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여름의 가장 큰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물놀이이다. 숨 꼭 참고 다이빙을 하거나, 시원하게 물장구를 치다보면 무더위로 인한 짜증과 스트레스는 죄다 날아간다.울산대영교회(조운 목사)는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큰 즐거움을 매년 선사한다. 교회 앞마당에 놀이공원 수준의 거대 수영장과 미끄럼틀 등을 설치하고 온 동네 아이들을 초대해 ‘워터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의 큰 잔치를 마련한다.7월 28일부터 29일까지 이틀 동안 열린 올해 행사에는 약 1400명의 어린이들이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3년 동안 축제를 즐기지 못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가 8월 10일 동 교회에서 ‘스카우트 문화의 날, 사랑의교회가 함께 섬긴다’ 행사를 가졌다. 사랑의교회는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석 중이 4000여 명의 대원을 초청해 그들의 활동을 위해 공간을 제공하고 문화행사를 마련해 즐거움을 선사했다.잼버리 대원들은 교회에서 마련한 각 채플실로 흩어져 국가 모임을 진행했다. 또 각국 대원들이 서로 교제하며 배지를 교환하는 액티비티 시간을 가졌다. 교회는 대원들을 위해 다양한 특별공연을 마련했다. 극동방송 어린이합창단의 부채춤에는 대원들의 박수가,
시련이 그를 노숙자로 만들었다. IMF사태를 만나 사업이 크게 실패한 후 돌아갈 데를 찾지 못한 인생은 거리에 몸을 맡겨야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은 많았지만 답은 없었다.인천에서 처절한 좌절을 맛본 후 겨우겨우 자신을 추스르고 고향 정읍으로 내려왔다. 신앙의 길을 붙잡고 매일 같이 울며 기도하는 시간이 반년 넘게 이어졌다. 상한 속을 다 토해내고, 대신 믿음으로 채워나가자 다시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고 의욕이 생겼다.그런데 자꾸만 눈에 밟히는 존재들이 있었다. IMF사태
새로남교회(오정호 목사)가 7월 30일 주일 저녁 본당 글로리홀에서 북한선교를 위한 예배를 드리고,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연극 (유니블아트 극단새벽 공동제작)를 공연했다. 특별히 예배에서 오정호 목사와 성도들은 북한기독교총연합회 강철호 이사장에게 선교비 1억원을 헌금했다. 탈북 청소년들의 여름캠프를 위한 후원금도 전달했다. 오정호 목사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사랑으로 탈북 성도와 청소년을 보듬고 지원하게 되어 기쁘다. 이를 통해 한반도에 하루빨리 복음통일 이 이뤄지길 기도하며 노력하겠다"고
대전광역시 동구, 지하철 판암역 지척에 있는 판암장로교회는 전통적인 교회운영과 다음세대의 활기가 조화를 이룬 교회다. 영감 있는 예배를 통해 은혜를 공유하고 있으며 전도와 선교, 교육과 섬김의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1000여 명의 교세에 주일학교와 청년부가 250여 명에 달해 다음세대가 전 성도의 25%에 달하고 있다.1958년 설립한 판암장로교회는 성장을 거듭하다가 1970년 고 홍동표 목사가 부임한 후 새로운 부흥의 전기를 맞았다. 1979년 예배당을 건립하고 판암어린이선교원을 개교했으며 1990년에는 홍성현 김종성 유해석
배고픈 이에게는 먹을 것을, 전기와 수도가 끊어진 집에는 공과금을, 어린아이들에게는 웃음을, 영혼이 가난한 자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선물하는 일. 그 일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과 한 가정, 한 마을의 행복지킴이로 나선 교회가 있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에 위치한 신광교회(박성호 목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행복한 우리마을 만들기’ 나선 신광교회인천에서도 구도심에 속하는 인천 미추홀구는 노령인구가 많고, 최근에서야 재개발이 시작돼 상업지구와 주로 다세대주택으로 구성된 거주지가 뒤섞인 지역이다. 특히 2023년 초 인천 미추홀구는 ‘전
한대식 목사는 재주가 많은 인물이었다. 특히 음악적 재능이 특출해 여러 악기들을 연주할 줄 알았다. 한 목사가 동네에서 톱을 연주하는 날이면, 수많은 아이들이 모여들어 신기한 구경을 했다. 그 아이들을 모아 1963년 8월에 시작한 교회가 오늘날의 진주 도동교회가 됐다.처음부터 교회는 마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로부터 여러 세월이 흘렀지만 도동교회는 여전히 마을의 친구이다. 그것도 보통 친구가 아니라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60년 지기 절친이다.도동교회 대표적인 사역들은 ‘나’라는 글자를 공유하는 3개의 팀들에
강산이 열두 번 바뀌는 동안 농촌에서 1000명의 성도를 길러냈고, 30명의 목회자와 18명의 사모 그리고 6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했으며, 여섯 교회를 개척했다. 지금은 출석교인이 30~40명 수준이고, 평균연령은 78세에 이르렀지만 믿음의 자세는 여전히 바르고 착하다.설립 120주년을 맞은 부안 대수교회(이상욱 목사)의 어제와 오늘을 짧게 간추리면 대략 이러하다.1903년 부활절인 4월 12일, 미국남장로교 선교사 루이스 테이트(1862~1925)를 통해 복음을 전해 들은 오해근 이종효 최상열 등이 교회를 세우고 대성교회를 설립하며
