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1~2)원래는 이번 편지에서 대학로의 터줏대감 뮤지컬(10년 이상 공연 중인)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몇 편이 종연되는 바람에 급히 방향을 틀게 되었습니다. 하지
을지로에 새로 생긴 아크앤북이라는 서점에 가봤다. 세련된 실내디자인과 방문자를 배려한 편리한 시설이 큰 호감으로 다가왔지만, 걱정이 됐다. ‘멋지긴 한데 이런 식으로 해서 월세나 낼 수 있을까. 돈 많고 허세 있는 누군가가 자아실현하고 싶었던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책을 사지 않아도 옆에 마련된 편안한 소파에 앉아서 오래도록 책을 읽을 수 있게 해두었다. 자리마다 전자기기를 위한 충전 콘센트가 있었고 심지어는 바로 옆에 있는 트렌디한 식당들에 책을 들고 들어가서 읽어도 되는 구조였다. 오는 사람은 좋겠지만, 이래 가지고 누가 책
인천개항장 내리교회 뒤편 언덕에 성공회 내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1956년 성당을 짓고 이곳으로 이사 왔다. 내동성당이 이사 오기 전에는 병원이 있었다. 1904년 러일전쟁 서막을 열었던 제물포해전에서 부상자를 후송하여 치료한 낙선시의원(樂善施醫院)이다.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이 병원을 성누가병원(St. Luke Hospital and Dispensary)이라고 불렀다. 성 누가의 날에 개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891년 10월 이곳에 병원을 열었던 성공회 의료선교사 랜디스(Elis Barr Landis, 1865~1898)는
지난 칼럼에서 한국공연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대학로에는 크고 작은 170여 개의 극장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 170여 개 극장들 중에, 자체 브랜드 파워를 가진 극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학로가 형성되기 전부터 서울에는 색깔이 분명한 소극장들이, 나름의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었더랬죠. 라는 대표작을 장기 공연했던 ‘연우 소극장’은 민중의 삶을 조명하는 창작극만을 고집했습니다. 시대적 고민을 담은 작품을 찾는 관객들이 사랑하는 극장이었죠. ‘산울림 소극장’
5년 전 성신여대 앞에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기독교문화공간을 열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복음의 가치에 기반해 어떤 콘텐츠들로 이 공간을 채워나갈까. 그래서 시작된 것 중 하나가 화요책읽기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좀 자유로운 형태의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했는데 후에 크리스천을 위한 책읽기 모임으로 확대되었다.예상치 못한 이 모임의 특별한 역할이 있었으니, 바로 차가운 도시의 현대인들이 따뜻한 저녁 한 끼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식탁공동체의 역할이었다. 누군가 퇴근이 빠른 사람이 먼저 와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다. 한 사람씩 도착
한강 이남 첫 교회는 초량교회다. 선교사 베어드(William M. Baird)가 부산선교기지를 구축하면서 개척했다. 1890년 12월 샌프란시스코항을 출발한 베어드 선교사는 1891년 2월 제물포항에 도착한다. 도착 즉시 언더우드 선교사와 함께 부산을 답사한다. 1891년 9월 일본인거류지 끄트머리 영서현에 부산선교기지 부지를 매입한다.1892년 부산선교부 미완성 선교사 사택을 개방하여 영서현교회를 시작한다. 영주동으로 옮겨서 건축하면서 영주동교회라 이름 했다가 1922년 재건축하면서 초량삼일교회라 고쳐 부른다. 삼일독립만세운동이
2014년 영화 가 개봉했을 때 여러 전도사님들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영화를 중고등학생들에게 보여줘야 하는지 아니면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지 때문이었다. 나는 당연히 학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고, 대부분의 전도사님들은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아직 아이들이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분별할 줄 모르고 콘텐츠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니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논리를 접하니 자연스럽게 질문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과연 언제 콘텐츠를 잘 소화할 수 있는 나이가 될까? 당시 전도사님들은 질문에
지금 대학로에는 170여 개의 크고 작은 극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대학로에 서 있는 웬만한 건물들 지하엔 어김없이 극장이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170여 개 극장들 틈에, 1년 내내 ‘기독뮤지컬’만을 공연하는 극장이 하나 있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은혜로 끼어있는 ‘작은극장 광야(빛 광光, 들 야野, 말씀의 빛이 가득한 들판)’입니다.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뮤지컬 에 부어주신 주님 은혜와 한국교회 사랑의 열매로, 2017년 7월 17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고
