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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회를 위한 헌장, 레위기 제대로 읽기 (24) 희년의 축복이 내린 흙수저의 땅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흙수저 민족’을 택하시고 가나안 땅서 보물로 만드시다
‘하나님의 은혜’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통해
‘원래 상태와 질서’로 돌아가는 전면적 회복 이루게 하셔

50년 주기로 찾아온 희년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이스라엘에 희년이 찾아왔다. 50년 주기로 찾아오는 대안식년이다. 요아킴은 지난 수년간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삶이 넉넉해졌다. 광활한 토지의 사용권을 넘겨받아 농사와 목축은 크게 번성했고 종들도 많이 사들여 노동력도 충분했다. 희년 나팔 소리와 더불어 희년이 찾아오자, 요아킴은 하나님이 지키라하신 희년의 강령대로 실천했다. 우선 경제가 파탄이 나 빚더미에 눌려 할 수 없이 토지 사용권을 자신에게 넘긴 사람들에게 땅을 돌려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땅을 처분했음에도 빚을 다 갚지 못해 자신과 가족을 종으로 팔아야만 했다. 요아킴도 이런 종의 신세로 전락한 여러 가족들을 종으로 사들였는데 희년을 맞아 그들이 모두 자유인의 신분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이스라엘의 희년법과 토지법은 “토지는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하나님의 선언을 토대로 토지의 원소유권이 항구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것을 금지한다(레 25:23). 어떤 사람도 종신토록 다른 사람의 속박 아래 노예로 살아선 안된다. 가끔 종이 주인을 사랑하여 귀를 뚫어 그 집안의 종신 노예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런 경우라도 희년에는 주인이 그들이 원하는 경우 풀어줄 수 있었던 것으로 추론된다. 원칙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노예 신분이던 이집트로부터 자유민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닌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는 자유민이다. 따라서 우선 7년 주기의 안식년에 부분적인 희년의 성취가 이루어졌다. 빚이 탕감되고 잠시 종이 되었던 사람들도 사면되어 자유민이 되었다. 그러나 일곱째 안식년인 대안식년인 희년에는 모든 것이 ‘원래의 상태와 질서’로 돌아가는 전면적인 회복이 이루어졌다. 땅은 지계표를 회복했고 모든 사람은 자유민의 신분을 되찾았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50년 주기로 모든 백성들은 다시 기본 생존권이 보장되어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거지가 존재할 수 없는 가장 이상적인 국가였다.

안식년과 희년이 주는 의미

안식년과 희년에 관해 여러 가지 신학적 쟁점들이 있으나 지면상 토론은 어렵다. 다만 희년의 주기가 49년인지 50년인지 해묵은 논쟁이 진행되고 있으나 구약 학자들은 물론 유대 랍비들마저도 의견이 나뉘어 있다. 만일 50년 주기라면 49년째는 안식년, 50년째는 희년으로 쉬어 두 해 연속 농사를 휴경해야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다수의 학자들을 따라 실제로 49년 주기이고 첫해를 포함해서 세는 포괄 셈법에 따라 레위기가 50년 주기로 설명한다고 본다. 이것은 칠칠절이 초실절부터 실제는 49일 후인데 첫날을 세는 포괄셈법에 따라 50일 째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편,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강력히 암시되어 있듯이(왕상 21장) 레위기 토지법/희년법은 왕이라 할지라도 거역하기 어려운 하나님이 세운 제도였다. 모든 백성은 영구히 자신의 가문의 토지를 할당받았으며 이 지계표는 결코 변경되어선 안된다. 즉 토지 매매를 통해 토지의 원소유권이 영원히 넘어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 부동산 투기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경제적인 평등이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보장된 하나님의 국가였다.

그렇다면 “토지는 내 것이라,” 곧 토지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선언은 우리 시대에도 적용되는 영구적, 신적 원리요 법칙인가? 성경적 견해대로라면 토지를 물, 공기처럼 사유화할 수 없는 공적 자원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미 사유화되어 있는 토지를 국가가 물리력을 동원해 공유화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 가지 대안은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를 사상적 뿌리로 삼은 대천덕 신부의 주장대로 토지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세금으로 환수하여 공공의 혜택으로 돌리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때 과중한 세금 때문에 토지 값이 상승하지 않을 테니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이 사라지는 대신 활발한 투자를 통한 토지의 활용으로 토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쓰이게 된다.

