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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신령한 축복을 가벼이 여기지 맙시다(고전 10:1~3)정재왕 목사(대구 성서중부교회)

신령한 사랑, 기억하고 감사합시다
하나님 기쁘시게 하지 못하면 하늘나라 유업 받을 수 없어

▲ 정재왕 목사(대구 성서중부교회)

“다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3~4)

초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남다른 특권을 많이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은사도 많고 지혜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분쟁하며 교회공동체가 파탄을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내 은사가 더 좋은 것이다’, ‘아니다 내 은사가 더 귀하다’ 그러는 가운데 공동체가 여러 분파로 분열되어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과거 구약시대 이스라엘 선조들이 광야에서 멸망하게 된 역사를 이야기해줍니다. 세상 어느 민족도 꿈꿀 수 없는 신령한 축복과 특권을 받아 누리고도 멸망하게 된 이스라엘 선조들을 설명하면서 그들의 믿음에 경종을 울리고 회복을 호소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선조들이 누렸던 축복과 특권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먼저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본문 1~4절에서 그것들이 소개되는데 한 마디로 ‘인도하심의 은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구름 아래 있었던 것’이 특권이요 축복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 길을 갈 때 향방을 못 잡아 방황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구름기둥을 만들어 주셔서 길을 안내하셨던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광야의 온도가 섭씨 40도 정도였으면 일사병에 걸려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그늘을 만들어서 그 아래로 걷게 해주셨던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셨다”라는 시편 105장 39절 말씀을 근거로 구름기둥은 그냥 기둥 모양이 아니라 기둥처럼 솟아올라서 위쪽에서는 파라솔 모양으로 쫙 펴진 형태의 구름을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은혜는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라는 표현에서 한 번 더 확인됩니다. 가다가 홍해 앞에 도착했을 때,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로 길을 만들어서 마른 땅 걷듯 건너게 하셨습니다.

또 2절에서는 아주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소개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보면서 ‘구약시대에도 세례가 있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세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통과한 그 자체를 말합니다. 죄인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세례라는 세례의 신약적 의미를 구약시대에 홍해를 건넌 사건에 연관시켜 표현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으로 인도받고 홍해를 건너는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의 바다에 푹 빠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와 홍해의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귀한 영적인 축복을 가벼이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오늘 고린도교회를 향해 바울 사도가 전하는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선조들에게 베푸신 특권과 축복들은 본문 3~4절에 더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선조들이 신령한 식물을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신 것이 복이었다고 합니다. 신령한 식물은 ‘만나’입니다. 애굽에서 탈출할 때 잔뜩 짊어지고 나온 양식이 광야생활 꼭 한 달 만에 바닥나고 굶어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형편 없었습니다. 애굽이 더 좋다, 애굽에서 과거 노예시절, 종살이 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면서 저질스런 모습으로 모세와 하나님에게 도전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 바로 ‘만나’였습니다.

만나를 ‘신령한’ 식물이라고 한 이유는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진 이상한 형태를 하고 있어서라기보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향하여 불신앙으로 도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언약을 맺은 친백성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을 먹이고 입히고 인도함에 책임진다’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에 만나는 신령한 식물이었습니다. 만나는 언약의 백성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었으며 소중한 은혜의 양식이었습니다. 만나가 신령한 음식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 만나를 먹은 백성이라면 신령한 축복과 특권을 받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4절에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령한 음료’도 마셨다고 합니다. 므리바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말합니다. 불신앙과 원망을 끊임없이 표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물은 그냥 물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북돋우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였습니다. 그 물에는 ‘정신 차려! 내가 아직도 너를 사랑한단 말이야! 포기하지 않았단 말이야!’라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물이 신령한 음료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생명의 샘물을 쏟아낸 그 반석이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바울 사도 말합니다.(4절)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오늘의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죄와 불신앙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인데도 저버리지 못하고 찾아오셔서 생명의 물을 먹이심으로 구원하신 주님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렸던 특권과 축복을 열거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특권과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망해버린 사실을 5절에서 언급합니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러나’로 시작하면서 그렇게 신령한 은혜와 축복들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했는지에 대해서는 6절 하반절에서 밝힙니다. 그들은 악을 즐겨 행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악인지 4가지 죄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상숭배의 죄였습니다(7절). 두 번째는 간음죄입니다(8절). 세 번째는 주님을 시험한 죄였습니다(9절). 네 번째는 원망죄였습니다(10절).

민수기 11장과 2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맛있었던 만나가 이제 싫어졌다고 하면서 원망하기를 “하나님, 이런 음식밖에 없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2장에 가면,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어 14장에 보면, 아예 애굽으로 되돌아가자고 군중을 선동합니다. 심지어 만나를 가리켜 ‘박한 식물’이라 했습니다. ‘박하다’라는 말은 ‘시시하다, 하챦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이제는 만나를 안 먹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78편 17~18절 말씀이 그것을 증언합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범죄하여 메마른 땅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어서 물려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든 이유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령한 식물과 음료를 먹고 마셨을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때에는 멸망 받았다는 것을 거울삼으라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온갖 귀한 은사와 축복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때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교훈을 주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이스라엘 선조들이 만나를 가리켜 ‘박한 식물’이라고 했지만, 바울 사도는 ‘신령한 식물’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하나님 은혜를 인정하다가 나중에는 감사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분명 옛날 가난할 때보다는 훨씬 풍족하고 유복한데도 조금만 어려워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 축복을 가벼이 여길 때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원망을 하게 되는 때는 돈이 없고, 힘이 없을 때가 아니라 받은 축복과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상실할 때입니다. 살기가 좋아지고 편안해질 때 영적인 만족이 없어지고, 영적인 긴장감이 이완될 때 우리는 언제든지 범죄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은혜, 신령한 축복을 늘 헤아리고, 내 속에 감사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합시다.

내가 오늘까지 건재한 것은 하나님 사랑과 긍휼 때문입니다. 내 안에 굉장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니 내 안에 굉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게 베풀어주신 모든 신령한 사랑과 특권과 축복을 기억하고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사랑과 은혜를 노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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