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완전식품’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유에 ‘사랑’을 첨가하면 어떻게 될까? 정답은 생명을 살리는 기적이 벌어진다.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이사장:호용한 목사)이 그 기적의 주인공이다. 생명이 담긴 우유를 호용한 목사와 함께 배달했다. 인적 드문 서울 옥수동 비탈길. 호용한 목사의 거친 숨소리가 좁은 골목을 울린다. 호 목사가 이른 아침부터 구슬땀을 흘리며 언덕에 오른 이유는, 그곳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골목 끝자락 반지하 단칸방 앞.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계절이다.하지만 세상은 평화보다는 전쟁과 갈등,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의 공포와 혼란으로 시름하고 있다. 미얀마 상황이 꼭 그렇다.지난 2월 군부 쿠데타로 극심한 혼란을 겪은 미얀마는 국제적인 관심 속에 조속한 안정과 평화가 임하기를 염원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얀마 소식은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그런 사이 미얀마는 내전과 코로나19로 고통의 무게감이 나날이 늘고 있다.인류 모두가 즐거워야 할 성탄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미얀마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을 숨죽여 맞으며 기도하고 있다.
‘사모’의 자리는 그 이름에서부터 일단 능동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논리상 ‘목사’라는 대상이 선행되어야만 ‘사모’라는 신분도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 그 위치가 몹시 의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만약 ‘목사’의 존재가 어떤 이유에서든 세상에서 지워져버린다면, 홀로 남은 ‘사모’의 위상은 대체 무엇이라 해야 할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사라진 누군가와 그냥 한 묶음으로 처리되는 인생으로 간주되는 게 과연 옳은 걸까. 그렇게 목회의 자리에서, 사역의 현장에서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 못한 채 그 쓸모를 완전
코로나19는 공연계에 더 없이 잔혹했다. 악성 바이러스가 대한민국을 뒤덮은 지난 2년, 수많은 공연장이 문을 닫는가 하면 무대에 오르는 공연 숫자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일반 공연계도 이런데, 기독 공연계는 오죽할까. 기독 공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살얼음판 위에서 지난 2년을 버텨왔다.2009년에 오픈해 꾸준히 기독 작품이나 기독교 가치관을 함의한 작품을 무대에 올려왔던 ‘북촌아트홀’의 대표, 연출, 배우, 스텝에게도 지난 2년은 그야말로 험난했다.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평일 저녁과 주말에 공연을 펼쳤지만, 확산 이후 평일 공연을
코로나19가 바꿔버린 2021년 성탄절은 함께 모여 예배드리기도, 지인들과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하지만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한국교회 나눔의 정신은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 비대면 시대, 밖에 나가지 않고도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소외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소개한다. 1. 거창 크리스마스트리 축제경남 거창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위원회는 12월 5일부터 제9회 거창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를 진행한다. 올해 10주년을 맞는 축제의 주제는 ‘With Geochang! 다시, 사랑의 빛으로’
혹독한 1년을 보냈다. 연초부터 끊임없이 확산된 코로나19는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으며 일상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역대 최장기간 이어진 장마로 발생한 수천명의 이재민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처럼 2020년은 잔인했다.하지만 시련 속에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 있다. 역병과 수해로 지쳐 쓰러져갈 때 우리 곁으로 다가와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일으켜준 영웅과 형제가 바로 그들이다.본지는 한 해를 마감하며 ‘고맙습니다! 우리의 영웅’과 ‘고맙습니다! 우리의 형제’ 특집을 마련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우리의 영웅
“그때가 2월이었는데,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더라고요. 첫날은 너무 힘들어서 결국 새벽 3시에 집으로 왔어요. 노숙인들이 오랫동안 씻지를 못해 냄새도 심하고, 나중에는 제 옷에도 냄새가 나더라고요.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신문지 한 장을 덮고 잤어요. 처음에는 웬 사람인가 경계하던 눈초리도 차츰 줄어들고, 그렇게 사흘 밤을 함께 지내면서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어요.”김용직 장로(60세·성남산성교회)가 노숙인들을 가슴으로 품기 시작한 것은 지하철 신흥역에서 무료급식 봉사를 하면서부터다. 그가 섬기고 있는 성남산성교회(배성환 목
