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추수 직전 ‘늦은 비’는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으로 여겼다
이스라엘 하루는 저녁에서 시작해 저녁에 마감 …
음력을 따르는 절기는 추수와 깊은 관련

늦은 비가 내리다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가나안 땅에 우기철이 막바지다. 이른 비가 내리는 음력 7월부터 마지막의 늦은 비가 내리는 12월까지 6개월의 기간은 비가 내리는 시기로 곡식이 자라 영글어 간다. 요아킴은 올 한해도 세 마지기의 밭에 보리를, 다섯 마지기의 밭에는 밀을 심었다. 다음 달 음력 1월이면 따뜻한 봄이 되면서 보리를 먼저 추수하고 그 후 두 달 정도 기다린 뒤 밀 추수를 시작한다. 지금은 음력 12월, 마지막 비가 내리는 시기다. 요아킴과 동료 농사꾼들은 매일 아침이면 밭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늦은 비’를 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지난 몇 달 동안 하나님께서 적절히 비를 주셔서 곡식이 잘 자랐다. 그러나 ‘늦은 비’가 이제는 가장 중요하다. 이 비가 오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잘 뻗어 올라왔어도 이삭들의 알곡이 차지 않아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늦은 비’가 세차게 내렸다. 다시 한번 대지를 적신 늦은 비로 인해 보리와 밀에 달린 이삭들에 생명의 빛깔이 선명해졌다. 올해도 이제 풍년이다! 다가오는 유월절과 칠질절 명절은 기쁨의 축제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주요 명절들

레위기 23장은 이스라엘의 절기법을 제정한다. 이스라엘의 절기는 음력을 따르며 주요 절기들은 대체로 농사, 특히 추수와 깊은 관련이 있다. 크게 음력 1~6월은 건기, 7~12월은 우기에 속한다. 7월에 이른 비가 내린 뒤, 8~9월 사이에 파종(씨뿌리기)을 마무리하고, 다음해 1~2월 사이에 추수를 시작해 마친다. 이때 추수 직전에 봄비, 즉 늦은 비가 내려 풍성한 추수를 거둘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추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하나님의 축복으로 간주되었다. 절기에 대한 논의에서 우선 기억해야할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이스라엘에게 하루는 태양력을 따라 저녁에 시작해서 저녁에 마감된다(창 1장). 그러나 동시에 하루 일과의 시작은 아침 동틀 때를 기점으로 삼았다는 다양한 증거가 존재한다(출 29:39와 민 28:4; 출 30:7; 레 6:12; 7:15~18; 수 6:12; 8:10). 하지만 날짜를 계산할 때는 태양을 기준으로 저녁이 하루의 시작이었음이 분명하다. 둘째, 절기는 모두 음력으로 쇤다. 이 점은 우리나라를 비롯 동양과 동일하다. 예컨대, 유월절이 1월 14일이라 함은 음력 1월 14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양력의 날짜로는 매년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기준을 따라 칠일 주기의 안식일은 태양력을 따라 계산하고, 월삭을 비롯한 모든 절기는 음력을 따른다. 절기는 시간의 주기를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안식일(7일 주기); 월삭(매달 1일); 안식년(7년 주기); 희년(50년 주기). 이런 시간의 주기를 기념하는 날과 별도로 주요 축제일은 농사력을 따르면서 추수기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절기들은 다음과 같다.

1)유월절/무교절: 유월절은 음력 1월 14일이다. 다음 날인 1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즉 1월 15~22일은 무교절이다. 이 두 명절의 전체 기간을 묶어 흔히 유월절 혹은 무교절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출애굽을 기념하기 위해 그들은 1월 14일에 유월절 양/염소를 먹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고 그 후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는다(레 23:6~8). 그 이유로 그 기간에 ‘무교절’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유월절/무교절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보리 추수를 축하하는 축제일이기도 하다. 이 기간에 음력 1월 16일의 첫 보리 추수물을 드리는 ‘초실절’이 끼어 있다. 1월 16일 보리의 ‘초실절’에는 아마도 백성의 대표가 첫 번째로 익은 보리 이삭 한단을 바치면 제사장이 그것을 볶아서 소제물로 제단에 바친다. 아마도 뒤이어 각 농사꾼들이 자발적으로 보리 추수물의 소제를 바친 것으로 보인다(레 2:14). 이 보리의 ‘초실절’은 뒤에 언급될 칠칠절(오순절)을 일컫는 다른 명칭, 곧 밀을 바치는 절기인 ‘맥추의 초실절’과 구분해야 한다(여기서 ‘맥추’는 밀 추수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오늘날 보리의 초실절은 지키지 않으나 밀(맥추)의 초실절은 큰 명절로 지킨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보리의 초실절이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로 이 날에 유월절(1월 14일)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의 ‘첫 열매’로 부활하신 날(1월 16일)이기 때문이다.

