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총회는 2005년부터 19년 연속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해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50차 유엔총회에서도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내용의 북한인권 결의안이 표결 없이 만장일치(consensus, 전원 동의)로 채택됐다.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한 결의를 표결을 거치지 않고 만장일치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은 의장의 제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회원국이 없는 경우 합의된 것으로 간주하는 의사결정 방법이다.이 결의안 중에서 다뤄진 주요 사안 중의 하나는 작년 10월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 사건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인해 나라의 주권만 빼앗긴 것이 아니었다. 경제, 사회, 문화, 인간의 존엄성, 신체 및 언론과 집회의 자유, 40%의 아름다운 국토와 황금물결의 들녘 등 거의 모든 것을 침탈당했다. 심지어 일제는 한민족의 정신을 박탈하고, ‘포교규칙’ 등으로 기독교를 박해했다. 눈물로 얼룩진 절망의 시대, 한국교회는 십자가 복음으로 소망을 제시했으며, 눈물을 훔치며 살아가던 동족을 가슴에 안고 고난의 언덕을 함께 넘어갔다. 말씀에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파하면서도 교파가 연합해 구국기도회를 했으며, 교회 절기에 십자
나는 총신신대원을 입학하면서부터 교회 개척을 생각하고 있었다. 중증장애인이기에 일반 교회에서 사역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대원 3학년 때쯤인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이자 장애인인 임일주 씨가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물었다. “형 신학교 졸업하면 형이 교회 세우면 안 돼요?” “내가 교회를 세워도 되지.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해요?”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는 당시 집 근처 조금 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초심자였다. 그도 중증장애인이기에 엘리베이터 시설이 잘돼 있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이
우리나라 헌법은 공식적으로 1948년 제정됐다. 그날 7월 17일을 제헌절이라는 국가경축일로 지키고 있다. 그렇게 제정된 헌법은 아홉 번에 걸쳐 일부 또는 전문 개정 등의 수정 과정을 거쳐왔다. 70년 남짓한 역사에서 아홉 번이나 개정된 것은 결단코 적은 것이 아니다. 거의 혁명하다시피 개정되기도 하고, 그런 헌법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퇴보하기도 했으나, 국민적 저항으로 현재의 헌법을 갖게 된 것이다.법, 그것도 모든 법의 근원이랄 수 있는 헌법이 자주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한 사회가 아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교단의 헌법도 여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일까? 미국 하버드대학의 교훈은 라틴어 베리타스(Veritas), 즉 진리다. 하버드만은 아니다. 명문 대학 대부분이 내거는 가치가 진리다. 미국 건국과 함께 세워진 대학은 진리 추구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진리란 예수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버드는 돈과 권력에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학문의 전당으로 인류사회 진보에 크게 기여했어야만 했다.그런데 신은정 다큐멘터리 감독이 (시대의창)이란 책에서 ‘진리보다는 돈과 권력을 좇느라 여념이 없었던 하버드’
깡통전세, 전세사기 피해 사례가 전국 각지 급증 추세다. 작년 한 해 인천 미추홀구를 비롯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피해가 도드라졌다면, 작년 하반기부터는 대전과 부산 등으로까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지난 1월 국토교통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피해자신청위원회’에 접수된 전세사기 피해 사례는 1만3384건이었고, 이 중 20~30대 비율은 72.96%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사회초년생 청년층 1인 가구에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특별법과 같은 정부 대책을 비롯해 지자체의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고는 있으나, 워
우리 교단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한 가지가 성남시 분당에 있는 한국칼빈주의연구원이다. 한국칼빈주의연구원은 1985년 설립된 이래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하에 칼빈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칼빈박물관은 교부 시대부터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기까지를 망라한 수많은 기독교 유물들이 있어 유명하다.칼빈박물관 자료는 칼빈주의연구원 원장 정성구 박사가 일평생 홀로 수집하고 정리한 것이다. 정 박사는 이 자료들을 전 세계를 다니면서 모았고, 수십 년 동안 칼빈박물관에 잘 보존해 후세