헨리 조지가 주창한 경제 이론은 토지를 근본으로 하는 ‘지본주의’ 사상이다. 그는 성경의 토지법에서 영감을 얻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둘 다 성경적이지 않다는 판단 아래 토지 공개념을 담은 이론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견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 진영으로부터 배척당했고, 특히 자본주의 경제 이론을 주도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외면당했다. 그러나 헨리 조지의 위대한 사상은 오늘날에 이르러 재평가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그 외에도 예수님이 희년을 선포하며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즉, 예수님은 희년의 성취자로 이 땅에 오셨다. 이 문제는 다음 마지막 호에서 별도로 거론하기로 하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레위기 사실상의 마무리는 26장의 ‘축복과 저주’의 선언이다(27장은 추가적인 ‘예물법’을 가르치기 위한 부록이다). 이것은 희년법을 제정하는 25장에 이어서 등장한다. 26장을 요약하자면 희년법을 비롯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면 다양한 종류의 풍성한 복들을 받을 것이고, 반대로 불순종하면 갖가지 끔찍한 재앙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경고다. 백성들은 순종하면 약속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축복을 누린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레위기에서는 단 한번 등장할 뿐이다(레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릴 땅의 축복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나안 땅은 돌밭이다. 유대 전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내려온다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천사들에게 자갈과 바위를 지구 곳곳에 뿌리고 오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런데 천사 한명이 자갈과 바위를 싣고 가다가 다른 국가와 지역으로 뿌릴 돌자루를 실수로 땅에 쏟아버린다. 바로 그곳이 팔레스타인 지역이라는 것이다. 가나안은 그 만큼 돌이 많은 땅이라는 뜻이다. 또한 토양도 석회암 지역이 많아 비가 오면 물을 가두어 놓고 필요할 때 쓸 수도 없다. 저수지가 무용지물인 토질이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그 지역의 특징적인 토양과 기후의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유독 구약성경에서만은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는 땅”이요, 축복의 땅, 생명과 풍요의 땅이라고 묘사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우선 한 가지 잘못 알려진 것부터 바로 잡아야할 것 같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젖과 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젖은 당연히 가축의 젖, 즉 우유를 말한다. 그러면 “꿀”은 무엇인가? 앞서 소제에 대한 설명에서 이것을 자세히 설명한 바 있다. 요약하자면, “꿀”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데바쉬(debash)는 벌꿀과 과일 꿀, 둘 다를 의미할 수 있다. 벌꿀은 야생꿀이고 과일 꿀은 주로 대추(우리나라 대추와 다름)나 포도로 만든 “과일 시럽”이다. 여기서는 분명 “우유”와 상응하는 “과일 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생산의 축복을 약속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가축들이 너무 잘 자라고 과일이 넘치도록 생산되는 땅, 다시 말해 “목축과 농사”가 아주 잘되는 땅이라는 표현이다. 한 마디로 복 받은 땅이다.