2)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이 날은 음력 1월 16일부터 일곱 번의 일주일, 곧 49일을 세어 정한 날, 곧 음력 3월 6일이다. 50일은 1월 16일을 포함한 포괄 셈법이며(오순절이라는 명칭의 유래), 49일은 그 날을 뺀 일반 셈법이다. 오순절은 구약에는 나오지 않고 신약에서만 언급된다. 3월 6일은 밀 추수가 시작되는 날이다. 어떤 사람은 밀 추수를 마친 날이라 주장하나 잘못된 견해다. 첫 번째 밀 수확물을 성전에 바치는데 따라서 이 날을 ‘맥추의 초실절’이라 칭하기도 한다(출 34:22). 이 날에 모든 농사꾼들이 각자 밀을 추수한 뒤 밀가루를 만들어 ‘새 소제물’로 성전에 바쳤다. 그러나 이것이 제단에 올리지 않고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보리의 첫 제물과 차이가 났다. 그 외 제사장들은 그날 별도의 다양한 제물들, 즉 소제물과 번제, 속죄제, 화목제 그리고 포도주의 전제 등을 성소에서 바쳤다(민 23:16-20; 민 28:26-31).

3)나팔절과 속죄일: 음력 1월과 더불어 7월에 명절들이 집중되어 있다. 7월에는 세 가지 주요 절기가 연이어진다: 나팔절(7월1일; 신년, 곧 설날); 대속죄일(7월 10일); 초막절(수장절; 7월 15-22일). 우리는 대속죄일에 대해서는 이미 상세히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나팔절에 대해서만 살피기로 한다. 나팔절인 음력 7월 1일은 유대인의 설날이다. 중간기 이후 유대인들은 이 날을 로쉬 하샤나(rosh hashana)로 칭하는데 이것은 에스겔 40:1에 사용된 어구로서 ‘그해의 머리’라는 뜻이다. 이 날이 왜 설날이 되었는가 하면 민간력 음력 7월 1일이  종교력으로는 1월 1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다른 명절과 마찬가지로 성회로 지키며 노동을 중단한다. 제사장에 부는 양뿔로 만든 나팔 소리와 더불어 그 날의 시작을 알렸다. 그 나팔 소리는 ‘기념’을 위한 것인데 이스라엘은 그 나팔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과 그분의 보호, 그리고 인도하심을 기억한다. 나팔절에도 다양한 제물들이 제사장들에 의해 바쳐지는데 그것은 민수기에 추가로 규정되어 있다(민 29:1~6).

4)초막절(수장절): 초막절은 음력 7월 15일부터 22일까지의 8일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음력 날짜와 동양의 음력 날짜는 한달의 차이가 난다. 따라서 7월 15일은 동양의 음력 8월 15일로 정확히 추석과 같은 날이다. 다시 말해 동양에서 가을 추수를 기념하던 추석과 이스라엘이 가을 추수를 기념하는 초막절은 날짜가 같다. 따라서 성경대로라면 ‘추수 감사절’을 현재의 11월에서 추석이 있는 달의 적당한 날짜로 옮겨봄직 하다. 백성들은 이 기간에 임시로 거주할 초막들을 나뭇가지로 엮어 짓고 그곳에서 지냈다. 과거 고달프고 어려웠던 조상들의 광야 시대를 회상하기 위함이 분명했다. 동시에 초막은 이제는 가나안 땅의 풍성한 축복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을 것이다. 풍성한 나뭇가지들로 초막을 짓는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목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날을 가을 추수물인 과일들을 수확해서 저장하기 때문에 수장절이라고도 부른다(출 23:16; 34:22). 15일부터 21일까지 1주일동안은 매일 가을 추수물의 소제와 더불어 많은 짐승들을 바쳤다(레 23:33~44; 민 29:12~16). 첫날인 15일과 여덟째 날인 22일을 각각 노동이 금지된 성회의 날로 지켰다. 초막절에 바치는 제물은 번제, 소제, 희생제(아마 화목제일 것), 그리고 전제였다(37절). 그 외에도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다양한 헌물과 더불어 개인의 화목제인 서원 제물과 자원 제물을 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38절). 초막절에 일주일간 바친 제물 목록은 민수기 29:12-16에 더 자세하게 등장한다. 첫날에 수소 열세 마리, 숫양 두 마리, 어린 숫양 열네 마리를 바친다. 특이하게도 매일 바치는 수소의 숫자가 매일 한 마리씩 줄어들다가 7일째에는 일곱 마리의 소가 바쳐진다. 특히 22일은 거룩한 대회(장엄한 성회)로 모여 마찬가지로 추수물의 소제와 더불어 많은 짐승들을 바쳤다(민 29:35~38).