130개의 나이테130년 전 승동교회의 첫 주일도 이렇게 화창했을까. 햇살 가득한 6월 18일 아침, 승동교회가 특별한 주일을 맞았다. 교회 설립 130주년을 기념하는 날, 교회를 찾은 교인들의 표정도 햇살만큼이나 밝다. 예배당으로 이어진 진입로에서 3·1 독립운동 기념터가 있는 마당까지, 교회의 역사와 교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백발의 어르신부터 아동들까지 사진 속 추억으로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곤당골교회’ 승동교회(최영태 목사·경기노회)가 교회 설립 130주년을 맞았다.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의 유산이라 해도 과언이
승동교회(최영태 목사)가 6월 18일 주일, 교회 설립 130주년을 맞았습니다.민족의 굴곡진 역사와 함께한, 한국교회사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승동교회의 기념 주일은 깊은 감사의 고백 속에 잔잔한 기쁨이 흘렀습니다. 130년 전 6월 19일, 첫 예배를 드린 승동교회는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믿음의 계승을 위한 노력을 온 성도가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설립기념주일과 사진 전시회로 시작한 승동교회의 130주년 기념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승동교회는 사진전에 이어 찬양제와 선교헌신 예배 등으로 130년의 감사를 이어갈 예정입니다.
지난 2006년, 한세영 목사가 워싱턴 메시야장로교회에 부임했을 때 고작 여덟 가정만 출석하고 있었다.메시야장로교회는 워싱턴 인근 최대 한인타운인 북버지니아 애난데일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연면적 680평의 제법 큰 예배당을 갖춘 매력적인 목회현장이다. 하지만 크고 작은 분란으로 담임목사가 연이어 교체됐고, 교인들도 거의 다 떠나갔다. 한세영 목사가 메시야장로교회의 청빙을 받고 고민할 때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고 한다.하지만 한세영 목사는 하나님이 험한 목회현장으로 보내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호남지역 최초의 교회인 전주서문교회(김석호 목사)가 설립 130주년을 맞았다.전주서문교회는 6월 4일 온 세대 성도들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기념예배를 열었다. 이날 예배에서 김석호 목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김 목사는 설교를 통해 호남선교 7인의 선발대로 찾아온 선교사들, 교회와 민족의 지도자 역할을 한 김인전 배은희 목사, 섬김과 전도의 사람들이었던 방애인 이거두리 등을 언급하며 “믿음의 선배들처럼 전주서문교회 130년의 역사를 빛내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자”고
광주대성교회(민남기 목사)가 6월 3일 교회설립 58주년 설립일을 맞아 새 예배당 입당예배를 드렸다. 광주대성교회는 새 예배당 입당을 계기로 지척에 있는 대단위 아파트와 주변 학원을 대상으로 전도하며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새 예배당은 본당 620석, 중예배실 150석 규모에 여러 교육기관과 전도회를 위한 소그룹실을 갖췄다. 무엇보다 좋은 입지 조건을 가졌는데 바로 앞에는 광주광역시 남구 효천 1지구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인근에 대학교 2곳, 중·고교 2곳, 초등학교 2곳이 들어서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젊은층을 겨냥한
대구시 달성군에 위치한 논공교회(여창섭 목사)에게 예배당 건축은 단순히 건물 하나 짓는 것 이상의 의미였다.여창섭 목사가 11년 전 논공교회에 부임할 때만해도 교회 주변은 온통 논밭뿐이었고,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좁은 진입로는 초행자가 찾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당시 교회는 성도 120명 규모로 그 일대에서는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대부분이 고령자여서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다.그런데 이후 논공지구 일대의 대대적인 개발이 시작되며 많은 인구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논공교회는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느냐, 더 큰 공동체로 나아가는 새로운 도전
최근 몇 년 사이 전주 혁신도시와 만성지구가 잇달아 조성될 때 그 중심에 있던 장동교회가 큰 수혜를 입게 되리라는 것을 많은 이들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 큰 예배당이 신축되며 안팎의 기대는 한껏 높아졌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상황들로 교회는 되레 깊은 침체에 빠졌다.심지어 교회의 존립 자체를 염려하게 되었을 무렵, 구원투수처럼 등장한 인물이 김태영 목사였다. 김태영 목사는 장동교회에서 학생시절을 보내고 안수집사로 섬기다, 뒤늦게 신학의 길에 부름을 받고 전도사로 섬긴 전력까지 있다. 이후 서전주영광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로 사역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