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피는 곧 생명’ 희생짐승의 피는 대속의 효과 불러온다
피와 관련된 잘못 자행될 가능성 컸던 화목제는 취급 방식 엄중히 강조하고 있어

사슴을 잡아 온 요아킴

▲ 김경열 목사(총신대 강사)

최근 요아킴은 전염병으로 양떼를 많이 잃었다. 그로 인해 일부 하나님께 제물로 쓸 여유는 있으나 식용으로 양을 잡아먹을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요아킴은 요즘 마을 밖 야산으로 사슴 사냥을 나간다. 오후 늦은 시간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커다란 사슴을 잡는 데 성공했다. 요아킴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슴의 목을 따 피를 모두 빼냈다. 그리고 흙으로 피를 덮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생명을 상징하는 피는 먹어선 안되고 피를 빼내 땅에 흘려 흙으로 덮으라 명하셨기 때문이다. 흥에 겨워 돌아오는 길에 요아킴은 바위 위에 죽은 산양 한 마리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병들어 죽었거나 독사에 물려 죽었을 것이다. 고기를 덤으로 얻게 된 행운일 수 있으나 요아킴은 그 산양의 사체를 두고 산을 내려왔다. 율법에서 자연사한 짐승이나 들짐승에 찢겨 죽은 짐승은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기 때문이다.
 
피를 금지하는 레위기 17장

요아킴이 말한 율법들은 레위기 17장에 집약되어 있다. 여기에서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첫째, 17장에서 화목제 규례가 추가로 주어지는데(3~9절) 뒤이어 느닷없이 ‘피’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왜 화목제에 관한 문맥에서 ‘피’에 관해 설명하는 것일까? 둘째, ‘일반 도살’의 문제다. 레위기에서 화목제라는 제의 도살 후 평민들이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된다. 그렇다면 과연 가축을 제단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잡아먹는 일반 도살이 가능했는가? 17장의 규정은 언뜻 그런 일반 도살을 금지하는 것으로 보인다(2~6절).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위기 17장은 궁극적으로 11절의 의미와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쓰였다. 이 장에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법들이 일관성 없이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17장의 전체 구조와 관찰되는 법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a. 합법적인 화목제 도살(1~7절)
b. 합법적인 제의적 도살(8~9절)
c. 피의 의미와 기능(10~12절)
d. 사냥한 짐승의 섭취 방법(13~14절)
e. 스스로 죽은 짐승의 섭취 금지(15~16절)

이 법들은 서로 무관한 듯 보이지만 실은 피의 문제와 서로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피 섭취를 금지하는 10~12절이 17장의 중심에 놓여 있으며 다른 법들이 대칭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첫 번째 법(1~7절)은 이스라엘 백성은 진영 안이든 밖이든(들판에서) ‘염소 신’에게 화목제로 바치기 위해 가축을 도살해선 안 된다는 규정이다. 두 번째 법(8~9절)은 이스라엘인과 이방인 모두 하나님의 성소가 아닌 곳에서 번제와 다른 제사들을 드리지 말아야한다는 규정이다. 여기서 3~4절은 모든 짐승의 도축은 반드시 성소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고대로부터 랍비들은 오랫동안 이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 사냥한 짐승의 고기는 허용되지만 가축의 일반 도살은 레위기에서 전면 금지된 것인가 하는 쟁점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두 갈래로 나뉜다. 레위기 후대 저작을 따르는 대다수 학자들은 신명기에서는 일반 도살이 허용되었는데 후대의 레위기 법이 이것을 금지하고 고기를 먹기 위한 모든 도축을 성소로 제한했다고 주장한다. 즉 레위기 법에서는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언제나 짐승을 성소에 끌고 온 뒤 화목제로 도살해서 드려야 한다. 이 견해는 각 사람의 성읍 내에서(아마 들판에서도)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땅에 흘려 흙으로 덮은 뒤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일반 도살법(신명기 12장)과 정면으로 대치되며, 역사서에 기록된 합법적으로 짐승을 잡아먹는 일화와도 모순된다(예, 삼상 14:31~35). 그들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처음에, 그리고 원래는 세속에서 일반 도살이 허용되었으나(신명기), 포로기 이후에 제사장 그룹들이 제의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레위기의 편집과 새로운 법들의 창안) 금지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다른 설명들이 가능하다. 보수적 입장의 학자들은 환경 변화로 인해 법이 개정되었다고 본다. 레위기 17장의 법은 성막이 매우 근접해 있던 광야를 배경으로 주어진 반면, 신명기 12장의 법은 가나안 땅 중앙에 놓인 성전과 멀리 떨어져 있던 성읍을 배경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가능한 견해 중 하나다. 그러나 광야 시절에도 고기를 먹을 때마다 성소에서 잡았다는 생각은 적절치 않다. 집에서 기른 비둘기는 그런 제한이 없다. 또한 제단에 올릴 수 없는 흠을 가진 짐승은 버렸을까? 그런 짐승은 집에서 얼마든지 잡아서 먹었을 것이다. 또한 들짐승의 사냥은 허용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가축의 일반 도살이 광야에서도 가능했다는 결론이다. 그러므로 3~9절은 번제나 화목제, 특히 화목제를 드리려고 사적인 제단이나 불법적 성소로 달려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일반 도살은 그와 별개로 당연히 전제되고 있다. 

