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돈 소장(한국아가페상담연구소)

‘섬김’은 인격장애 극복 열쇠

인격 병리 중에 나르시시즘, 즉 자기애성 인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가 있다. 이러한 병리적 인격을 지닌 이들은 타인으로부터 끊임없이 존경과 인정을 구한다. 그리고 무한한 성공욕구와 지배적 욕구를 갖고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를 늘 좋아한다.

나아가 자신의 지위나 자존심을 위해 상대방을 억압하거나 상대방의 것을 착취하며, 자기를 숭배할 것을 요구한다든지,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는 등 과대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또한 자신은 늘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기대에 대해 사람들이 맹종하거나 순응하기를 불합리하게 기대한다. 오만하고 교만한 태도를 지닌 채 주변 사람들을 안하무인 식으로 대하며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단사이비 교주들은 예외 없이 병적인 자기애성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기적 욕구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사기를 친다든지 각종 경계선을 넘나드는 등 비윤리적인 일들을 서슴지 않고 행한다. 병리적인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이나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연예인들, 또한 자기과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병리적인 자기애가 많다. 우리 목회자들 역시도 이러한 병적인 자기애에 빠지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인격 장애는 역설적으로 자기를 건전하게 사랑하지 못함으로써 생겨난 병이다. 사람은 개인마다 존재성을 갖고 있다. 그것을 상담학에서는 ‘자기(self)’라고 표현한다. 자기란 개인의 전체 인격을 가리키는 말이며, 자기 외부의 대상들과 대조되는 ‘자신’을 가리킨다.

이러한 ‘자기’에 대해 깊이 연구함으로써 자기심리학(Self Psychology)을 주창했던 하인즈 코헛은 아동의 마음이 건강하게 발달하기 위해서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충분한 사랑과 함께, 아동에게 적절한 좌절(optimal frustration)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어린 시절에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게 학대나 무시를 받았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응석받이가 되어 과잉 대접을 받았다든지 할 때에 ‘자기’가 건강하게 형성되지 못함으로 결국 병적인 자기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병리적인 자기애성을 지닌 사람들이 등장한다. 야곱도 처음에는 그런 사람이지만 이후 적절한 좌절을 거쳐서 은혜 안에서 그 인격이 성화(聖化)되었다. 또한 요셉의 어린 시절 모습 속에서도 자기애적인 성격이 보인다. 형들 앞에서 자기 꿈을 말하되 자랑하듯이 말하는 모습 속에 자기애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요셉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적절한 고난을 통해 그 안에 있는 나르시시즘이 깎여졌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사울 왕은 병적인 자기애가 치료되지 못한 채 하나님보다 자신의 과대자기(grandiose self)를 더 추구하다가 결국 패망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병적인 자기애를 전혀 갖고 계시지 않으셨다. 그분의 성품과 삶 속에는 교만한 권위주의나 특권의식이 없으셨다. 대신에 온전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이타적인 사랑을 완전히 겸비하셨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

우리 역시 왜곡된 과대자기 혹은 열등자기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닮은 건강한 자기애를 갖고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사울 왕은 자기애성 인격 장애를 갖고 다윗을 공격하며 죽이려고 했지만, 그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기적 자기애를 극복하면서 다윗을 힘써 도왔다. 우리도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도리어 섬기려고 할 때 병적인 자기애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품어주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영원히 받고 있는 존재로서의 그 정체성과 그에 따른 성경적 자기 인식을 잘 갖게 된다면 누구든 더 이상 과대자기나 열등자기에 빠지지 않고 건강한 자기애를 갖고 인생을 보람되고,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한일서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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