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은성 교수(총신대학교, 역사신학)

‘순전한 복음 선포’로 분별하라

▲ 라은성 교수(총신대·역사신학)

교회는 모친(<기독교강요> 4권 1장 1, 4항), 신부며 몸이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 1항).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솔로몬의 ‘아가’에서 잘 볼 수 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 또는 신자 한 사람을 사랑, 어여쁜 자, 누이, 신부 등 시적으로 묘사되어 있다(아 4:1, 8~9). 하지만 어느 시대나 거짓 교회가 있었다. 성경 전체에서 거짓 선지자, 거짓 복음, 독보리(가라지), 적그리스도 등이 있음을 수차례 경고하고 있다(마 24:11, 24; 렘 14:14). 거짓 교회에는 결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어떤 교회가 거짓 교회인지 참된 교회인지 외적 요소로 분별하기 쉽지 않지만, 신앙의 선배들은 우리를 위해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각종 이단들을 가리켜 거짓 교회라고 경고했고, 종교개혁 시기에 중세교회를 대표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거짓 교회라고 경고했다. 지금은 워낙 많은 교파들이 생겨서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거짓 교회라 말할 수 없는 실정에 이르렀다. 그래서 교회 역사에서 나타난 거짓 교회의 양태를 지니고 있다면 거짓 교회라고 분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 교회란 무엇인지에 대한 일반적 견해와 권한에 대해서도 살펴보도록 하자.

교회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 ‘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이다. 불가시적 교회는 보편적 교회 또는 우주적 교회라고도 불리는데, 선택된 모든 자를 일컫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이다. 불가시적 교회는 문화, 시대, 인종, 지역에 제한되지 않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만 아신다. 불가시적 교회는 믿음의 능력으로 심정과 의지로 또 동일한 성령으로 여전히 가입되고 연합되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고 퍼져있다(<벨지카 신앙고백서> 27항).

지상에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의 목적은 모친인 교회가 교육을 통해서 성도를 성장시키고 말씀으로 보호하고 서로 교제하는데 있다. 교회를 ‘쉴 곳’ 또는 ‘거하는 곳’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하늘 교회의 사역에 대한 경의, 사랑, 경외 및 위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4권 1장 5항). 교회는 교리와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데 있다. 유의할 것은 중생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이고, 우리의 사역으로 그분의 사역을 협력할 수 있다는 것은 이단 사상(세미 펠라기우스주의)이 아닐 수 없다. 교회는 중생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된 자이든 중생될 자를 위한 모임이라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 안 된다.

너무나 쉽게 교회 일원을 중생된 자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교회의 구성원은 크게 ‘선택된 자’와 ‘유기된 자’로 나눌 수 있다. 이는 다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선택된 자들 중 중생을 체험한 자가 있고,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 유기된 자들 중 중생된 척하는 자가 있고, 중생과는 무관한 자가 있다. 선택된 자 가운데 중생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자는 유기된 자의 경우와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에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교회는 중생된 자나 중생될 자라고 구성원을 생각하고 중생에 모든 교육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참된 교회의 표지는 ①복음을 순전하게 선포하는 일에 힘써야 하고, ②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들을 순전하게 집행해야 하고, ③오류들을 바르게 하는 기강을 실천해야 한다(<벨지카 신앙고백서> 29항). 이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게 선포되고 들리는 곳마다 또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라 집행되는 성례들을 보는 곳마다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음을 결코 의심할 수 없다(<기독교강요> 4권 1장 9항).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새로운 가르침을 발견했으면 한다. 하나는 <벨지카 신앙고백서>와 <기독교강요>의 차이점은 ‘기강’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 선포’라는 의미이다. 기강과 성례에 관해서 다음에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말씀 선포’의 의미를 설명하도록 한다. ‘말씀’이란 영어로 프리칭(preaching)이고, 라틴어로는 베르붐(verbum)이다. 베르붐이란 해석하고 소화되어 외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순전한 복음 선포’란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해석해야 하고, 그것을 선포하는 자가 자신의 삶에 충분히 소화시켜 순전하게 적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 천둥의 소리처럼 외치는 것이다. 여기서 자의적 해석이나 그릇된 해석은 용납되어선 안 된다. 그리고 설교를 강의나 교훈, 특정한 주제나 목적을 가진 세미나와 같은 선포는 바르지 못한 것이기에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선포하는 자는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들으라는 명령을 받은 자는 어떤 것도 고안하지 말아야 한다. 이 의미는 자신이 전달하는 말씀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명령 받은 이상의 것을 가르쳐선 안 된다’(<기독교강요> 4권 8장 3항). 이 자세에서 벗어난 자가 있는 교회는 거짓 교회이다. 이 점에 있어 개혁신앙인은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참과 거짓 교회의 분별은 도덕적 부패에 있지 않고 단지 순전한 복음을 선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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