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목사의 세상보기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그러니까 춘추전국시대의 이야기다. 당대의 현인이었던 맹자는 자신을 등용해 줄 임금을 찾는다. 당시 맹자는 위나라 해왕을 찾아갔다. 그 때 해왕은 맹자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께서 먼 길을 찾아오셨는데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가 있으십니까?” 이 때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께서 어찌 이익을 말하십니까? 맹자의 이 말이 담고 있는 뜻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자기 이익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백성의 이익을 구하는 자란 뜻이다.”
이런 맹자에 대하여 역사는 위민사상을 설파한 왕도정치의 현인으로 알고 있다.

왕도정치가 무엇인가. 이는 패도정치와 구별되는 것으로 인의(仁義)로 다스리는 정치를 말함이다. 이런 사상을 설파한 조선의 정치가가 바로 미완의 개혁자로 알려진 정암 조광조이다.

개혁의지의 대명사로 이 나라 지식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정암 조광조는 성종 13년인 1482년에 용인현 수지에서 태어났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기를 혼탁의 극치로 반정에 의해 쫓겨난 연산군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체험하며 자란 사람이 조광조이다. 그는 후일 지치융평사상이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은 하늘 아래 다 평등하다는 생각이었다.

조광조는 왕도정치의 기본인 위민사상을 설파하다 죽었지만 그는 지금도 개혁세력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맹자는 왕의 이익이 아니라 백성의 이익이 전제되는게 바로 인의의 정치라고 한 것이다.

절대군주가 다스리던 2500년 전에도 맹자는 민심이 천심임을 강조하여 왕이란 백성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는게 맹자의 견해였다. 민심이 천심이다. 인류가 국가를 형성한 이래 개인은 국가 권력 앞에 무력해졌다. 언제고 국가 권력이 민심에 순응하면 그 공간은 민초들이 아니 사람들이 살만한 곳이었다. 권력을 쥔 자가 황제이든 왕이든 귀족이든 상관없이 그 권력을 쥔 자들이 민심에 순응하면 그 나라는 태평성대였다. 그러나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민심을 거스른 공간은 고통의 땅이었다. 집권 세력이나 이를 대신하는 세력이 주장하는 바가 상식에 어긋나면 그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민중은 고통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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