하지만 돌밭에다 강우량이 부족하며 물을 가두어 건기와 가뭄에 대처하기도 어려운 땅인데 왜 하나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을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수식어에 가장 적합한 땅은 사실은 이집트의 나일 삼각주와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하역이다. 그래서 광야로 출애굽해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물과 식량이 부족하자 이집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고 하면서 반란을 일으킨다(민 16:13-14). 사실 이 불평의 표현은 오히려 매우 불경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반역적 언사다. 감히 하나님이 사용하시던 “젖과 꿀이 흐르는”이라는 표현을 이집트 땅에 갖다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는 그 땅들은 백성들이 표현한대로 다양한 과일과 야채들이 생산되는 풍요의 땅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한 적이 없다. 유독 구약성경이 가나안 땅을 기름진 땅, 풍요의 땅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레위기 26장의 말씀대로 순종이 조건이 된다. 순종하면 그 땅은 “대박”나는 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소위 “쪽박”을 찼다. 실제로 그들은 불순종으로 인해 레위기 26장에서 나열된 기근, 가뭄, 병충해, 전염병, 전쟁, 모든 재앙을 다 겪는다. 묘하게도 그 땅은 비만 오면 곡식이 쑥쑥 잘 자란다 한다. 그러나 비가 와 줘야 한다. 특히 이른 비가 와야 파종을 하는데, 안 오면 일년 농사는 망친다. 그 후 6개월의 우기에 중간 비도 꾸준히 와줘야 하지만 중간 비는 약간 부실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비는 늦은 비다. 추수 직전의 늦은 비가 꼭, 그리고 충분히 와줘야 한다. 안 오면 곡식이 알이 잘 안차 막판에 농사를 망치며 땅을 갈고 파종을 하며 정성을 들인 몇 달의 수고가 허사가 된다. 따라서 “이른 비”와 “늦은 비”가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26장은 서두에서 강조한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레 26:3-4). 그 외에도 구약 전반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그토록 강조된다. 결국 나라의 논밭 전체가 ‘천수답’인 셈인데,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구약 백성의 농법은 ‘하늘 농법’ ‘기도 농법’ 혹은 ‘믿음 농법’이었다.

이미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점유하기 전에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민수기에 보면 정탐꾼들이 거대한 포도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와야할 정도였다. 여기서 포도송이 “하나”를 어떻게 두 사람이 멜 수 있느냐? 혹자는 생물학적으로 그런 포도는 존재할 수 없다며 과장된 이야기로 보려 한다. 그러나 그 “한”(히브리어 ‘에하드’) 포도송이는 큼직한 포도 한송이일 수도 있지만, 가지에 붙은 한 뭉텅이의 여러 포도송이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정탐꾼은 그 땅이 약속한대로 엄청난 풍요의 땅임을 확증하는 증거물을 가져왔다는 것이 그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미 가나안 족속들이 그 땅의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출애굽기 당시에는 그 땅은 매우 농사가 잘되었다. 참 이해하기 어렵다. 왜 패역하고 부도덕하고 바알 우상을 섬기던 가나안 사람들이 그런 복을 누리는 것일까? 내 생각엔 이렇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분의 선물과 은혜로 그 땅이 풍성한 소산을 얻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사실 가나안 족속은 그 복을 누릴 자격이 되지 못했다. 단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잠시 그 복을 누렸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우상 숭배자들이요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고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풍요의 땅에서 추방을 당하고 그 자리를 이스라엘이 대신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나안 땅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일하는 방법에 주목하고 싶다. 하나님은 이집트의 옥토인 델타(삼각주) 지역을 택하지 않으셨다.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지류가 흐르는 비옥한 농토가 있는 땅을 택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농사의 측면에서 전혀 인기가 없던 척박한, 그리고 강대국 틈에 끼인 자그마한 가나안 땅을 선택하시고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선언하셨다. 바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 그러하다. 이스라엘의 민족의 형편도 한번 생각해보자. 사실 이스라엘 백성 자체가 바로 가나안 땅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두들겨 맞으며 중노동에 시달린 “노예 민족”이었다. 그들은 분명 아브라함 안에 이미 선택된 민족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하나님은 초문명을 자랑하는 강대국 이집트 민족도, 엄청난 무기와 치적을 자랑하는 위엄있는 앗수르 민족도 택하지 않으시고 한낱 매질 당하는 “흙수저 민족”을 택하셨다. 하나님은 무시받는 바닥의 민족을 택하시고 그들을 “나의 특별한 보물”(히. 세굴라)이요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라 하셨고(출 19:3~4), 인기 없는 가나안 땅을 선택하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나의 땅”이라 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날 때부터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태생적 환경이 막장이라고 생각하면서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분명 우리는 이런 부당하고 불의한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스템 저 너머에 계신다. 구조와 법을 바꾸는 노력과 더불어 우리는 그런 사회적 한계를 뛰어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 바로 거기서 자신의 일을 시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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