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하나님 창조질서 왜곡하는 부적절한 성범죄 경계하다
사회적 안전과 질서 유지하는 공동체의 ‘가족관계’ 보호하는 데 초점 맞추고 있어

 

레위기 11~15장과 18~20장의 관계: “너희는 거룩하라”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레위기 11~15장이 의식적 정결법이라면 18~20장은 윤리적 정결법에 속하는데, 이것들을 각각 ‘정결법’과 ‘성결법’으로 칭하기로 하자. 흥미롭게도 레위기 11장 44~45절의 ‘너희는 거룩하라’는 명령은 레위기 20장의 마지막 부분(25~26절)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레위기 11~20장 전체가 동일한 목표, 즉 “너희는 거룩하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레위기 11~15장이 의식적 정결을 통해 거룩을 구현한다면, 레위기 18~20장은 윤리적 정결을 통해 거룩을 구현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의식적 정결을 유지함으로써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윤리적 정결의 삶을 삶으로써 거룩한 백성의 자격을 유지해야 한다. 그 사이에 레위기 16~17장이 끼어있다.

여기서 속죄일은 이스라엘의 국가적 속죄와 회복을 위한 가장 중대한 제의 시스템이다. 만일 백성들이 의식적으로 부정하게 되어 그들의 거룩이 훼손되고 상실된다면 그들은 몸을 정결케 하고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거룩을 회복해야 한다(레 11~15장). 정결법에 지정된 정결 의식을 치르지 않은 자는 ‘제명’이라는 형벌을 받는데(레 15:31) 이 문제는 속죄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 윤리적 삶을 사는 데 실패하여 거룩함을 상실한 인간에게는 사형과 제명이라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레 18~20장).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심판을 유보하시면 그들은 즉각 회개와 더불어 속죄의 기회를 얻을 수 있고, 특별히 속죄일은 마지막 회개의 자리가 될 수 있다. 연중에 해결되지 못한 그들의 모든 죄는 최종적 속죄일에 짐승의 피와 아사셀 염소 의식을 통해 사해지고 성전 역시 전면적 정화를 이룸으로써 그들은 마침내 원래의 거룩성을 회복하고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다.

윤리적 성결을 위한 법

레위기 18~20장의 구성이 흥미로운 것은 19장을 사이에 두고 18장과 20장이 주로 불법적 성관계들을 금지하는 규정들로 이루어져있다는 점이다. 18장은 구체적 대상들이 명시된 대가족 안에서 금지된 근친상간과 그 외 불법적 성관계들을, 20장은 그런 금지된 성관계에 대한 징벌들을 자세히 규정한다. 그런 불법적 행위는 땅이 토해낼 만큼 대단히 역겹고 문란하며 그에 따른 형벌은 가혹한 죽음이다. 한편, 18장과 20장 사이에 있는 19장은 대부분 십계명을 비롯하여 사회 정의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윤리적 조항들로 채워져 있다. 한편, 여기서 금지된 것은 단순히 근친간의 성관계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근친간의 결혼 관계인가? 이 표현 자체는 일시적·충동적 성적 행위인 것처럼 보이지만 구약의 율법은 남녀의 혼전 순결을 명령하므로 성관계와 결혼 관계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즉 근친 간에는 결혼은 물론 어떠한 성관계도 금지된다. 18장과 20장에서 불법적인 것으로 금지된 행위들을 목록으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근친상간의 금지

다음과 같은 근친상간의 관계가 금지된다: 1)어머니; 2)계모; 3)누이; 4)손녀; 5)이복누이; 6)고모; 7)이모; 8)숙모; 9)며느리; 10)형수나 제수; 11)한 여자와 그녀의 딸; 12)한 여자와 그녀의 손녀; 13)아내의 누이(처형이나 처제); 14)장모. 18장에 나열된 근친의 대상 중 흥미롭게도 친딸과 장모가 빠져 있다. 장모는 18장에는 누락되어 있지만 20장에는 나타나고 있으므로 18장에서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딸은 그렇지 않다. 17절에 딸이 명시되지만 이 경우는 자신과 혈연관계가 아닌 딸을 가리킨다. 아마 딸은 가장 역겨운 사례인 어머니를 명시함으로써 자동으로 그 아래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집트 왕가에서는 혈통 보존을 위한 남매간의 결혼이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레위기법은 친누이든 의붓 누이나 배다른 누이든 그녀와의 결혼 혹은 성관계가 금지된다. 핵가족을 넘어 대가족 내에서는 3촌까지 혼인이 금지된다. 그러나 4촌부터는 결혼이 가능했다. 실제로 구약에서는 족내혼의 전통에 따라 4촌간의 결혼이 성행하여 그런 부부가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이웃 나라들에서는 남매혼 뿐 아니라 근친혼이 성행했다. 특히 이집트와 로마의 왕가에서는 혈통 보존을 위해 근친혼을 장려한 결과 유전병을 지닌 자녀들이 많이 태어났다.

