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S 선교사로 사역했던 황복만 목사가 3월 11일 오후 1시경 소천했다.고인은 서울 창성교회(함성익 목사) 파송 선교사로 캐나다에서 걸인과 노숙인 밥퍼 사역을 감당했다. 유족으로는 고영순 사모와 아들 은택 씨, 딸 경희 신혜 선혜 씨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렀으며, 3월 13일 발인돼 청주시 목련공원(용인공원묘원)에 안장됐다.
춘파 홍덕선 장로(목동중앙교회 원로)가 2월 28일 오전 4시 소천했다. 향년 79세.고 홍덕선 장로는 1965년 원곡 김기승 선생을 만나 수제자가 됐으며, 1975년에 처음으로 국전에 입선했다. 1980년 인사동 예총화랑에서 제1회 서예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원곡 서예상, 기독교문화대상, 원곡 혜촌상, 대한민국기독교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미술인선교회 초대회장과 한국기독교서예협회 회장을 역임했다.유족으로는 아내 안순복 여사와 아들 승완, 딸 승경 승란 씨가 있다.빈소는 인천 청기와장례식장(계양점
푸틴의 정적이라 불리던 알렉세이 나발니가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 일부 언론과 정부는 그의 소식을 잠재우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제하고 있다.그는 러시아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2017년 미상의 가해자에게 녹색 액체를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됐고, 2020년에는 독극물 테러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지는 등 생사가 오가는 고난을 겪었다.2020년 나발니는 독일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곳에서 스스로 살 기회를 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당시 그가 내뱉은 말은 기자의 머릿속에 아직도 선명하다.
낙원제일교회 최병현 원로 목사가 9월 25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향년 만 72세.최병현 목사는 1951년 6월 29일 충남 서산에서 출생해, 총신 77회 졸업 후 1979년 경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77년 전도사 시절 인천중앙교회(현재 낙원제일교회)를 개척해 46년간 성도들과 동고동락했다. 특히 교회 예산의 30%를 선교에 사용해 주파송 선교사 20여 가정을 파송하고 100여 개 농어촌 미래자립교회를 도와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7개의 지교회를 개척하는 등 선교 사역에 전념했다. 지난해 1월 15일 원로목사로 추대
증경총회장 김도빈 목사가 9월 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김도빈 목사는 1933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해, 1950년 엘머 보이어(한국명 보이열)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으며 신앙에 입문했다. 총신 58회 졸업 후 전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1970년 정읍성광교회 제3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33년 동안 시무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됐다.고인은 총회교육부장과 선교부장을 거쳐 제84회 총회장을 지내며 총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북장로교회연합회 대표회장, 총신신학대학원 총동창회장, 전북신학교 학장
TV나 온라인 뉴스를 통해 접한 공인·연예인의 극단적 선택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때가 있다.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이가 교인이거나 그의 가족이라면, 더더욱 곤혹스럽고 막막하다.현재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이의 수가 연간 1만 3천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 인구를 전체 인구의 15%로만 잡아도 매년 1900여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해마다 중대형교회 하나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이만큼 자살은 더 이상 한국교회와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교회 내 자살로 인한 장례가 발생하면 교회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107회기 총회 정기감사를 8월 7일부터 11일까지 5일간 진행한다. 7월 11일 총회회관에서 전체회의로 모인 감사부(부장:김경환 장로)는 정기감사 일정을 확정하고, 특별감사 두 건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감사부는 107회기 총회 정기감사 일정을 8월 7~11일로 정했다. 감사대상은 총회본부와 기관 및 속회, 산하 기관인 총신대학교, 기독신문, GMS다. 감사부는 정기감사에 투입할 여섯 개 팀을 구성하고, 각 팀이 감사할 기관 배정은 임원회에 일임했다.감사부는 현재 권순웅 총회장의 지시로 GMS 의료보험 리베이트 의혹과 기독신문 전 경
탄자니아 이영권 선교사(GMS)가 교통사고로 소천했다. 향년 69세.고 이영권 선교사는 1993년 7월 18일 파송받았으며, 파송교회는 창신교회(유상섭 목사)다. 유족으로는 사모 고성복 선교사, 자녀 요셉(42세), 요엘(40세) 씨가 있다. 장례는 현지에서 절차에 따라 진행될 예정이다.(후원계좌:하나은행 010-04-06387-206 GMS 이영권/고성복, 연락처:010-9892-1475)
탄자니아 김지연 선교사(GMS)가 코로나19와 지병으로 투병 중 대전 을지병원 응급실에서 1월 8일 오후 6시 15분 소천했다. 향년 67세.고 김지연 선교사는 1991년 7월 28일 파송받았으며, 파송교회는 부산 운화교회(이현국 목사)다. 유족으로는 남편 이진섭 선교사, 자녀 이삭(41세), 정한(39세), 규한(37세) 씨가 있다. 빈소는 대전 을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돼 있으며,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다.GMS가 1월 10일 오후 2시 위로예배와 12일 오전 9시 발인예배를 주관하기로 했다. 파송교회인 운화
국내 주요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가 22일 사망했다. 향년 84세.성락교회 장례위원회는 22일 저녁 김기동 원로감독 부고 안내문을 통해 “성락교회 설립자이신 김기동 원로감독이 노환으로 소천했다”고 밝혔다.비성경적 귀신론을 주창한 김기동 목사는 소속 교단이었던 기독교한국침례회를 비롯해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등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지목받았다.또 김기동 목사는 지난 2017년 100억원대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기도 했다.
