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살아갑니다. 욕심도 내어봅니다. 안되는 현실 앞에 화도 내어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잊고 삽니다. 사실 살아 숨쉬는 것도 감사한 데 말입니다. 작은 손모아 내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감사와 희망을 바라보며….▲셔터스피드 : 1/5 ▲노출 : F4 ▲ISO : 200
장면 하나.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독일 서부전선 플뢰르 벌판. 영국군과 대치하던 독일군 참호 속에서 노래가 들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느새 캐럴은 합창이 되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군인들은 참호를 걸어 나와 서로 악수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군인들은 전사자들을 위해
저자 인터뷰 / 〈자신감〉의 전병욱 목사인간의 역사는 자신과 끊임없는 투쟁이다. 맨발로 뛰어다니던 때나 로켓을 타고 날아다니는 시대나 인간의 고뇌는 매마를 날이 없었다. 거기다 현대 사회는 양극화 시대다. 날이 선 이데올로기에서 생필품 가격까지 양극화는 극과 극을 보인다. ‘자신감’의 단어도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 누구는 자신감이 넘쳐
▲ 아침을 굶고 구내식당에서 라면을 먹다가 딱 걸린 정 기자. 지금 정 기자는 규칙적인 식습관이 중요하다. 한 달여 간의 부단한 식이요법과 생활요법으로 정 기자의 체중은 3kg 정도 늘었다. 집에서 꼬박꼬박 찰밥을 챙겨먹고 군것질이나 소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음식을 철저히 끊은 결과가 가시적으로 보이자 정 기자도 덩달아 신나게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봄바람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매번 강화도를 찾을 때마다 느끼지만 면도날로 손을 벤 것처럼 아리고, 가슴 한 켠에 회한 비슷한 쓸쓸함이 남는다. 이번 여행길도 예외가 아니었다. 주말이면 행락객들로 강화대교 입구부터 차가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한가했다. 강화도를 찾는 사람이 반드시 ‘신고’한다는 강화역사박물관에 들러 눈
“내게 주신 달란트 복음 위해 쓰겠다” 뜨거운 신앙 열정·끝없는 도전정신은 승부세계 지탱하는 원동력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옆에서 같이 걷던 사진기자가 먼저 알아채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역삼역 근처에서 만난 차유람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보였다. 역시 테이블과 포켓볼, 큐(cue)와
회자정리(會者定離). 며칠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한 단어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라는 뜻을 가진 이 사자성어가 비록 단 하루였지만 인기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은, 그 배경을 모르는 이들에게 느닷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놀랍게도 이 단어가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문화방송)이라는 이름
버지니아 참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 최악의 총기사건이 일어난 미국 버지니아 공대를 찾은 사람들이 교정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석을 바라보며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버지니아공대 참사에 대해 한국 교계는 일제히 위로와 추모의 뜻을 전하고 집회와 기도회, 모금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이용규 목사)는 4월 18일 성명을 통해 {이번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400여명 꾀어 낙도 양식장 등지에 팔아넘긴 일당 8명 적발. 가장 최근에 드러난(4월 20일 연합뉴스 보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인신매매 범죄 사례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노동이나 성을 착취하는 이 현대판 노예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국제 암거래 시장에서 인신은 무기와 마약 다음으로 돈벌이가 잘 되는 품목이라는 말
유럽이나 미국 식당과 한국 식당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가격'이다. 한국만큼 음식값이 싼 곳도 없다. 물가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말이다. 우리나라 식당 음식값이 저렴한 이유는 중국에서 원재료를 들여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번더 생각해 보면, 저렴한 노동시장이 있기에 5천원으로 풍성한 식탁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의 8
{여수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현대판 노예제도] 희생양이라고 부른 김희영(가명·34)씨는 지금도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사건과 같은 비극이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2007년 2월 24일 이주노동자 00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란 뜻이다.
최근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호스피스 기관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1963년 가톨릭에서 설립한 강릉 갈바리의원이 호스피스를 처음으로 도입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호스피스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3년도부터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당시 50여개에 불과했던 단체가 현재에는 세배로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