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째 마당: 희망, 얼마든지 걸어라(전도서 11:9~12:8)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지혜, 이 지혜로 채비를 갖춘 신자는 이제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으로 불러도 좋다. 이러한 신자라면 언제든지 자기 인생의 순간들 전부를 푸르른 청년의 날처럼 기뻐하며 용감하게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지혜를 지닌 신자라면 여기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희망을 걸만하다는 것이 거듭거듭 확인됐다. 다만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넘어서지만 않도록 경계한다면 말이다(11:9). 이제 하나님과 그분의 위대하신 섭리를 굳게 믿으니 여기 이 세
여섯째 마당 : 듣지 않는 법칙(전도서 8:9~13) 도전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박해하고도 평화롭게 살다가 죽고, 그 악행이 문제되지 않은 채 슬그머니 덮이고 잊히는 일이 세상엔 많다. 성실하고 선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억울하고 허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세상사는 그렇게 돌아가는 법이다. 인과응보, 상선벌악의 법칙이 꼭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악인들이 더욱 용기백배하여 악을 행하게 된다. 심지어 악인이 선인보다 더욱 번성하고 장수하는 모순도 흔히 일어난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 법이다(8:9~1
넷째 마당: 인간, 공동(空洞)의 부르짖음(전도서 6:1~7:14) 도전 재물, 부요, 존귀, 자녀, 그리고 장수... 인간은 행복의 조건들을 부족함 없이 누리더라도 결코 그것들만 가지고는 만족한 마음으로 살고 죽을 수 없다. 존재의 질문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냐’라는 철학적 질문 앞에 솔직하게 서면, 그래서 그 질문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면, 결국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현실에 절망하게 된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지 않은가”하고 한탄하게 된다(6:1~6.).
사람의 생애는 울음으로 시작해서 통곡으로 끝난다. 인생의 여정 또한 슬픔과 억울함의 탄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전도서조차 허무로 시작해서 허무로 마친다. 문제는 ‘인생은 허무하고 무상하다’라는 전도서의 선언이 모세처럼, 고라의 자손들처럼, 그리고 야곱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의 생애에도 해당되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여기에서 궁극적으로 몇 개의 질문이 제기된다. 진정 해 아래 이 세상은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인가? 그리스도인에게도 현세는 무의미하고 허무한 것인가? 우리는 그저 현실을 체념하고 내세만 의지하며, 이 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