피의 의미와 기능, 그리고 피 섭취의 금지(10~12절) 

세 번째 법은 피에 대한 규례다. 여기서 왜 피에 대한 경고와 교훈이 화목제에 관한 문맥에서 갑자기 나타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특히 11절에서 피가 생명이라는 진술과 더불어 피의 속죄 기능이 설명된다. 왜 피의 의미와 기능이 이때 진술된 것일까? 분명 4절에 비추어볼 때 1~9절의 합법적 제사에 대한 법은 피가 어떤 제단에 돌려지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3~7절이 오직 화목제 문제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아마도 고기가 주요 목적 중 하나였던 화목제는 가장 사적인 성격이 강해 피를 잘못 취급할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그런 위험은 다른 제사에서도 물론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8~9절에서는 “번제와 제물을 드리되”라는 말로 다른 제사들을 포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경고의 강조점은 3~7절의 화목제에 놓여 있다. 10, 14절의 경고대로 이때 자칫하면 피를 제대로 쏟지 않고 고기를 먹을 위험이 컸다. 또한 7절이 암시하듯이 짐승을 가지고 사적인 제단이나 불법적인 우상의 제단으로 향할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 피를 더 이상 그런 개인 제단이나 우상의 제단에 뿌려선 안 된다. 결론적으로 화목제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제물로 드린 고기를 나누어 먹는 것이었던 만큼 피를 다룰 때 실수하기 가장 쉬운 제사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화목제에서 피와 관련된 잘못이나 범법 행위가 자행될 가능성이 가장 컸으므로 피 취급방식을 엄중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0~12절을 보면 피의 의미와 기능을 설명하는 11절을 중심으로 10절과 12절에는 피를 먹지 말라는 경고가 주어진다. 전체적인 흐름상 10절은 앞의 희생 짐승들과 관련된 피의 섭취 금지와, 그리고 12절은 이어지는 사냥한 짐승과 자연사한 짐승의 피 섭취 금지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냥한 짐승의 피와 자연사한 짐승의 고기 섭취 금지(13~16절)

정결한 야생 동물의 사냥이 허용되어 네발짐승뿐 아니라 새도 사냥할 수 있었는데 이때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먹기 전에 그 피를 모두 땅에 쏟은 뒤 흙으로 덮어야 했다. 여기서 피가 남아있는 고기를 피 채 먹지 말라는 경고가 다시 한 번 주어진다(13~14절). 사냥한 짐승의 섭취는 가축의 일반 도살이 오래전부터 허용된 관행이라는 분명한 암시다. 아마도 짐승을 사냥했을 때 고기를 피가 있는 채로 먹게 될 확률이 가장 높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15~16절은 도살된 짐승이 아닌 스스로 죽은 짐승이나 찢겨 죽은 짐승의 섭취를 금지한다. 이러한 짐승과 접촉한 자 역시 부정결해졌다는 점에서 이 규정은 마치 짐승의 사체와의 접촉을 금하라는 경고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피의 문제가 초점이 된다. 이러한 짐승들의 사체에는 모두 피가 남아있으므로 결국 이런 짐승의 사체를 먹는다면 고기와 더불어 피를 먹는 셈이다. 요약하자면 레위기 17장의 법들은 모두 피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 장은 피의 의미와 기능을 설명하면서 피의 섭취를 금지하는 10~12절을 중심으로 피 문제로 실수하지 않도록 짐승의 불법적인 제의 도살을 금지하고,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먹기 전에 반드시 피를 쏟아내도록 하며, 스스로 죽은 짐승의 고기에는 여전히 피가 남아있으니 섭취하지 않도록 한다.