안녕하세요! 저는 새롭게 문화칼럼 연재를 시작하게 된 이재윤 목사라고 합니다. 2015년부터 성신여대 앞에서 주님의숲교회라는 작은 개척교회이자 ‘나니아의 옷장’이라는 이름의 기독교 문화공간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다들 이야기 하듯이, 교회의 신뢰가 무너지고 선교의 문이 점점 닫히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가 우리 세대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문화’라는 영역이 큰 접촉점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20대부터 문화선교영역에서 다양한 일을 해왔습니다.오늘의 젊은 세대에게 미치는
문화칼럼이 새로운 필자들과 함께 인사드립니다. 첫 필자 최석호 교수는 골목길을 걸으면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역사산책자입니다. 팍팍해진 일상에 따뜻함과 즐거움을 덧입혀주는 여가와 신앙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인사동 승동교회 마당에는 표지석 두 개가 있다. 하나는 ‘3·1독립운동 기념 터’ 표지석이고, 다른 하나는 ‘이율곡 선생 살던 집 터’ 표지석이다. 1584년 1월 16일 율곡 이이 선생이 대사동 우사(大寺洞 寓舍)에서 49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감한다. 승동교회 마당이 바로 그 대사동 우사다.승동교회는
지난 2년 동안 교회음악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독자들과 교회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지면관계상 본 칼럼에서는 어떤 커다란 주제보다는 교회 현장에서 실제적으로 부딪히는 구체적인 주제들, 또는 이슈들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아직도 다루고 싶은 주제들은 많지만 이제 칼럼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교회 현장에는 교회음악전문 사역자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목회’라는 영역은 사람들의 영혼과 인격, 그리고 삶을 다루는 지극히 중요하고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목회자
그동안 20회의 칼럼을 통해 다양한 크리스천 뮤지션들의 새로운 노래들을 소개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CCM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최근에 발매된 많은 앨범들 중 공동체와 팀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좋은 곡들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첫 번째로 추천할 앨범은 임송현 정규 1집 입니다.임송현 씨는 2013년 등 2곡이 담긴 첫 싱글을 선보인 이후 2016년 과 , 2018년 등 많지는 않았지만 꾸준하게 음원들을 발
‘딩동’ 차임벨이 울리면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 박스가 설치되어 있는 아래층으로 쿵쾅거리며 부리나케 뛰어간다. 정병옥 사모와 교회 스태프들도 뒤따른다. 주사랑공동체는 전쟁이 시작된다. 베이비박스를 열면 태어난 지 얼만 안 된 아기가 보자기에 싸인 채 놓여있다. 한 생명이 이렇게 또 공동체에 맡겨진다.영화 는 2009년부터 시작된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의 베이비박스 사역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는 주사랑공동체에 맡겨져 양육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천적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은혜’, 시각
이혜영의 회화는 인생의 허다한 스토리텔링을 말머리 삼아 창조주를 찾아 떠나는 아름다운 여정으로 보인다. 이유는 그가 미로(maze)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하기 때문이다.삶이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하지 않듯, 그의 삶에도 시련의 밤과 고난의 한파가 밀려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술가적 욕구는, 그것을 종교 미감의 현대 추상회화로 풀어낸다. 토머스 모어의 소설 에서 유토피아는 가상현실이지만, 그는 화폭을 매개로 기독교의 초월적 낙원을 추구한다. 본질적으로 추상미술은 유토피아 DNA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대
찬양대는 예배에서 성도들을 대표해 영적으로, 그리고 음악적으로 잘 준비된 특별한 찬양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의 대표적인 음악기관이다. 교회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찬양대는 각 시대 중심적인 교회음악 장르의 곡들을 노래함으로써 교회음악 발전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였다. 오늘날 찬양대는 지금까지 발전된 여러 가지 다양한 유형의 곡들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것들을 일별(一瞥)해 봄으로써 찬양대가 교회음악 현장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찬양대가 주일 예배에서 주로 노래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