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만이 우리의 기쁨 … 은혜와 사랑 흠모하는 ‘경건의 비밀’ 지녀야찬양: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셔서 영혼과 육체의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은 그들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호흡이 있는 한 여호와를 찬양토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창 1:27; 2:7; 신 6:5; 시 150:6).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그 엄위와 권능과 영광이 완전하시다.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을 받고자 하시는가? 그것은 우리를 통
무조건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이자 상속자가 돼그리스도 안에서 무조건적 선택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당시 로마 교황청에서 발행하던 면죄부가 부당함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이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하려 했다. 루터의 요지는 죄에 대한 값을 이미 그리스도 예수가 모두 치렀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값을 치를 필요가 없고, 치를 수도 없다는데 있었다. 이 사상은 그의 저술 에 일목요연하게 전개되어 있다.이 저술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헤아릴 수 없는 능력과 자유는
중보자 그리스도는 단번에 구원의 의를 이루시고 성도에 전가하기 위해 지금도 중보 하신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삼위일체론, 기독론과 더불어 삼대 교리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이신칭의 교리가 체계적으로 수립되어 갔다. 루터는 본 교리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천명하면서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다. 칼빈은 다음 세 가지를 들어 이를 신학적으로 정리하였다. 첫째, 그리스도의 의 외에 다른 구원의 의는 없다. 둘째, 그리스도의 의는 값없이 전가(轉嫁)된다. 즉, 거저 성도의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는 오직 믿음으로
전적인 은혜의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은 아무 공로 없으나 소망과 함께 하며 사랑으로 역사한다■ 믿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이신칭의(以信稱義), 이를 루터는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근본조항이라고 주장하였고, 칼빈은 구원의 문이 돌아가는 중심축이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무엇인가? 칼빈은 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굳고 확실한 지식이다. 이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신 약속의 진리에 기초하는 것으로
‘오직 성경으로’는 종교개혁 근본사상 포괄 …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입술, 마음에 있다종교개혁의 근본사상: 다섯 가지의 “오직” 종교개혁은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라는 구호에서 점화됐다. 하박국 2장 4절에서 인용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는 말씀이 그 근간이 됐다. 이로써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이 공표됐다(히 11:6).‘오직 믿음’은 교회의 전통이나 의식(儀式)이나 교황이나 사제의 어록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을
성경의 가르침 자기의 질문에 한정시킨 루터 … 칼빈은 성경이 묻고 성경이 답하게 하였다 1517년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95개조 반박문 게시를 기점으로 삼아 오는 10월 31일로 종교개혁 500주년이 된다. 종교개혁은 단지 종교의 개혁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교권(敎權)과 속권(俗權)이 엄밀하게 분리되지 않았던 중세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교회와 국가의 황금률적 분할을 추구했던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일대 전기(轉機)를 마련했다.루터의 ‘자기’ 개혁루터가 비텐베르크(Wittenb
‘무명의 개혁파’로 불린 이들, ‘오직 성경’을 지키며 진리 위한 저항과 개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지난 기고에서 개혁파의 뿌리는 16세기가 아니라 초대교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개혁신앙의 중심에 있던 왈도파를 언급했다. 16세기 개혁신학을 이끌었던 대부분의 초기 선배들은 잠정적으로 왈도파이든지 아니면 그와 유사한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다.개혁의 징검다리, 왈도파 ‘왈도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무명의 개혁파로 활동하고 있다가 피에르 왈도가 등장하면서 편의상 왈도파로 불렸다. 피에르 왈도는
정통과 이단이 뒤바뀐 시대 … 개혁신학 바탕 ‘왈도파’, ‘가톨릭은 거짓’ 클라우디오 이단으로 정죄당해 종교개혁 500주년 특별기획 제1장 5편의 글을 통해 개혁의 여명기부터 20세기 개혁신학의 흐름을 개괄했다. 또한 주요 종교개혁자들의 사역을 살펴보고, 그 사역들이 교회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세계사를 변화시켰음을 확인했다.특히 1장에서 역사는 루터의 를 종교개혁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지만, 진리를 추구했던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흐름은 ‘한 지점과 한 인물’을 넘어선다는 것도 확인했다.
