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무너진 예배당, 성탄 소망으로 다시 세울 겁니다”

 

9월 지진 충격에 주저 앉은 교회건물 복구 못해 성도 자택·교회 승합차 떠돌며 예배 이어가
“아름답고 튼튼한 예배당 건축, 칠흑 같은 시골의 밤 밝히는 복음 사명 끊어지지 않길 바라”

2개월 만의 재방문이었다. 지난 9월 12일 경북 경주시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던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의 내와마을.

그때의 지진은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후 한반도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다웠다.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조차 지진을 제대로 느꼈을 정도로, 그 강도가 실로 대단했음을 온 국민이 체감한 바 있다.

진앙지로부터 불과 6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내와마을의 내상은 클 수밖에 없었다. 마을의 절반이 완파 내지는 붕괴위험이 있어 출입통제를 받을 정도였다. 집집마다 담장이 무너지고 곳곳에 심한 균열이 생긴 것은 다반사였다.

그리고 90일이 지난 지금. 내와마을의 지진 공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는 여진은 벌써 540회를 넘어섰다고 하니 하루하루가 공포의 연속이다. 그래서일까. 마을 주민들은 여진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땅이 울렁거림을 느낀다거나, 어지럼증을 수시로 호소하고 있다.

▲ 성탄절을 앞두고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예배당 앞에 선 내와교회 담임 김길용 목사의 얼굴 표정에서 어려운 현실과 새로운 소망이 교차함을 읽을 수 있다.

내와마을은 하나의 공사장이었다. 집을 짓거나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되었다. 번듯한 집을 짓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곳도 눈에 띄었다. 여진으로 인한 지진 여파는 있지만 그마저도 함께 품고 가야할 일상이 되어 버린 양, 내와마을은 서서히 본연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마을 초입에 자리한 내와교회 말이다. 내와교회는 두 달 전에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진으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주저앉은 예배당이며, 예배당 왼편의 사택과 부속 시설 역시 곳곳에 금이 간 채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붉은색의 선명했던 출입금지 표식이 빛바랜 것 뿐.

외줄에 매달려 차가운 겨울바람에 흩날리는 안내문 너머로 보이는 붕괴된 내와교회 모습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한자로 새겨진 내와교회 간판이 벽 중앙에 아찔하게 걸려있을 망정이지 외관상 교회 형체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경주나 울산 등 인근 도시권에서도 차량으로 1시간 이상 떨어진 오지여서 그런지 초저녁임에도 12월의 내와마을은 한밤중처럼 이내 캄캄해졌다. 군데군데 가로등이 사력을 다해 보지만 칠흑 같은 농촌의 밤을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내와교회의 성탄트리가 시골 마을의 어둠을 밝히고, 고즈넉한 풍광을 더 멋스럽게 꾸며왔었다. 그러나 올해의 내와마을은 어디에서도 성탄의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쉰다섯 번째로 맞이할 내와교회의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아프다.

애잔한 성탄 소망

요즘 내와교회 예배처소는 한주 한주가 다르다. 지진으로 예배당을 잃었기에 성도들 가정 이곳저곳을 정해놓고 옮겨 다니고 있다. 매일의 새벽기도회 장소는 다름 아닌 교회 승합차 안이다. 밤새 얼어붙은 실내 공기를 데우기 위해 요즘 내와교회 담임 김길용 목사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진이 나기 이전보다 더 일찍 일어나 시동을 걸고 마을을 빙빙 돌며 예열시킨다. 성도들 역시 좁은 차량에 오밀조밀 앉아야하는 불편함 속에서도 기도의 불만큼은 끄지 않고 있다.

