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 일본을 다녀왔다.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가 소속된 일본 교단 대표 목사 추모 기념예배에 초청받았기 때문이다. 천국 가신지 3주년을 기해 코로나 시국에 하지 못한 추모행사였다. 우리 교회는 2006년에 일본에 선교사를 파송했다. 교회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교사를 일본으로 보낸 것이다. 벌써 20년이 다 돼 간다.당시 100주년 기념선교사라는 의미로 인해 많은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일본으로의 파송을 결정했다. 한국교회사에 매우 선명하게 남은 교회의 수난사에서 산정현교회는 더욱 두드러진다. 일제로부터 고난을 겪던 중 모진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는 장강명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다. 주인공 ‘계나’는 정글 같은 한국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호주로 가게 된다. 강자가 우대받는 세상, 생태적 경쟁력이 없어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강박이 한국을 싫어 하게 했다. 그런데 한국만 싫을까? 이 사람 저 사람과 사랑이 싹터 함께 살아볼까 싶다가도 결국 떠나면서 어디 한곳 마음 두기 어려운 주인공. 요약하기 힘든 작품이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그런데 ‘싫어서’ 떠나면, 만족스럽게 살 곳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중국 리커창 전 총리가 지난 10월 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68세로, 장수하지는 못한 것이다. 중국인은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음에도 불구하고 차를 많이 마시기에 꽤 건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 심장마비라니 참 안타깝다.그런데 이 소식을 들으니 사도 바울 생각이 났다. 그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역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그렇다. 진실한 그 고백은 빌립보 교인뿐이 아니라 모든 교회에 대한 사랑이 그랬을 것이다. 그리스
무엇이든지 힘이 갑자기 한편으로 쏠리면 위험하다. 자동차든 사람이든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 그래서 균형 잡는 기술을 찾아내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걱정스러운 쏠림 현상이 있다. 교통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된 수도권 쏠림현상이다. 이전에는 지방에도 명문대학이나 명문고등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나름의 특성화로 유명한 시장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서울에 와서 점심 먹고 쇼핑하고 영화 보고 집에 돌아가 저녁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쏠림은 더 심해지고 운동장은 기울어져만 간다.그래도 세상에는 이런저런 안전장치가
총회 산하 4개 기관 전 직원의 산행이 있었다. 올해는 남한산성이었다. 한 식당을 가득 메운 직원들 모습에서 총회의 위상을 느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의 방향이 조선의 굴욕 역사로 이어진 것은 역사를 좋아하는 나의 어쩔 수 없는 병인지 모르겠다.조선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의 현장이 바로 남한산성이다. 1637년 2월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나라가 빠르게 남하하자, 조선왕 인조는 강화도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청군에게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2020년 8월 본 랩소디에서 언급한 척화파의 김상헌과 주화파의 최명길이
‘의대 증원’ 논란이 일어나자 공대 교수들이 반발한단다. 의사들의 반발은 예상하는 것이지만 공대라니? 이유가 참 답답하고 안타깝다. 우리나라는 의대 쏠림 현상이 유난히 심하다. 그래서 최고의 대학이라는 서울대에서도 매년 자퇴생이 증가하고 있다. 국회 자료에 의하면 서울대 자퇴생은 2019년 193명에서 2022년 328명으로 67% 가까이 증가했다. 특이한 것은 이 기간에 의치대에선 자퇴생이 없었다는 것이다. 공대 328명, 농업생명과학대 277명, 자연과학대는 152명이 학교를 떠났는데, 추적하지는 못했어도 대부분 재수를 통해서
흑인 차별에 저항했지만 비폭력 운동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마르틴 루터 킹 목사. 그는 비폭력 기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같은 흑인운동가였던 말콤 엑스와 다른 면이었다.침례교 목사의 아들인 말콤 엑스는 아버지의 사고사와 어머니의 정신병원 입원 등을 겪는 험난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보호시설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열심히 공부했고 반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선생님에게 변호사가 꿈이라고 하자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목수가 어떠냐?’는 말을 들었다. 말콤 엑스가 가장 인간적이라고 여겼던 선생님에게서 들은 말이기에 실망이 매우 컸다. 당
영국이 외로움을 겪는 9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위해 2018년에 ‘외로움부’(Minister for Loneliness)를 만들었다.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처럼 해로운 외로움을 국가가 해결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외로움을 안쓰럽게 여겨 하와라는 동반자를 만들어 주셨다.교회도 마땅히 외로운 이웃을 찾아야 한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임마누엘”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현실 속에 찾아오셔서 함께하신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외로움에 힘든 이웃을 교회에 맡기셨다.얼마 전 추석 명절을 보냈지만, 연휴 동안
