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신대원 박건택 교수 은퇴 … <칼뱅선집> 큰 족적

총신대신대원 교회사 교수로 30년간 후학들을 가르쳤던 박건택 교수가 12월 1일 총신신대원에서 퇴임예배를 드리고 은퇴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박 교수는 “후련하다”면서 “일평생 칼빈의 저작물들을 편역하여 <칼뱅선집>을 남긴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며 나를 생각할 때 다른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한때 교무처장이나 부총장직을 맡아서 의욕적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으나 결과적으로 무익했다고 본다”면서 “상대적으로 나의 저작들을 하나님 앞에 남긴 것은 자랑스럽다”고 부연했다.

▲ 박건택 교수가 평생에 걸친 역작, <칼뱅선집>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어와 라틴어 원본을 편역한 이 책들은 칼뱅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오래도록 남게 될 것이다.

사실 박 교수의 이 말은 겸손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박 교수는 7편의 저서를 펴냈다. 특히 자크 엘륄의 책을 국내에 소개한 것은 그의 탁월한 식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0편에 가까운 논문들도 해마다 꾸준히 발표해왔다. 그는 이러한 저서와 논문을 통해 칼뱅을 중심으로 한 16세기 종교개혁의 역사적 배경과 사상을 비평적으로 검토하고 오늘의 현실 가운데 새롭게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가 유독 애착을 표시한 것처럼 <칼뱅선집>을 남긴 것은 한국신학계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 틀림없다. 이 가운데 <기독교강요>는 1541년 프랑스어 초판을 바탕으로 편역했는데 국내 번역판이 거의 1559년 <기독교강요> 최종판인 것과 비교할 때 의미가 크다. 박 교수는 “1541년판 <기독교강요>는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칼뱅의 신학을 볼 수 있다”면서 “이는 1559년 최종판이 제네바에서 칼뱅의 사상이 신학화되어 제네바 모델로 굳어진 결과물인 것과 비견된다”고 설명했다.

또 <칼뱅선집> 가운데는 <칼뱅 소품집 1>, <칼뱅 소품집 2>가 있다. 소위 칼뱅의 대작들을 주석, 설교, 기독교강요, 서간집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에 속하지 않는 각종 논쟁서, 팸플릿, 신앙고백서, 법령, 학교 규정, 교육서 등을 소품이라고 분류한다. 이 역시 칼뱅의 신학 사상을 더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된다. <칼뱅 서간집 1>에는 칼뱅이 1530년부터 1538년까지 보냈던 총 92편의 편지들이 담겨있다. 서간들은 칼뱅에 대해 역사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서간들은 칼뱅에 대해 정통한 학자라도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것이다. 편지들이 나타나게 된 당시의 광범위한 역사적 배경들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곳곳에 등장하는 격언이나 관용구들에도 익숙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칼뱅 구약설교집-시편/예레미야 설교>도 <칼뱅선집>에 포함되어 있다.

박 교수는 “30년 가까이 걸려서 5권을 편역했다. 권수로는 적으나 때로는 한 문장을 가지고 하루 종일 고민해야 했다”면서 편역 작업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말했다. 그는 “칼뱅을 말하지만 제대로 읽은 사람은 적다”면서 “우리는 칼뱅을 말할 때 칼뱅의 저작, 그 가운데도 1차 자료를 가지고 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앞으로 <서간집>과 <설교집>들을 계속 번역할 계획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 교수의 사실상의 은퇴는 아직 멀었다. 그의 이러한 귀중한 편역 작업이 완수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일이 교단 산하 교회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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