그 외 레위기와 오경에서 지정되지 않은 유대의 전통 명절로 수전절과 부림절이 있다. 수전절은 중간기의 성전 회복과 이스라엘의 독립을 일시적으로 회복한 날을 기념하는 명절이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축하하는 부림절은 에스더서에 기원을 둔다. 이 모든 절기 중에 삼대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수장절)이다. 이 절기에는 모든 성인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가족들은 의무는 아니나 권장 사항으로 성전으로 헌물을 준비해서 회집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이 삼대 절기에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 엄청난 순례객으로 붐볐다고 한다.
 
등대와 진설병 관리 지침(레 24:1~9)

조금은 뜬금없게도 일곱 분지 등잔의 관리와 진설병에 관한 규례가 절기법 다음에 배치되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등잔은 매일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고 진설병은 안식일마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떡으로 교체되기에 두 가지 모두 시간표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것이 절기법의 본문과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출애굽기에는 등잔대와 떡상 제작법이 자세히 나오고 이제 레위기에서 금등대와 진설상의 올바른 관리법이 주어진다. 먼저 금등대의 일곱 분지 위에 놓인 일곱 개의 등잔에 불순물 없이 깨끗한 올리브(감람나무) 기름을 채워 불을 밝혀야 한다. 또한 제사장들은 아침마다 등잔대 위에 타고 남은 재를 청소하고 심지를 갈아주어야 한다. 제사장들은 매일 아침 찌꺼기와 기름이 탄 재, 그리고 그을음을 청소해야 했다. 등잔대를 관리하기 위한 불집게와 불똥 그릇 또한 순금으로 제작되었는데 집게는 아직 뜨거운 기운이 남아있을 수 있는 심지와 재를 제거하는데 사용했다. 등대의 불을 하루 종일 지폈는지,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지폈는지는 의견이 분분한데 이것은 2절의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 지며’라는 지침 때문에 생긴 논란이다. 다수의 학자들은 3절에 근거하여 낮에는 등불을 켜지 않고 저녁부터 아침 동이 틀 무렵까지 불을 밝혔을 것으로 본다. 또한 출애굽기는 분명 저녁마다 등불을 밝혔다고 증언한다(27:21; 30:8). 그러나 성막의 본당, 즉 지성소와 내성소는 삼중 내지 사중의 덮개로 덮여 있어 자연 채광이 전혀 되지 않은 캄캄한 공간이다. 따라서 24시간 불을 켜 놓아야 했던 것이 분명하다. 요세푸스의 설명에 의하면 적어도 세 개의 등불을 온종일 켜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낮에도 불을 켜놓아야 했을 것을 고려해 볼 때 저녁 점화에 대한 설명은 일곱 개의 등잔 모두 불을 밝혀야 한다는 지시일 것이다. 등잔대의 빛은 성막 내부가 자연의 빛이 아닌 하나님의 빛으로 가득차야 할 공간임을 상징한다.

진설상 제작법과 사용법은 출애굽기 25:23~40와 37:10~16에 나타난다. 그 본문들은 현재의 레위기 24:5~9의 진설병 규정과 함께 읽어야 한다. ‘진설병’의 히브리어 레헴 파님(lehem panim)의 문자적 의미는 ‘얼굴의 떡’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말하며 그분의 임재를 상징한다. ‘얼굴이 함께 있다’는 당사자가 그 자리에 있음을 의미하는 전형적인 히브리어 표현이다(창 3:8; 신 4:37; 사 63:9). 따라서 레헴 파님은 아마도 떡상 앞의 하나님의 임재라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떡상에 임재하신 이유는 그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기 위함이다.

총 12개의 떡을 한 줄에 6개씩 두 줄로 놓았으며 각 줄 위에 정결한 유향이 첨가되었다(레 23:6~7). 안식일마다 떡이 교체되었다. 흔히 생각하듯이 이 진설병은 ‘호떡’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다. 24:5~9에 의하면, 떡 하나는 2/10에바, 즉 약 4.4 리터의 엄청난 크기였다. 이만한 크기의 뜨거운 떡 6개로 쌓는다면 아래쪽에 있는 떡은 뭉개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출애굽기의 제작법에는 침묵하고 있지만, 아마 떡상의 본체 위에 좌우로 6개의 떡을 넣는 칸들이 별도로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떡상의 정확한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안식일마다 새로운 떡들을 올리고, 물린 떡은 제사장들이 먹었다(9절). 그 떡은 일주일이 지났으나 부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랍비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기적이라고 주장한다. “영원한 언약”이라는 명칭은(8절) 이 떡의 매우 중요한 기능을 시사한다. 매 안식일마다 떡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언약의 식탁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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