미국 LA에 자리한 할리우드가 영화산업 중심지가 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에디슨의 특허권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1886년 특허와 저작권법에 대한 베른협약은 당시 최첨단 기술 중 하나였던 영화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에디슨은 영화 촬영과 상영에 관한 주요 원천 기술의 미국 내 특허를 보유하고 있었다. 영화산업의 활성화와 함께 에디슨은 자신의 기술로 영화 시장을 장악하려 했다. 그래서 1902년부터 미국 내 영화 관련 업체에 자신의 장비와 필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특허 소송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화제작자들에게는 비상이 걸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상대의 얼굴만 봐도 성장 과정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모양이다. 혹은 마음대로 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어린 시절과 학업 과정 관련 스토리를 듣는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이 있다. 매우 여유 있는 가정에서 어려움 모르고 살아온 것 같다는 반응이다. 한마디로 공주같이 자랐을 것이라는 생각하나, 실상을 듣고나면 타인들의 짐작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아내의 얼굴을 보면 힘든 과정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물론 내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얼굴을 두 종류로 나누는 사람들이 많다.
20여 년 전, 아직도 기억나는 생생한 일이 있다. 치과 점검에서 의사가 나를 절망하게 했다. ‘60세 되기 전에 당신의 치아가 모두 무너질 상태’라는 것이었다. 어디 하나 좋은 것이 없다고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허리가 아파 재활의학과에 갔다. 거기서도 나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40대인 나의 몸에서 척추는 60대 같다고 했다.그런데 요즘도 치과 정기검진을 하지만, 아직 나의 치아는 임플란트 하나만 했을 뿐 건재하다. 그리고 최근 대상포진으로 다리가 몹시 아팠는데 시간이 지나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혹시 척추
내가 섬기는 교회가 라오스에 선교사를 파송한 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사역이 우물 파기다. 우리나라처럼 상수도 시설을 갖추지 못한 라오스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물을 마음껏 쓸 수 없다. 이를테면 휴지를 사용하지 않는 그들의 화장실에서는 반드시 물이 필요하지만, 물통은 비어 있어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초등학교 등의 공공시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장면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등에서 우물을 파고 운동장뿐 아니라 화장실까지 연결된 수도 설비를 통해 편리하게 물을 쓸 수 있게 했다. 그런 시설 한 개를 설치하는
한강에는 일산대교부터 팔당대교까지 총 31개의 다리가 있다. 이것을 이용해 편리하고 빠르게 통행한다. 서울에 살면서 늘 한강 다리 중 몇 개를 건너간다. 강남북을 연결해 주는 다리들. 제1한강교라고 불리던 ‘한강대교’가 첫 다리였다. 1900년도 기차를 위한 철교로 시작된 다리다.그런데 이 다리들이 비극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2018년부터 5년 동안 통계를 보면 한강 다리에서 발생한 투신자살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자살 시도가 벌어진 마포대교는 ‘자살대교’라고 불릴 정도다. 연간 횟수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경기장을 찾거나 TV 중계로 즐기는 경마가 있다. 경주마들의 질주는 매우 역동적이어서 매력적이다. 다만 경마를 단지 도박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걱정스럽기도 하다.경마를 서두에 꺼낸 이유는 말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경주마들은 눈 옆에 가리개를 한다. 바로 ‘차안대’(遮眼帶)라는 것으로 영어로는 ‘blinker’라고 한다. 컵 모양의 가죽 또는 고무 재질로 만든 이것은 경주마의 좌우 시야를 차단해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효과가 있다.사람의 눈은 얼굴 전면에 앞을 향해 붙어있어서 시야가 많이 제한된다. 그러나 말의 눈은 얼굴의
소희는 대형통신회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이라는 노동을 한다. 그런데 팀장이 자살한다. 콜센터 직원들을 혹사시킨다는 유서의 내용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된다. 그 다음이 바로 소희였다. 아직 여고생인 그녀는 업무 실적에 대한 부담과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관하며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죽는다. 앞서 떠난 팀장의 그 ‘다음’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이젠 이것으로 끝, 다음은 없다’라는 메시지는 없다. 오히려 소희 ‘다음’은 누군가라고 묻는다. 세상은 이렇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