지진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김길용 목사다. 이번 지진으로 예배당은 말할 것도 없고, 김 목사의 사택도 심한 균열로 붕괴위험이 있어 출입제한 공간으로 지정됐다. 김 목사는 지진 발생 직후에는 마을 주민과 함께 울산학생교육원 강당에서 지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사용할 수 없어 마을 경로당 등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붕괴위험에도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교회 식당 공간에서 간간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길용 목사는 자신의 불편함은 정작 안중에도 없다. 그 이유에 대해 말하지 않고 그저 웃음으로 넘겼지만, 인지상정 알 수 있었다. 당장에 예배당을 세우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는 담임목사의 마음 졸임이 더 크기 때문 아니겠는가.

12월 7일 오후 7시. 내와교회 성도들이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 뒤편 모 권사댁에 모였다. 28명의 성도 가운데 딱 절반인 14명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바닥이며 침대 등에 걸터앉아 있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예배와 기도회는 실향민마냥 예배처소를 잃은 성도들의 애잔함이 짙게 드리워있었다.

이날 내와교회 성도를 대표해 문득순 권사가 기도했다. “하나님! 오늘도 예배당이 아니라 권사님댁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너무 연약하여 예배당을 건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아름답고 튼튼한 예배당이 세워져 모든 성도들이 마음 놓고 예배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우리 목사님 거처할 곳이 없는데 사택도 빨리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지역을 축복하셔서 지진으로 어려움 당하는 주민들을 위로하시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가 좋은 집을 짓도록 해 주십시오….”

예기치 않게 예배당을 잃은 성도의 애절함이 묻은 기도였다. 여기에 더해 스스로의 힘으로 건축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연약함에 대한 송구함까지. 내와교회 성도들의 성탄 소망은 이토록 애잔하다.

다시 부를 노래, ‘기쁘다 구주 오셨네’

수요예배를 마치고 성도들에게 염치없게 성탄소망을 여쭸다. 염치없다함은 많게는 100세, 평균 나이 70.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르신들에게 성탄소망을 말하게 하는 것 자체가 유치함이요, 무엇보다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그 무언가 이미 정해져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구동성 아름답고 ‘튼튼한’ 예배당 건축을 성탄의 제1소망으로 꼽았다.

대화 속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이용방 은퇴장로가 “시골 작은 교회일지라도 아담하게 지은 예배당에서 주님 오신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장식도 예쁘게 하고 재미있게 지내왔는데 올해는 그러질 못하네요. 아쉽지만 한 가정을 정해 성탄장식을 해서 주님이 섭섭하지 않도록 즐겁게 보내면 좋겠네요”라고 제안하자, 여기저기서 “그럼 떡도 찌고, 따뜻한 국을 끓여 주민들에게 나누며 성탄을 복되게 보내자”는 화답이 있었다.

▲ 지진으로 붕괴된 교회의 출입을 제한하는 빛바랜 안내문 너머 보이는 내와교회 간판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그랬다. 절망의 상황에도 성탄의 의미, 나아가 교회의 사명은 선명했다. 비록 예배당을 잃은 아픔은 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교회 담장 너머의 마을 복음화에 대한 소망만큼은 허물어지지 않았기에. 내와교회 성도들은 김길용 목사 부임 이후 지난 5년간 농촌복음화를 위해 체질을 바꿨다. 관계전도와 바나바 사역을 올곧게 진행한 결과 배가의 열매를 거뒀다. 지난 주 추수감사절에 세례교인 1명과 학습교인 3명을 세웠다고 한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갈 시간. 저마다 취재하느라 수고했고 먼 길 조심히 가라며 기자에게 건네는 눈길에는 한결같은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 내와교회가 지진 때문에 많이 힘든데, 이런 어려움을 전국 방방곡곡에 잘 알려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 하루 빨리 건축할 수 있도록 힘써 달라”는 간절함 말이다.

내와교회 성도들의 애잔하지만 이구동성 성탄 소망으로 꼽은 ‘튼튼한’ 예배당 건축은 그저 편한 신앙생활을 하려는 이기심이 아님을 알기에, 그래서 뜻있는 도움의 손길이 55번째 성탄절을 맞는 내와교회에 전해진다면, 절망 중에서도 내와교회 성도들은 감사함으로 노래할 것이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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