종교개혁은 잘못된 교권과 지적 압박으로부터 해방 … 칼빈의 ‘총체적 개혁운동’ 동력 되찾아야 중세는 로마가톨릭이 단일 종교로서 모든 사람의 사상과 삶을 지배하고 있던 시대이다. 이 때문에 ‘종교 개혁’의 파장은 단순히 교회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손봉호 교수는 모든 사람의 사상과 삶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가톨릭의 개혁은 곧 사회 전반의 개혁이라고 설명했다.“중세시대 교회와 그 신학의 권위에 감히 도전할 용기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칼빈과 루터가 가톨릭의 오류를 이론적으로 파헤친 것은 교권에 억눌려 있던 지식인들에게 용기와
성림교회, 태국 낙후지역 결손가정 아동과 진심 어린 결연 사역비전 키우며 달라지는 아이들, “손자손녀 생겼다” 기쁨의 섬김“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예뻐요. 교회 벽에 걸려 있는 사진 볼 때마다 기도하고 쓰다듬고 했는데 이렇게 만나니까 정말 좋네요. 오길 잘했어요. 온 보람이 있어요.”태국 야소톤에서 단발머리 소녀 모리아(9)를 만난 성림교회 라정자 권사는 마주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한국에서 모리아를 후원하기로 결정한 날부터 이제나저제나 만날 때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태국 방콕에서 국내선으로 1시간, 또 육로를 한참 거쳐야 하는
새에덴교회, 미국 휴스턴서 ‘한국전쟁 참전용사 보은행사’6월 17일 오전 10시 30분, 휴스턴 베어크리파크에 위치한 전쟁기념탑에서 뜻깊은 헌화식이 진행됐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묵념이 시작되자 5명의 병사가 앉아쏴 자세로 동시에 하늘을 향해 조포(弔砲)를 쏘았다. “3만 6000여 명의 전사자와 10만 명이 넘는 실종자와 부상자,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에 도움을 주는 나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추념사를 낭독하는
가난 대물림 막고 차세대 지도자 양육위해 지속적 전인 교육 진행지역 교회들과 전략적 협력, 영적 은혜 나누며 건강한 변화 이끌어비포장 길에서 내려 다시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들길을 걸어 들어가야 세라니(Rose mai Seranea·17)의 집이 보였다.나무와 양철로 얼기설긴 만든 작은 집에서 세라니는 부모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근처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날씨가 궂을 때는 산에 올라가 열매를 구했다. 그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지금은 결혼을 해 따로 살고 있는 세라니의 오빠를 포함해 네 식구가 먹고
‘상생의 파트너’ 후원교회 절대적 협력 바탕, 유기적이며 효율적 복음화·구제 사역 함께 일궈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나라, 학대와 무관심으로 눈물 흘리는 아이들에게 많은 단체들이 손길을 내민다. 물품을 보내기도 하고, 학생들을 교육을 시키거나 지역개발사업을 진행하는 등 그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이 가운데 단순한 물질지원에 앞서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심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있다.바로 ‘떡과 복음을 함께 보내는’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유원식)이다. 물질로 인한 일시적인 회복은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에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유럽서 사라진 개혁신학 활동, 치열한 내부논쟁에 분열 이어져 … 흔들리는 정체성, 회복 과제 막중 지난 3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통해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개혁의 흐름과 1517년 마르틴 루터로 촉발된 종교개혁, 그리고 16~17세기 프랑스 스위스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 유럽의 종교개혁 시대를 되짚었다.또한 이 역사 속에서 마르틴 루터와 다른 개혁파의 흐름도 주목했다. 스위스에서 츠빙글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개혁의 몸부림, 프랑스에서 기욤 브리소넷, 쟈크 르페브르 데타블 그리고 기욤 파렐 등의 교회개혁 노력
1523년 첫 순교자 이후 개혁신앙은 순교와 동행 … 녹스의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 새 지평 열어 개혁의 불길이 유럽 전역으로 번져가는 시기, 1529년 10월 마르부르크에서 루터와 츠빙글리가 성례 문제로 얼굴을 마주했다. 두 사람은 15가지 조항 중 14항에 합의를 하고 나머지 1조항에 대한 견해도 거의 일치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종교개혁에 공감했던 개혁자들이 이견을 극복하지 못하는 순간이었다. 이 간극은 이후 루터의 후계자들(루터파)과 츠빙글리의 후계자들(개혁파)의 반목을 넘어 박해 수준까지 나아갔다.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