물론 레위기 18장의 율법이 주어지기 전인 족장 시대에는 금지된 결혼을 묵인하는 장면들이 나타난다. 우선 친 남매가 아닌 배다른 남매간의 결혼이 허용되었다.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음이니라”(창 20:12)라는 아브라함의 진술에서 이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은 조카인 밀가를 아내로 맞았다(창 11:27~29). 야곱의 장자였던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 빌하와 관계를 맺었으며,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집안의 혈통을 잇는 행위를 저질렀는데, 레위기 법에서는 아버지의 아내와 며느리와의 성관계 금지를 나란히 배치하여 이를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할 것을 명한다(레 20:11~12). 레위기 법은 이러한 모든 행위들을 금지한다. 카미카엘(C. M. Carmichael)에 의하면 레위기 18~20장의 법들은 족장들 사이의 이러한 풍속들을 배경으로 작성되었는데 그런 행위들을 이제는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그에 관한 법률적인 금지 규정을 만든다. 레위기는 이러한 관례들을 가나안과 이집트의 풍습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의 관점을 따르면 오히려 족장들 역시 이 지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이복누이와 결혼했던 지역이 우르 땅, 즉 메소포타미아였다는 것은 당시 그러한 결혼이 그 지방의 관행이었음을 시사한다.
 
다른 유형의 성관계들의 금지

그 밖의 다른 유형의 금지된 성관계들이 몰렉 희생의 금지와 더불어 추가된다: 1) 월경 중인 아내; 2) 이웃의 아내; 3) 몰렉에 자녀 바치기; 4) 동성애; 5) 수간. 월경 중인 아내와 잠자리를 금하는 데는 부정을 탄 상태라는 제의적 이유도 있겠지만(레 15:24) 아마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아내에 대한 배려 역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금지된 모든 사악한 성관계들을 이집트와 가나안의 관행으로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어머니나 딸, 혹은 이웃의 아내와의 성관계는 보편적 금기사항이었다. 어떤 사람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수간과 동성애가 자행되었다는 증거가 매우 희박하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증거가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히타이트 법전은 양, 소, 돼지, 개와의 수간은 금했으나, 말과 나귀와의 수간은 금하지 않았다. 그러나 구약은 어떤 형태의 수간이든 여러 곳에서 죽음의 형벌과 더불어 금지하고 있다(출 22:19; 민 35:16~21; 신 27:1). 한편, 가나안의 신화에서는 신들과 동물의 교접이 일상적으로 벌어졌으며 구약은 가나안에 만연했던 동성애 풍습을 고발하고 있다(창 19:4~8; 삿 19:22). 수간 행위를 히브리어로 테벨(tebel)이라 하는데 이것은 ‘문란한 일’로 번역되었으나 의미상으로 볼 때 그보다는 ‘뒤틀림’ 혹은 ‘혼합’에 가깝다. 금지된 모든 성관계 역시 개념상으로는 일종의 테벨이라 볼 수 있다. 즉 수간, 동성애, 그리고 여타의 금지된 성관계들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엉망(테벨)으로 만드는 짓이다.

이웃의 아내와의 간음과 수간은 오늘날까지도 통하는 보편적 금기사항이지만, 동성애에 대한 현대 그리스도인의 인식은 크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는 항구적, 본질적 도덕법으로서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엄격히 금지된다(롬 1:26~27; 고전 6:9; 딤전 1:10). 동성애는 문화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간음과 근친상간 및 수간, 음행, 그리고 우상숭배와 더불어 동일한 범주의 항구적인 불법행위다. 여기서 동성애만 별개의 문제로 제외하려는 시도는 대단히 잘못된 의도적인 본문의 곡해다.

