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택 목사(발안제일교회)

▲ 김종택 목사(발안제일교회)

300여 명의 기드온 용사들은 강군 미디안과 전투에서 전략상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쟁에 임했다. 횃불을 항아리 속에 감추고 대군 미디안 군 진영을 둘러싸고 소리를 지르며 일제히 횃불 항아리를 깨트리자 미디안 군인들은 혼비백산하여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진멸당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바람 불면 꺼진다던 촛불이 더욱 확산되어 매주 토요일마다 학생, 청년, 가정주부, 노동자, 농민, 노년등 총 2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모여 평화적 시위로 벌이고 있다.
한 여자에게 이용당해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살피지 못한 채 샤머니즘, 무당종교에 이용당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고 있다. 20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운집되어 벌인 시위는 질서를 지키며 깨끗하게 청소되어 온 세계 매스컴이 놀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말하기를 백성에게는 의무와 권리가 부여되는데 의무와 권리와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법이 있으며 이 법은 백성들의 의무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의무만 강조하고 권리를 찾지 못할 때 투쟁하여 그 권리를 찾아야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 헌법에 보장된 행복 추구권이 유린당하고 1%에 해당되는 권세 세도 가문(家門)들, 일부 탐욕적인 재벌들과 함께 벌려온 정경유착으로 금 수저는 금수저를 낳아 금 수저로 살고 흙 수저는 가난의 설움에 몸부림치는 현실을 바라보면 빈부의 격차가 너무나 벌어져 버렸다. 병든 자, 가난한 자, 억압당한 자, 가난한 자를 ‘작은’라고 부르시며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우리 예수님이 생각난다.

프랑스 혁명에 단두대에 처형된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굶주린 백성들이 빵이 없어 배고파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며 절규하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고 했다. 가난한 농민, 노동자들, 대학생들 그리고 일부 지각 있는 지식인들은 백성들에게 주권이 부여되는 공화주의를 형성하여 당시 권력과 재력을 소유했던 왕당파의 투쟁으로 공화파(共和派)와 왕당파(王黨派)로 진보파와 보수파,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졌다.

내가 죽거든 호화로운 장례식을 금해주고 “내 재산 4만 프랑의 돈을 남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의 설움을 살다가 죽어갈 때 관이 없이 장례를 치루니 관을 만드는 재료를 사는 데 사용하기 바란다”라고 유언을 남겼던 빅토르위고, 빵 훔치고 19년 옥살이한 후 출옥했으나 잠자는 누울 자리도 없어지니 개집에서라도 눈을 부치려고 했을 때 개에게 물리자 ”나는 개만도 못한 인생“이라고 비통했던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 <레미제라블>의 명저를 남겼던 빅토르위고, 그가 죽자 그의 시신을 운구하며 장례 행렬에 200만 명의 가난한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던 것이다.

탐관오리이자 동학농민의 원인 제공자였던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당한 농민들, 녹두장군 전봉준이 앞장서서 민중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그들의 정기가 지금도 있어서인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농민들이 농기차(農機車)를 몰고 시위대에 동참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오늘 이렇게 황무해 버린 이 강산, 이 정국, 이 나라를 바라보면서 정치지도자들은 차지하고라도 우리를 종교지도자 교단지도자,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시대적 사명과 역사적 책임을 무엇인가? 친일세력, 이단종교인들로 인해서 편협되고 왜곡된 우리 민족의 40년 근대사를 어떻게 다시 정립해야 된단 말인가?

필자로 금번에 중국 장사시(長紗市)에 있는 백범 김구(백범의 호는 김구 선생님의 아버지가 백정이어서 흰백(白)자, 그리고 보통사람 이라하여 凡) 선생 기념관을 탐방한 일이 있었다. 가슴에 총탄 맞고 부상당하시며 외롭게 독립운동 하여 나라를 건국했던 그분의 기념관이 헐릴 위기에 처해있으나 우리 정부에서는 지원이 전무하다는 말을 들었다. 민족지도자들이 이렇게 홀대 받아야 된단 말인가?

지금 우리 책임은 없는가? 왜 우리는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기르지 못하고 지배자만 양산했던가? 우리나라 지금 이때 오늘 지금 촛불정국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한 일은 무엇인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면서 그리고 황무한 땅을 갈아엎고, 그리고 기초를 다시 쌓아가자고 말하는 그런 지도자가 누구인가? 학생들아, 젊은이들아 이제 우리 함께 일어나자. 그리고 미래를 향해 새로운 비전을 품고 함께 가자고 외치는 그런 지도자,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잠자코 의무만 감당하라고 윽박지르며 탄압했던 프랑스 대혁명시에 왕당파를 대항하며 불쌍한 사람들(레미제라블)의 아픔을 어루만저 줬던 빅토르위고 같은 그런 지도자가 지금 이 촛불정국, 우리나라, 우리 교단에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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