교단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식이 있었고 일정기간 수학하고 과정을 수료한 분들이 졸업장을 받고 목회현장으로 나갔다. 오래 전에 동일한 과정을 거친 후 목회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귀한 후배들에게 조심스런 말을 전해보고자 한다.안개가 자욱한 구간을 운전하는 사람처럼 목회현장을 살피는 졸업생들도 조심스레 그 현장을 살펴야 할 것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간 신앙의 선배들을 만난다면 그들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헌신과 열정을 배우며 자기를 내려놓고 교회를 섬기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함에 따라 대학 신입생 비율이 급격하게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기독교대학과 지방 소재 대학 등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대학들이 다양한 사회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현재 정부의 대학재정 지원사업은 대상 선정부터 대학 규모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 결과 소규모 대학은 제한된 자원 범위 내에서 중·대규모 대학들과 경쟁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특히 소규모 대학들은 예를 들어 기독교 이념 실현과 같은 최초 설립 목적에 따른 고유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증대되고 있다. 일부 대학들은 교육부의
오늘날 인류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는 창조질서의 위기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의 기후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냐고 물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간의 욕망’ 때문이라고.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낸다는 이유로 거대한 예배당을 지어 올리고, 그곳을 화려한 조명으로 밝히고, 여름이면 차가운 바람을 겨울이면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종이컵 등 일회용품들을 소비하기에 망설임이 없다.그래도 최근 기후위기를 타개하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나는 매주 성도가 1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교회의 목사에 불과한데 목회 칼럼을 쓰자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부족하지만, 이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힘을 얻는 목회자나 성도가 있다면 감사할 것 같아서 마음을 잡고 글을 쓴다.먼저 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사지마비 중증장애인이다. 전혀 일어나 걷지 못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며, 팔도 쓸 수 없어 혼자서는 밥을 먹지도 못한다. 세수도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한다. 물론 연필을 잡고 글을 쓸 수도 없다. 책을 넘길 수도 없어서 항상 누가 책을 넘겨줘야
북한의 실권자가 공식석상에서 통일 불가론을 언급했다는 소식이 새해벽두 주요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지난 연말 북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남북한의 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고, ‘대한민국과는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말도 했다는 내용이다.사실 지난 수 년 동안의 한반도 정세를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발언도 아니다. 남북한 정부 모두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켜왔던 게 사실이기에.평화를 조성하기 위한 완충 장치들은 하나둘씩 해제됐고, 대화와 타협의 여지조차 남겨두
최근 한국리서치의 ‘종교 경전에 대한 인식’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들은 다른 종교인들에 비해 성경에 대한 높은 신뢰와 헌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 경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탐색한 이 조사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골고루 섞어서 실시됐고, 종교인 중에서도 개신교, 천주교, 불교를 골고루 배분하였다. 그러나 종교 경전의 개인적인 영향과 사회적인 영향을 묻는 첫 번째 질문을 제외하면, 경전의 성격(“인간의 창작물이나 역사적 기록물? 신의 가르침?”), 경전의 해석(“개인의 신념이나 시대에 따라 종교 경전의
설날을 앞두고 자녀들을 돌아보니 내가 새삼스럽게 아버지임을 느꼈다. 연습도, 공부도 해 본 적이 없이 어쩌다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니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해왔을까를 생각하면서 미소만 지을 수 없었다. 이미 장성한 아이들, 결혼해 가정을 꾸리거나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대해 열심인 그들을 보면서, 난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며 고민에도 빠져 보았다.그렇다. 난 아버지다.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 앉히셨다. 거부할 수도 없는 부르심이었다. 주님 탓하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그러기에 더 신중하고 기도하고 노력했
목회자에게 설교는 매우 중요한 사역이다. 현대 교회에서 심방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사역이 줄어들면서 목회에서 설교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다.그렇다면 설교에 있어서 중요하고도 변함없는 원칙은 무엇일까? 그것은 초기 교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 ‘오직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만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모습이 여전해 곳곳에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의 대부분은 성경이 말씀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성경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설교자는 시중에 흘러 다니는 말거리를 강단에 올리거나, 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