몰렉 숭배와 접신술사 및 박수무당

몰렉(molek)은 ‘몰록’이라고도 불리는데 아마 ‘밀곰’과 더불어 동일한 신의 명칭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몰렉에게 실제로 자녀를 불살라 바쳤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나, 성경의 수많은 증거는 그런 사악한 관행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말해준다(신 12:31; 18:10; 왕하 16:3~4; 렘 7:31; 19:5; 32:35; 겔 16:21; 사 57:5~9; 30:33). 중요한 것은 므낫세 치하의 타락상에서 볼 수 있듯이 몰렉 제의와 같은 자녀 희생제가 사악한 종교적 관행들, 즉 사술, 요술, 신접술, 점술을 동반한다는 것이다(대하 33:2~6). 접신술은 고대 중동에서 광범위하게 실행된 종교 행위였다. 영매들과 심령술사들은 귀신들, 특히 망자 의식을 통해 죽은 자의 혼령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접신술은 영매에게 혼령이 들어와 메시지를 전하는 동양의 접신 방식이 아니라 망자의 혼령을 불러내어 그와 대화를 나누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매술을 의미한다(예, 삼상 28장의 엔돌의 무녀가 사무엘의 혼령을 부르는 장면). 구약에서 점과 마술을 사악한 행위로 취급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점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 뒤 적절한 예방 조치나 마술을 통해 미래의 일을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 하기 때문이다. 점술을 통해 “길흉을 말하며” 미래를 미리 알아내려는 인간의 시도는 사악했다. 마술과 사술로 하늘의 시간표를 바꾸고 운명의 조작을 시도하는 것과 같았다. 이는 곧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그렇다면 20장에 나열된 금지된 성관계의 목록에 몰렉 숭배와 초혼술의 금지 명령이 끼어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약의 여러 증거들을 통해 볼 때 몰렉에게 자녀를 희생시키는 것이 가나안의 점술 및 초혼술(망자 의식)과 깊이 결부되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신 18:10; 왕하 17:17; 21:6; 대하 33:6). 이 경우 몰렉은 지하 세계의 신으로 추측된다. 몰렉에게 자녀를 바침으로써 죽은 조상의 혼령을 불러내는 의식이 진행되었다는 추론이다. 세 가지 측면에서 몰렉신을 위한 자녀의 희생은 가족 파괴적 악행이다. 첫째, 거짓 신을 상대로 사랑하는 자녀를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둘째, 이 행위는 가족에게 약속된 언약의 ‘씨’를 바치는 셈이다. 셋째, 이 관행은 죽은 자가 살아있는 가족의 삶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사악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이 사악한 관행들의 금지명령이 가까운 가족 간의 성적인 문제를 다룬 법들과 나란히 배열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레위기 18장과 20장에 등장한 성적 범죄의 목록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범주로 정리해볼 수 있다. 이 목록에 포함된 범죄들은 모두 부적절한 성 범죄의 일종으로 간주될 수 있다. 몰렉 신 숭배를 넓은 의미에서 성 범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이유는 실제로 몰렉 신 숭배를 ‘몰렉을 따라가 매춘을 한다’, 즉 몰렉을 ‘음란히 섬긴다’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1) 악신과의 금지된 혼음; 2) 사람과의 금지된 성관계; 3) 동물과의 금지된 결합. 이런 일들은 이집트 족속과 가나안 족속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풍속이었다(레 20:3, 24). 그 일로 그들은 땅에서 징벌을 당하여 멸절당했다. 그런 가증한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과 땅을 모두 ‘더럽힌다.’ 땅은 이스라엘 역시 토해낼 것이고, 이런 불법적인 성관계를 맺은 자는 ‘끊어질 것이다’(레 20:26~28).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공동체 안에서 ‘가족 관계’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임과 동시에 사회적 안전을 위한 초석이다. 남자와 여자에 대한 제사장의 관점의 중심에는 세계와 사회의 질서는 결혼과 대가족에 기반하고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즉 각 가족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레위기 19장의 공동체의 유대를 위한 다양한 사회 윤리법들이 가족 보호법인 레위기 18장과 20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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