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3일 기독신문사는 발행인을 101회 김선규 총회장으로 바꾸려는 행정절차 속에서 폐간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만났다. 지난 6월 21일 총회 유지재단은 이사장 주재 하에 98회 총회시 서울시에 등록했던 <총회소식지> 폐간을 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총회소식지> 폐간 서류 속에 <기독신문> 자진폐업 신고서가 들어가 52년을 이어온 합동교단의 얼굴인 <기독신문>이 폐간이라는 사태를 만났던 것이다. 신문사 폐간 이야기를 할 때면 1940년 8월 11일 당시 민족 정론지였던 동아일보가 악랄한 일제에 의하여 폐간된 것을 알고 있다. 1920년 4월 1일 송진우 김성수 유근 등의 주도로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하며 ‘민주주의의지’, ‘문화주의제창’이라는 사시아래 창간된 신문이 동아일보였다. 초대사장은 철종의 부마 박영효였고 초대주필은 김성수였다. 동아일보는 일제 강점기 브나로드운동과 연정회, 신간회운동을 지원하였다. 창간이래 20년 민족의 대변지였던 동아일보는 다음과 같은 폐간사로 저 악랄했던 일제 탄압에 의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번 뿌려진 씨인지라 오늘 이후에는 싹 밑에 또 새싹이 트고 꽃 위엔 또 새 꽃이 필 것을 의심치 않는 바이다.” 또한 “신문은 폐간 된다 해도 한(恨)없는 긍지를 간직할 수 있다”고 했고 “훼절하여 민족의 진로를 오도하느니 보다는 차라리 자폭하고 가사(假死)하여 윤전기를 멈춤으로써” 먼 앞날을 기약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표현했다. 이렇게 동아일보는 창간 20년만인 1940년 8월 10일 마지막 폐간사와 함께 민족의 가슴에 묻혀 졌다.

그런데 신문사도 모르는 폐업이라니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일개 직원의 실수로 1965년 1월 4일 6년이란 긴 세월의 기다림 속에 창간된 우리의 얼굴이요 눈과 귀인 <기독신문>이 귀책사유로 폐간되었으니 이런 기가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1965년 1월 4일 개혁신앙의 보수 교회의 단결 성도의 교제를 사시로 창간된 것이 <기독신문>이다.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지나온 것이 우리의 얼굴이요 정론지인 <기독신문>의 뒤안길이었다. 속히 행정당국과의 절차를 통해 원상태가 회복되기를 기도하자. 정치권도 힘을 합하여 교단 정론지의 정상화에 힘써주기를 바라며 지금껏 <기독신문>에 몸담고 온 사장 이하 주필과 양 국장 및 직원들은 더 바른 언론 창달 정론직필에 최선을 다하여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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