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려보낸 작은 꽃씨, 사랑으로 움텄죠”

미약하게 시작한 지역이웃 섬김사역,
많은 동역자 통해 큰 은혜된 감동 차분히 전해

“흐르는 물 위에 자기 떡을 던지면 여러 날 후에 다시 찾을 수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 말이 진짜 이뤄지는 거예요. 참 신기하지 않아요?”

작년 이맘 때였다. 옥수동과 금호동에 사는 아프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5만원치 생필품을 나눠주고, 김치찌개로 늦은 점심을 같이 하며 호용한 목사(옥수중앙교회)는 전도서 11장 1절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이라면, 그다지 크지 않은 옥수중앙교회가 2001년부터 지금까지 구제비와 장학금으로 매년 1억원 넘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옥수중앙교회에 부임한 2001년 자신의 떡을 흘려보냈다. 한 노 권사가 교회 정착금으로 쓰라며 쥐어준 2000만원이었다. 그는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장학금으로 교회 앞에 내놓았다. 기도하며 물 위에 흘려보낸 그 돈은 수십 배 열매가 되어 돌아왔다. 교인들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더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십시일반 헌금을 했고, 교회 밖에서도 후원금을 보내왔다. 모아진 헌금과 후원금으로 그와 옥수중앙교회는 소외되고, 병들고, 가난한 이웃들을 먹이고 입혔다. 돌봐줄 이 없는 독거노인들에게 매일 아침 우유를 배달하고, 병들어 거동하지 못하는 이웃들을 찾아가 기도하고 생필품을 전달했다.

▲ 호용한 목사는 재물이란 가난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인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애쓰고 눈물 흘리는 가운데 그에게는 여러 가지 별명이 생겼다. 누구는 그를 ‘성동구의 프란체스코’라 불렀고, 어떤 이들은 ‘옥수동 우유목사님’이라 불렀다. 그중의 하나가 ‘울보목사’다.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설교를 하다가도, 기도를 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린다고 교인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는 최근 자신의 별명을 따라 <달동네 울보목사>(넥서스CROSS)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는 고독사 방지를 위한 우유 배달 사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부터, 옥수동과 금호동 달동네 주민들의 삶의 애환들, 옥수중앙교회가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이웃들을 섬겨 왔는지 등이 담담한 어조로 실려 있다.

그는 책을 펴내자는 출판사의 제의에 오래도록 고민을 했다. 혹여나 책이 자기 자랑이 될까 염려가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여지기도 해요.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자랑할 것이 없어요. 우리 교회 근처에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그냥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했을 뿐이에요.”

고민 끝에 그가 책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동역자들’ 때문이었다. 달동네 옥수중앙교회가 자기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돈을 보내왔다. 그중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이들도 많았고 멀리 해외에서 후원금을 보내오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이야 우리 동네 이웃들을 돕는 일이니까 그렇다손 쳐도, 그분들은 아무 상관도 없는 옥수동을 위해 후원금을 보내준 거잖아요. 그분들이야말로 우리 교회 사역의 숨은 주인공들이죠.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응원을 보내고 싶었어요.”

<달동네 울보목사>에는 그가 지금의 울보목사가 되기까지 살아온 이야기도 함께 실렸다. 한국전쟁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나 신문배달, 과외교사를 해가며 어렵게 공부한 이야기며, 독일 한인교회 목회 시절 유학생들에게 처음 쌀을 나눠주게 된 이야기 등이 감동을 자아낸다. 특별히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을 찌른다.

“여기서 드시지 왜 싸가지고 가세요?”

한 할머니께 넌지시 여쭈어봤더니, 할머니의 대답은 의외였다.

“응, 집에 있는 영감님 주려고…. 나는 맛난 거 먹는데, 우리 영감님 이거라도 가져다 드려야지.”

나는 어르신들이 단순히 아껴 먹으려 그러는 줄 알았다. 어르신들 중에는 실제로 그런 분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 할머니처럼 가족들 때문이었다. 거동 못하는 아내를 집에 두고 온 할아버지는 할머니 생각에 과일을 먹지 못했고, 어린 손자를 키우고 있는 할머니는 자신보다 손자 입이 먼저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렸을 적 어머니도 그랬다. 잔칫집에 다녀오시는 길이면 어머니는 늘 떡이며 전이며 고기를 종이에 둘둘 말아 품에 안고 오셨다. 그리고는 잔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자식들 옆에서 식은 밥을 물에 말아 드셨다.

“나는 많이 먹고 왔으니까, 어서들 먹어.”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달동네 울보목사> 중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작은 꽃씨를 심는 마음으로 책을 내놓는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소망의 계절, 눈물 뿌리고 땀 흘려 심은 옥수동 작은 꽃씨가 새순으로 움트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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