피는 곧 생명, 생명을 속하는 피 (11절)

11절을 제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육체의 생명은 그 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너희를 위해 제단에 주었는데, 이는 너희 생명을 속죄하기 위함이다. 이는 그 피가 그 생명으로 대속하기 때문이다.” 11절은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피의 기능을 알려주는 대목인 만큼 매우 중요하다. 이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에 의하면 피에 관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세 가지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1) 짐승의 피는 생명이다 2) 피는 제단에 귀속된다 3) 피가 대속을 한다. 여기서 이 세 명제의 적용 범위는 뒤로 갈수록 좁아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첫 번째 명제는 모든 짐승의 피에 해당되며 사냥감도 예외는 아니므로 사냥한 짐승의 피 역시 절대 먹어선 안 된다. 두 번째 명제는 그 범위가 희생 짐승으로 좁혀진다. 즉 희생으로 바쳐지는 짐승의 피는 결코 불법적 제단이나 다른 곳에서 임의대로 처리되어선 안 되고, 반드시 제단으로 돌려져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렇게 바쳐진 어떤 희생짐승의 피는 대속의 효과를 불러온다. 여기서 많은 학자들은 11절에서 제시된 피의 의미와 기능은 모든 희생 짐승에 적용된다고 본다. 일단 피의 기능과는 별개로 피의 의미, 즉 피는 곧 생명이므로 제단에 돌려져야한다는 원칙은 화목제 짐승을 포함한 모든 희생 제물에 적용된다. 나아가 희생 짐승을 포함한 모든 짐승의 피는 곧 그것의 생명과 같은 것으로 간주된다(14절). 따라서 모든 짐승의 피가 곧 그것의 생명이라는 것이 모든 짐승의 피가 인간 생명을 위해 대속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기능은 대속의 희생 짐승들에 제한되는 것이다.

결국 피의 대속 기능은 대속의 제사인 속죄제와 속건제를 포함하여 아마도 인간의 기본적 죄성을 속죄하는 번제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목제는 결코 죄 때문에 드리는 제사가 아닌 축제와 잔치의 제사였기에 대속의 기능이 있었는지 매우 의심스러우며 구약 전반에 그런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에서의 피의 문제

구약은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먹지 말도록 한다. 그러나 피 섭취의 금지는 신약에서도 항구적으로 계승되는 규정인가? 사도행전 15장 20절과 29절에서 예루살렘 공의회는 교회 내의 유대파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발생한 율법 준수 논쟁에서 잠정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금지령을 내렸다. 1) 우상의 더러운 것(제물) 2) 피 3) 목매어 죽인 것 4) 음행. 음행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먹는 것과 관계가 있다. 우상에 바쳐진 음식과 피가 금지됨은 물론 목매어 죽인 것 역시 그 고기 안에 피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피 금지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도행전 15장에서 정한대로 피는 영구적으로 금지되었다면서 선지 해장국을 먹지 않는다. 우선 음행의 금지는 본질에 관한 규례이자 신약으로 이어지는 불변의 도덕법이다. 그러나 먹는 것은 외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더 이상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교훈하셨다(막 7:14~23). 바울 또한 이 정신을 이어받아 신자들은 원칙적으로 이제 모든 음식으로부터 자유하다고 선포한다(롬 14:15; 고전 10:25~26). 바울은 심지어 우상의 제물마저도 알고 먹는 것은 주의해야 하나 시장에서 모르고 사서 먹을 경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음식은 이제 무엇이든 스스로 속된 것은 없으되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 속된 것일 뿐이다(롬 14:14). 만물이 다 깨끗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 악할 뿐이다(롬 14:20).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모두 선하며 단지 감사함으로 받으며 버릴 것이 없다(딤전 4:3~4). 필자는 피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피의 대속을 완성한 이상 짐승의 피에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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