽, 칠면초, 갯벌, 갯골, 게, 짱뚱어, 흑두루미, 개개비, 도요, 고니 등 다양한 주제와 이름들이 등장한다. 시어에 담긴 표현들이 어찌나 생생한지 서울 한 복판에서 읽어도 순천만의 모습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실감이 난다. 이들의 시는 한 마디로 순천만 해설서와도 같다. 시란 글로 쓰는 그림이라는 말이 정말 맞다. 순천만을 소재로 한 소설들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다.
화가들의 그림 속에도 순천만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순천만에 나가보면 캔버스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는 분들을 종종 만난다. 지나가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어쩌면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은 사람마냥 오직 그림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순천만은 작품에 필요한 온갖 소재와 환경을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무슨 그림이든 구성지게 표현하기 좋은 곳이다. 또한 순천만은 노래의 주제가 되는가 하면, 영화 촬영지로도 등장한다.
특히 사진작가들에게 순천만은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때에 찾아오든 일부러 촬영할 분위기를 꾸며놓은 세트장처럼 여겨진다. 순천만 어디를 찍든 작품이 된다. 순천만 때문에 태어난 사진작가의 수는 얼마나 될까? 전문가 수준에 이른 작가들만 해도 수 백 명은 족히 넘으리라. 필자도 이에 합세하여 아마추어 사진작가 노릇을 하고 있다. 본래 사진 찍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잠시라도 순천만을 거닐라치면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사진 몇 장이라도 찍어 두어야 직성이 풀린다.
순천만은 수많은 여행 작가들이 즐겨 찾는 장소이다. SNS에 퍼져있는 순천만 여행기의 수효는 어마어마하다. 필자도 종종 여행기를 쓰는데, 나만의 기록방법과 특유의 표현 방식이 있다. 마찬가지로 저마다 보는 관점과 느끼는 감정에 따라 쓰기 때문에 다양한 글들이 생산되는 것이다.
본디 강이 흐르는 곳에는 문화가 있다. 몽골에서는 길을 잃었을 때 전봇대를 따라가면 사람 사는 마을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특이한 경우이고, 대부분은 강물을 따라가면 반드시 사람 사는 마을을 만나게 되어 있다.
일찍이 인류의 모든 문화와 역사는 강줄기를 따라 만들어졌다. 세계 4대 문명에 해당하는 이집트문명,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도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세계의 대도시들마다 큰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파리는 세느강, 런던은 템즈강, 독일은 라인강, 서울은 한강, 부산은 낙동강, 광주는 영산강, 순천에는 동천과 이사천 두 개의 강줄기가 흐른다. 성경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에도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등 네 개의 강이 흘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은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곳이다. 더불어 강은 시와 노래가 태어나고, 갖가지 문화를 꽃피우는 터전이 된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개발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했던 일을 기억한다. 당시 정부는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고 중장비를 동원하여 4대강을 파헤치고 말았다. 직강화하고, 여러 개의 보를 만들어 물의 흐름을 막았다. 이로서 물은 썩고 홍수조절도 안 되고 국토만 망가뜨리는 결과만 얻고 말았다. 22조라는 천문학적인 공사비용과 매년 5051억 원의 관리비용으로 인하여 국가가 입은 경제적 손실이 엄청나다. 경제적 손실보다 더 큰 피해는 5천년 우리 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강줄기를 파헤침으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가 복구 불능의 상태로 훼손된 일이다.
순천만은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다. 강줄기 숫자만큼 풍요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많은 이야기꺼리를 품게 된다. 더구나 순천만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그러니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꺼리가 존재하겠는가? 시와 글과 그림과 사진은 단순히 눈으로 보기 좋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스토리도 있어야 하며, 오랜 역사와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순천만을 배경으로 많은 시인, 화가, 사진작가들이 배출된 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인은 어디에 데려다 놓아도 시가 나온다. 옥에서도,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시가 나온다. 하지만 강과 바다는 사람의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강이나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시심이 발동한다. 문학은 본래 분위기를 탄다. 그래서 아름다운 강과 바다와 산과 들이 엮어지면 글이 나오고 시도 탄생되고 소설도 만들어진다.
순천만은 많은 문학인을 만들고 예술가를 배출했다. 그래서 순천만을 예술과 문학의 산실로 부른다. 필자 역시 작가의 이름을 얻게된 것도 순천만에서 살아온 덕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