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완전함이란 무엇인가요? 사전적으로는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의미라면 사람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라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성장의 과정 속에서 완전함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그렇다면 불완전한 사람과 또 다른 불완전한 사람이 힘을 합치면 완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신32:4) 여러분, 왜 우리는 정의를 추구하고, 정의로운 행동을 좋아하는 걸까요? 왜 우리는 불의에 항거하고, 저항하려고 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도덕적 존재’로 창조됐기 때문입니다.사람에게 도덕은 태생적입니다. 만약 사회현상으로서 도덕이 생겨난 것이라면, 그 도덕은 진화의 과정 속에서 바뀔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에 있는 ‘선과 악의 개념’이라든가 ‘정의의 개념’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위해 임마누엘로 오신 주님을 만납시다“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마 2:10)여러분은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려 본적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소망입니다. 나라를 잃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해방의 날을 기다립니다. 곤경의 빠져 신음소리를 삼키며 사는 사람들도 회복의 날을 기다립니다.신앙 역시 기다림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1. 진실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사람이 주님을 만납니다.박사들은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왔습니다. 별을 따라
서로 용서하는 것이 복음의 실천입니다“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몬 1:16 상)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여기에는 중요한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어떤 잘못을 해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 오네시모입니다. 또 한 사람은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사람 빌레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두 사람을 화해하도록 중재하는 바울입니다.먼저 바울을 보면 지금 바울은 갇힌 자가 되어 있습니다. 1절, 9절, 10절에 “갇힌 자”라는 말을 사용합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수많은 사고들이 발생함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 등 개인의 잘못보다 타인의 잘못에 의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더 많이 있고, 심지어 사망사고까지 이어집니다. 저도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갑자기 어떤 사고를 당해 죽게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당신은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시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유대인의 부모들은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오늘은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니?”이 질문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됐습니다. 좋은 질문이 위대한 인생을 만들 수 있습니다.오늘 예수님은 이스라엘 최북단의 도시, 빌립보 가이사랴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아주 결정적인 한 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6:15)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거대한 신전과 각종 신전들이 가득 차 있는 곳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있습니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 27:24)사도행전 27장에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어 가며 겪은 조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지중해의 그레데 섬 미항에서 40km정도 떨어진 뵈닉스로 가는 중에 풍랑이 불어 바울을 포함한 276명의 사람들은 생명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 출발할 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었습니다.(행 27:13)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듣고 항해를 시작한 것에 대해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내 유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마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9)“생각이 길면 용기가 사라지는 법이죠.”2021년도 도쿄 올림픽 펜싱 경기 중에 한 선수가 공격을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해설진이 한 말입니다.깊고 충분한 생각이 필요한 때와 담대하고 단호한 용기가 필요한 때가 따로 있습니다. 최적의 판단을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생각이 많아질수록 용기와 담대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이것은 비단 스포츠 경기에서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출 2:3)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은 이렇게 마칩니다.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 애굽의 바로는 히브리 사람 중에 태어난 남자 아이는 다 죽이라고 명령했습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 12:10)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이영표는 ‘골때리는 그녀들’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토트넘에 입단했을 때 ‘축구선수로서 어떻게 슬럼프 없이 승승장구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경기가 몇 번 있었는데 그 몇 번의 경기를 패배하고 또 패배하며 자책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그는 ‘왜 사람들은 나를 슬럼프 없는 성공한 선수로 기억할까?’ 고민하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의로운 재판장 앞에 설 그날 기대하며 끝까지 경주합시다“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오늘날 우리 주변에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이들을 보면 반듯하게 품위를 지키며, 일관성 있게, 초심을 잃지 않고 평생을 달리는 사역자들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예외적인 인물을 찾을 수 있으니,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심정과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 사역의 초점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나는 것이 부흥입니다“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3:2) 부흥에는 반드시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하는데, 회개는 부흥과 맞물려 있습니다. 마음을 돌이켜 돌아올 때 보통 ‘주’(Lord)라는 단어가 함께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는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특히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은 하나님 언약에로의 복귀
상처 너머의 섭리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 이루는 은혜 누리자“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삶은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상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랑하기에 기대하고, 기대하기에 실망하고, 그 실망을 넘어 아픈 기억이 우리의 상처로 남아 삶에 고통의 그림자를 깊게 드리우곤 합니다. 또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문득 삶의 순간과 구조적 만남 속에서 씻
거친 풍랑 위 걸을 때 주님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고 능력입니다“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 14:29절)삶은 때로 고통과 아픔의 시련과 슬픔의 강을 건너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우리 인생에 괴롭고 힘든 기억과 추억으로만 남지는 않습니다. 황무지에 떨어져도 망하라는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라는 은혜로 받아들여질 때, 인생은 또 다른 삶의 장면을 맞이하게 됩니다.인생의 두려움, 삶의 지루함과 흔들림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히려 그 뒤편에서 우리를
경험에 갇힌 믿음 딛고 하나님 영광 체험하는 전파자 됩시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요 11:40)2022년 새해를 맞이하여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소망이 끊긴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고 풀어놓아 다니게 하시는 은총으로 임하신 것처럼, 성도님들의 마음과 삶에도 역사하시기를 소원합니다.오늘 본문에는 믿음이 있어도 그 믿음의 정도가 매우 제한적인 한계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분명히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