조선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격의 없이 친구가 되어준 ‘오목사’조약도에 들어갔다. 117년 된 교회가 눈앞에 들어왔다. 약산제일교회이다. 완도 조약도의 옛 이름은 약산도이다. 조약도의 산에서 나오는 129종의 풀들이 약초가 된다하여 약산도(藥山島)라 불렀고, 그 풀을 먹고 자란 흑염소가 보약이 된다고 하여 약산 흑염소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완도 약산제일교회(옛 관산리교회)는 1904년 오웬 선교사(Clement Carrington Owen· 1867~1952)의 전도인 노학구에 의해 복음이 처음 전파되고, 1905년 오웬이 직
장로부총회장 노병선 장로의 부친 노원준 님이 4월 29일 별세했다. 향년 91세.장례식장은 충남 공주시 공주장례식장 102호실에 마련됐으며, 5월 2일 오전 7시 발인한다. 장지는 공주나래원. 유족으로는 아들 병순 병선 병석 씨, 딸 순옥 순화 순덕 씨가 있다.(장례식장:041-854-1122)
순교자 묘지는 퇴락했어도 그 정신 여전히 살아임금산을 오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잘 닦인 길은커녕 허술한 진입로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가파른 풀숲을 일행들 전원이 헉헉거리면서 올라간다.비탈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봉분들이 놓여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 산을 인근에 살던 경북 청도 사람들은 월봉산이라고도 부르며 공동묘지로 사용해왔다. 우리는 그 속에 숨어있는 묘소 하나를 찾아야 한다.앞장서 걷던 향토문화운동가 김진태 장로(부산 다대중앙교회)의 발길이 멈춘다. 그리고 “여기입니다”라며 그가 가리키
희생과 헌신 순교신앙이 잠잠하던 교회들의 동력을 일깨우다■두 젊은이 희생 딛고 일어선 독천교회독천교회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기 전에 있던 자리는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월창마을이었다. 1930년 미국남장로교 소속 조하파 선교사가 세운 독천교회는 해방 후 온 힘을 모아 월창마을에 목조예배당을 건축했다. 하지만 예배당은 짓고 나서 불과 2년도 채 버티지 못했다. 6·25 발발 후 영암까지 밀고 내려온 인민군들이 예배당에 석유를 붓고 불을 지르는 폭거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가 잃은 건 비단 건물만이 아니었다.더 소중한 젊은 생명
“코로나로 모든 것이 멈췄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 지난 2016년 뉴욕 타임스퀘어에 복음광고를 선보여 화제가 된 복음의전함이 전도가 어려운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의 복음 전파 사명의 도우미를 자처했다.복음의전함(이사장:고정민)이 오는 12월 온라인 전도 플랫폼 의 문을 연다. 올해 초부터 준비 및 구축 과정을 거쳐 비기독교인들이 편하게 접촉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명칭은 ‘기독교, 교회에 궁금했던 불편했던 이야기 더 알고 싶은 이야기를 그냥 한 번 들어보는 곳’이라는 콘셉트에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