성탄절은 단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만은 아니다. 그분이 이 땅의 낮고 천한 자리에 찾아와 머무시며, 온 몸으로 당하신 고난과 아픔까지 함께 묵상하는 절기이다. 그리고 주님이 걸으신 사랑과 용서의 그 길을 나도 따라가겠다는 다짐을 실천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바로 그 길을 가장 앞서 간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이다.한반도 서남부의 외딴 섬에 이 열두 제자의 삶을 짚어보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반추하는 명상과 순례코스가 생겼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성탄절을 즈음해 이 특별한 공간으로의 여행에 독자 여러분들을 초대한다.참고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직접 ‘선물’로 오신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3년간의 공생애 기간 동안 낮고 낮은 사회적 지위로 고통 받고 소외 받던 이들을 직접 찾아 사랑의 정수인 복음을 전하셨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지 202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소외되어 고통 받는 자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지적·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육체라는 굴레 속에 갇혀 꿈을 꿀 희망조차 잃은 이들의 절망과 고통은 스스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신체적 장애가
올해도 성탄절은 어김없이 온다.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 땅은 정치적 영적으로 신음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신음을 찬미로, 절망을 소망으로 변화시켜 주셨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복음의 대사로 사역하고 있는 총회세계선교회(GMS) 선교사들을 영상으로 만나 선교지 소식을 나누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해 본다. 진행=전철영 선교사무총장▲한해동안 선교사역을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다. 먼저 인사말씀을 부탁한다.권영봉 선교사(우크라이나, 이하 권): 성탄을 모두와 함께 축하한다. 어렵
코로나19가 올해의 성탄과 연말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분명한 사실은 대면보다는 비대면 방식의 만남과 섬김이 강조될 것이다. 감염 우려 때문에 심리적 위축은 물론, 경기침체로 인해 어려운 이웃들의 겨울나기를 돕는 이전의 풍성했던 봉사활동과 기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단체 김장모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이맘때 왕성했던 김장나눔 행사가 눈에 띄게 줄었다.이러한 때에 교회는 어떻게 성탄의 의미를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까. 코로나19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성탄절과
코로나19가 바꿔버린 2020년 성탄절은 함께 모여 예배드리기도, 지인들과 맛있는 밥 한 끼를 먹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하지만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한국교회 나눔의 정신은 끊어지지 말아야 한다. 비대면 시대, 밖에 나가지 않고도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소외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소개한다.알록달록 마스크 스트랩 만들기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된 시대, 이제는 마스크 스트랩까지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꼭 패션이 아니더라도 마스크를 자주 잃어버리거나 만지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마스크 스트랩이 필수다.
얼마 후면 2020년 성탄절을 맞이한다. 우리는, 우리의 다음세대는 매년 여지없이 돌아오는 성탄절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여기고 기뻐하고 있을까? 한국교회의 신앙전수는 불신자의 회심전도만큼이나 보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부모가 목회자여도, 직분자여도 소용없다.가정별로 성탄절의 참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은 그래서 소중하다. 더욱이 코로나19로 공동체의 성탄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시점, 가족단위 성탄사역에 도움이 될 아이디어 몇 가지를 제시해보려고 한다. 성탄절 그림책 만들기예수님의 탄생에 관련된 이야기로 우리 가족 그림책을 만들어보자
‘기념’ 이상의 정신계승 부족3·1운동 100주년은 큰 포부로 시작했으나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3·1절 당일 한국교회총연합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정동제일교회에서 모여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하는 예배로 의미를 가졌다.각 시민단체와 학술단체 등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열었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준비도 늦었고, 연합도 어려웠다. 3·1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기독교인이었지만 그 정신을 널리 알리고 이어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이만열 박사는 “3·1운동 당시 1.5%였던 기독교 인구가 했던 일은 전체 국민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